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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l 30. 2019

여름 차트 이별 발라드의 이유

가을 아닌 여름 발라드의 시대, 스트리밍 음악 감상의 변화


최근 음악 관계자들 사이엔 공공연한 불만이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어째서 이 무더운 여름 스트리밍 서비스의 실시간 차트에 발라드 노래가 가득하냐는 것이다. 절절한 이별의 가사와 애절한 창법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케이-발라드(K-Ballard) 곡들이 멜론, 지니, 벅스, 플로, 네이버 등 주요 스트리밍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열애 중', '180도'로 발라드 시대 유행을 앞서 개척한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부터 1997년생 신예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무려 14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난 장혜진, 윤민수의 '술이 문제야'와 솔로 가수 김나영의 '솔직하게 말해서 나' 모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SBS <케이팝스타> 출신 송하예의 '니 소식', 황인욱의 '포장마차', 마크툽의 '오늘도 빛나는 너에게'가 뒤를 받친다.


통념상 애절한 이별과 쓸쓸한 추억을 노래하는 발라드의 계절은 찬 바람 부는 가을이다. 하지만 올해 스트리밍 차트를 보면 발라드는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 차트 집계를 보면, 5월 둘째 주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마지막으로 7월 마지막 주 지금까지 발라드 이외 곡이 정상을 차지한 경우가 없다. 비단 1위뿐 아니라 톱 텐에도 앞서 언급한 곡들과 케이시의 '그때가 좋았어', 다비치의 '너에게 못했던 내 마지막 말은' 등이 공고한 인기 전선을 구축했다.



발라드의 차트 점령은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 윤종신의 '좋니', 장덕철의 '그날처럼', 멜로망스의 '선물'이 히트하며 예고됐고 2018년 4월 닐로의 '지나오다'가 차트 역주행으로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며 본격화됐다. 이후 폴 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과 '너를 만나', 하은의 '신용재', 윤건의 '너도 그냥 날 놓아주면 돼', 엠씨 더 맥스의 '넘쳐흘러'가 2019년 발라드 여름의 가교를 놓았다.


스트리밍 차트 성적대로라면 지금 우리는 '발라드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논란이 됐던 가수 닐로의 소속사(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이 상황을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했으나, '음원 자료가 제한적이라 사재기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중은 음원 사이트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니 의심만 할 뿐이고, 아티스트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속을 앓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원 서비스 발라드의 절대 강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맞는 내용도 있지만 피상적인 느낌에 의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결론을 만들어보자.


노래방과 혼코노족



일각에서는 노래방 문화, 그중에서도 코인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혼코노족'의 부상을 발라드 유행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노래방 애창곡 목록에서 발라드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한국 노래방 업계 1위 TJ미디어의 7월 노래방 인기곡 순위를 보면, 1위부터 20위까지 발라드 이외의 곡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가설이 힘을 얻으려면 발라드는 물론 노래방 사업의 인기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2011년 이후 노래방 사업은 지속적인 하락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에서 없어진 노래방 수는 모두 1413개로 2015년부터 계속 증가 추세다. 신규 등록된 코인 노래방도 2017년 778개에서 2018년 409개로 급감했다.


노래방은 발라드의 지지층이 될 수 있으나 발라드의 차트 지배를 견인할 힘은 없다. 여기서는 '혼코노족'과 코인 노래방의 주 지역이 대학가 근처, 주 고객들은 10대 청소년들부터 20대 청년들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유튜브와 SNS



'유튜브 공화국' 한국인들은 음악도 유튜브로 가장 많이 듣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은 스트리밍 서비스, 그중 500만 가입자를 확보하며 47%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 멜론(melon)으로 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지표들은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모바일 서비스 이용행태 조사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43%가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해 멜론으로 음악을 듣는 28.1%를 크게 제쳤다. 2순위 기준까지 합한 결과는 유튜브 75.4%, 멜론 47.4%로 그 격차가 더 심하다. 연령별로는 오직 20대만이 유튜브보다 멜론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라드 노래들은 여기서도 강세다. 유튜브 '멜론둥이', '멜론차트' 등 다양한 채널들은 멜론 주간 톱 100 차트를 그대로 재생하여 광고 없는 영상으로 만든다. '헬로 마이 뮤직',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같은 채널은 노래에 가사를 입혀 많게는 몇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확보한다. 노래 하나를 검색하면 원곡자의 라이브 영상은 물론 수많은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커버 영상이 이어진다.


[일소라] 한강에서 버스킹하며 일반인이 부른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임재현) cover
권인하- 넘쳐흘러 (M.C THE MAX 원곡) 커버 풀버전 KWON INHA


'비 오는 날 수채화'의 권인하는 3년 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태연의 '만약에'를 부른 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2012년 전국 노래자랑의 '지구촌 노래자랑'에 출연한 그렉 프리스터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커버 영상을 업로드하며 33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앞서 언급한 노래방 문화와의 접점이 보인다.


음원 사재기 논란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수도 무시할 수 없다. 유튜브 88만 구독자를 보유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페이지는 페이스북에서 이미 300만 이상의 좋아요를 확보한 바 있다. 2013년~2014년 페이스북이 싸이월드의 지위를 대체한 20대에게 '감성 플레이어', '요즘 핫하다는 노래 동영상' 등의 채널은 이미 2015~2016년부터 그 파급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스밍 총공' 팬덤의 변화, 앨범 판매량 증가



한 때 스트리밍 차트에는 '줄 세우기'가 일상이었다. 대형 아이돌 가수들이 새 앨범을 내면 발매와 동시에, 혹은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앨범의 전 수록곡이 1위부터 차례대로 차트 정상부를 점령하는 현상이었다. 이를 위해 팬덤은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총동원해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 공격)'에 나섰고, 권장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숨밍(숨 쉬듯이 스트리밍)'을 이어갔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권고로 스트리밍 업체들은 0시 공개 음원을 차트 성적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거대 아이돌 그룹의 컴백에는 열성적인 '스밍'이 뒤따른다.


그러나 발라드의 차트 점령으로 인해 팬덤의 소비문화가 변하고 있다. 팬덤에게 ‘스밍’으로 정상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는 차트에서 비정상적인 상승 추이를 보이는 곡들을 ‘기계픽’이라 호칭하며 차트 조작을 의심케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스밍 총공’ 역시 비정상적인 소비 형태임이 분명하기에, 현재 팬덤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와 실시간 경쟁을 종용하는 차트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디지털 소비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건 쉽지 않게 됐다. 대신 실물 앨범 소비량의 증가량이 이를 만회하고 있다. 국내 앨범 판매량은 2017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2018년 약 2천3백만 장 판매고를 기록하며 첫 연간 2천만 장 판매고 시대를 열었다. 아이돌 팬덤의 적극적인 소비가 주 요인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방탄소년단의 미니 앨범 < Map Of The Soul : PERSONA >가 349만 9천 장 판매고를 올리며 대한민국 앨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세븐틴의 < You Made My Dawn >역시 46만 장을 판매했다. 역대 걸그룹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 판매 기록 1,2,3위가 2019년의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즈원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웬만한 그룹도 1만 장 이상의 판매고가 보장된다.


케이팝 프로덕션의 체계화도 주요한 요인이다. 최근 케이팝 아이돌 곡은 다수의 해외 작곡가 혹은 작곡이 가능한 멤버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대중에게는 결코 쉽지 않고 난해한 음악이다. '전국민이 따라부르는 유행가'의 개념 대신 세련된 형태의 수출품, 팬덤의 니즈를 충족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케이팝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래방, 혼코노 문화가 발라드의 차트 점령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다만 그 향유층은 1-20대에 집중되어있다.

유튜브와 SNS를 통한 음악 소비가 많다.

유튜브는 전연령이나 특히 10대. 페이스북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

20대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일 많이 사용한다.

실시간 차트의 주요 소비층 아이돌 팬덤, 차트 1위가 어려워지며 실물 앨범 구매량이 늘었다.

케이팝 노래를 따라부르기 쉽지 않다.


강한 연결 고리는 아니지만 일련의 공통점이 보인다. 이로부터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차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순이용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가 현재의 발라드 초강세다.

주로 10대 초, 20대 중후반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유튜브와 페이스북 채널과 커버를 통해 발라드 곡을 향유하며 차트 진입을 돕는다.
바이럴 마케팅은 이 소비자들을 타겟으로 한다.

한 번 차트에 오른 곡은 다시 SNS를 통해
무수한 불특정 다수들에게 반복 재생되고,
톱 100 반복 재생 관행에 따라 장기 집권한다.
노래방/커버 문화를 통해 2차 콘텐츠가 생산된다.


실제로 이는 스트리밍 차트 순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음악 소비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서도 증명된다. 다수 대중은 현재 스트리밍 차트의 발라드 일색 현상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팝의 차트 진입은?



지난달 가온차트 최초로 디지털 차트와 다운로드 차트에서 팝 음악 최초로 1위에 오른 '2002'는 대다수 스트리밍 차트에서 톱 텐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 역시 높은 순위를 기록 중이다. 디즈니 영화로는 두 번째로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알라딘>의 'Speachless'와 'A whole new world'도 강세다. 젊은 팝 뮤지션 라우브(Lauv)의 'Paris in the rain'과 제레미 주커(Jeremy Zucker)의 'comethru',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의 'Believer'도 인기다.


이 곡들 역시 위의 요약과 무관하지 않다. 앤 마리의 '2002'는 2018년 4월 발매곡인데 국내 차트에 등장한 것은 5~6월부터다. 4월 13일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워너뮤직 코리아가 대대적인 유튜브 광고를 통해 '2002'를 대중에게 알린 후부터의 일이다. 새 시대 틴에이저들의 굳건한 지지를 얻고 있는 빌리 아일리시 역시 소속사의 유튜브와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 'bad guy'를 널리 알렸다. 바이럴 마케팅의 효과다.


앤-마리 (Anne-Marie) - 2002 (Live) 가사번역 by 영화번역가 황석희


<알라딘>에 열광하는 관객층 역시 1992년 원작 애니메이션의 기억이 영화 혹은 홈비디오로 남아있는 20대 중후반이다. 'Speachless' 외에도 'Arabian night', 'A whole new world', 'Prince ali'가 톱 100 차트에 오른 것이 그 증거다. 'Speachless'의 히트는 <겨울왕국> 'Let it go'와 닮아 있는데, 시원시원한 고음과 애절한 멜로디 라인이 현 발라드 유행과 맞닿아있으며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커버 영상이 쏟아지는 데서도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마무리



발라드의 차트 점령은 스트리밍 차트가 더 이상 절대 다수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스트리밍 시대의 소비자들은 반복 재생에 익숙하며, 새 노래에 접근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마음은 쉽게 열지 않는다. 현재의 차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가'의 지위와 거리가 멀다. 발라드 강세를 필두로 아이돌, 힙합, 해외 팝송, 밴드 등 다양한 취향의 집합체로 보는 것이 옳다. 대중의 해체, 수많은 취향 집단 시대의 결과물이다.


물론 그 취향을 한 데 묶는 키워드로 '한국의 감성'이 있다. 릴 나스 엑스가 카우보이 문화를 적극 활용하며 미국인들을 하나로 만들고 빌보드 싱글 차트 17주 연속 1위로 신기록을 썼듯, 스트리밍 차트의 히트 노래들도 우리 대중가요에서 무수히 사랑받아온 형식을 따라간다. 애절한 메시지와 기승전결 뚜렷한 구조, 실력의 척도로 평가되는 고음,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 어디서나 부담없이 틀기 좋고 튀지 않는 사운드 등이 대표적인 기호다.


시대를 막론하고 발라드는 항상 사랑받아온 장르였다. 1980년대 유재하와 이문세, 1990년대 변진섭과 신승훈 그리고 이승철이 있었다. 2000년대에는 SG 워너비와 버즈가 있었다. 훗날 벤, 임재현, 닐로, 케이시, 송하예도 2010년대 말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게 될까. 그런데 스트리밍 시대의 발라드를 논하는데 어째 음악보다 다른 영역의 영향력을 더 많이 언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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