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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10. 2019

여기, 조커의 노래가 있다.

개봉 9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한 <조커> 속 명곡


기괴한 미소에 사로잡힌 극장가다. 10월 10일 개봉 9일 만에 한국에서 3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한 영화 <조커>의 흥행가도가 심상치 않아서다. 2008년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가 연기해 그 악명을 널리 떨친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의 기원을 찾아 나서는 이 영화는 불우한 삶을 살던 광대 아서 플렉이 내면의 광기를 해방시켜 최악의 악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제76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최고의 영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우수한 점수를 받은 데다, 조커 아서 플렉 역을 맡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감탄의 연기를 선보이며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영화에 대한 모방 범죄 우려를 두고 사회적 논쟁까지 벌어질 정도니 올해 하반기 최고의 문제작임이 분명하다.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과 강렬한 화면, 고전에 대한 오마주만큼이나 <조커>의 소리 역시 관객을 몰입케 만드는 요소다. 드라마 <체르노빌>과 영화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 <컨택트>에 참여한 아이슬란드의 첼리스트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가 사운드트랙을 맡아 어둡고도 불길한 악의 탄생을 그렸다. 동시에 영화 곳곳에 삽입된 노래 역시 불우한 조커, 아서 플렉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여기, <조커>가 선택한 노래가 있다.



크리스토퍼 크로스(Christopher Cross)

‘Arthur’s Theme’



<조커>는 1981년 가상의 대도시, 고담 시를 배경으로 한다. 많은 배트맨 시리즈가 있지만 시간 배경을 과거로 한 것은 토드 필립스 감독의 독특한 선택이다. 왜 그는 수많은 시기 중 1981년을 선택했을까. 일각에서는 이를 이 영화가 상당 부분 모체로 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헌사로 해석한다. 실제로 <조커>에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이었던 로버트 드 니로와 그의 상징적인 동작 (머리에 손가락으로 총을 겨누는), 어두운 뉴욕의 밤거리가 고스란히 등장한다.

하지만 음악 애호가들에겐 1981년 10월 빌보드 싱글 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노래의 제목이 먼저 떠오른다. 텍사스 출신 크리스토퍼 크로스가 부른 1981년 코미디 영화 <아서>의 주제가 ‘Arthur’s Theme’이 바로 그 곡이다.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1979년 12월 발매한 동명의 정규 앨범으로 198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주요 4개 부문 (신인, 앨범, 레코드, 노래)를 싹쓸이한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고, 그 인기는 ‘Arthur’s Theme’으로 이어져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오리지널 송’까지 품에 안았다.

<조커>에 이 곡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구한 곡의 주인공 ‘아서’와 영화 속 광대 아서 플렉은 어딘가 많이 닮아 보인다.

아서는 남을 즐겁게 하며 살아요
평생을 주인의 장난감으로 살았죠
깊은 마음속에 있는 그는 그저
순수한 어린 소년일 뿐인데


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




지미 듀란티(Jimmy Durante) ‘Smile’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영화 속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 플렉에게서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 겹친다. ‘해피’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광대 아서 플렉은 찰리 채플린의 상징 ‘리틀 트램프’의 모자와 동작을 고스란히 따온 캐릭터다. 그러나 아서는 웃음을 제어할 수 없는 뇌질환을 앓고 있으며,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망상증에 사로잡힌 어머니를 모신다. 비참한 아서 플렉 앞에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인 1931년 <모던 타임즈>가 상영되고, 아서 플렉은 ‘내 인생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끔찍한 코미디’라는 대사를 읊으며 고전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다.

<조커> 예고편에 삽입된 ‘Smile’은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를 위해 작곡한 배경 음악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 곡은 냇 킹 콜, 주디 갈랜드, 마이클 잭슨 등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커버해 고전의 반열에 들었으며, 예고편에는 미국의 코미디언 지미 듀란티(Jimmy Durante)의 버전이 삽입됐다. 열악하고 고통으로 가득한 아서 플렉의 삶을 대변하는 곡이다.


웃어요, 심장이 아프더라도
찢어지는 고통도 하늘의 구름을 보면
금방 지나가지요
웃기만 한다면


Smile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Send In the Clowns’



우울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앉은 아서 플렉에게 다가오는 불량배들이 그의 광대 분장을 조롱하며 부르는 노래다.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이 <어 리틀 나잇 뮤직>을 위해 작곡한 이 노래는 1975년 주디 콜린스의 버전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오름과 동시에 그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카운트 베이시, 사라 본 등 굵직한 아티스트들이 커버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곡이다.

우리에겐 피겨 여왕 김연아가 2013-2014년 올림픽 시즌 쇼트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며 유명해진 ‘Send In The Clowns’는 이제 <조커>의 노래로 기억된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라는 말은 본래 서커스 진행 도중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데, 분노와 번민을 억누르다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내면의 광기를 마주하게 되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와도 상당 부분이 겹친다.


정말 즐겁겠죠? 그렇지 않나요?
어떤 이는 방방 뛰어다니고,
다른 한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요.
어릿광대는 어디에 있나요?


Send In The Clowns (From ‘A Little Night Music’)




게리 글리터(Gary Glitter) ‘Rock and Roll Pt. 2’



조커로 ‘각성’한 아서는 흥겨운 춤을 추며 집 앞 계단을 내려온다. 이때 등장하는 노래가 바로 ‘Rock and Roll Part 2’다. 야성적인 드럼과 베이스 리프가 새로운 생명을 얻은 악의 화신에게 본능적인 몸동작을 선사하며 실로 기괴한 장면을 연출한다. 음침한 화장실에서 본인만의 춤을 추던 아서 플렉은 이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광기의 춤사위를 숨기지 않는다.

‘Rock and Roll Part. 2’는 이미 모방 범죄 논란을 안고 있는 <조커>에 또 다른 심각한 논란을 가져왔다. 곡의 주인공 게리 글리터 때문이다. 데이비드 보위, 티렉스와 함께 1970년대 초 화려한 의상의 글램 록(Glam Rock) 유행을 가져온 게리 글리터는 조사 결과 심각한 아동 성 범죄자였으며 21세기 초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전전하며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끊임없이 조사를 받은 인물이다. 2015년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 혐의로 영국 법원에서 징역 16년행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조커>가 흥행하며 게리 글리터는 저작권료와 더불어 다양한 추가 수익을 챙긴다. 물론 ‘Rock and Roll Part.2’는 <조커> 이전에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에도 사용된 바 있다. 현지 시각 7일 미국 CNN이 이 논란에 대해 보도했으며, 영국 신문사 <더 텔레그래프>는 ‘왜 할리우드는 게리 글리터에게 계속 돈을 주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Rock 'n' Roll (Part 2)




크림(Cream) ‘White Room’



고담 시를 점령한 ‘광대 폭동’의 불타는 현장이 어지러이 생중계된다. 대중음악 최초의 슈퍼그룹 크림(Cream)의 1968년작 ‘White Room’이 불온한 리듬을 더하며 도시는 화염에 휩싸인다.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기반으로 에릭 클랩튼의 강렬한 기타 연주와 잭 브루스의 힘 있는 베이스 리듬, 지난 6일 (현지 시각) 세상을 떠난 진저 베이커의 드럼과 팀파니 소리가 혼란을 부추긴다.
 
‘White Room’은 크림의 대표곡이지만 그 가사는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의 광풍에 가치를 잃어가던 젊은 세대의 상실을 담아 쓸쓸하다. 아서 플렉을 분노케 만들었던 공허한 감정과 사회 부조리, 모든 거짓을 연민하는 듯한 노랫말이 이어진다. <조커>는 아슬아슬하게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다.

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이 곳에서
그림자가 드리운 이 곳에서 너를 기다리지


Cream - White Room - Lyrics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That’s Life’



<조커>의 엔딩 신을 장식하는 곡. 조커 아서 플렉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이렇다.

그게 삶이지
어떤 사람들은 꿈을 차 버리지만
나는 그러지 않아, 우울하지도 않고
세상은 돌고 도니까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1966년 부른 ‘That’s Life’는 원래 1964년 마리온 몽고메리(Marion Montgomery)라는 여성 재즈 가수가 부른 곡이지만 곡에 영생을 부여한 것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아레사 프랭클린, 제임스 브라운, 밴 모리슨, 마이클 볼튼, 마이클 부블레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커버한 이 곡의 마무리가 의미심장하다.

몇 번이나 관둘 뻔했지만
내 마음은 포기를 모르더라고
하지만 이번 7월까지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죽어버려야겠어.


That's Life (Remastere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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