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헌 Mar 04. 2017

칼리 레이 젭슨 내한 공연

I really really like you!


원 히트 원더에서 행운만 추출하고 함정은 피해 새로운 신스 팝 시대의 뮤즈로 자리 잡은 칼리 레이 젭슨. 징크스를 거부하고 독자적 노선을 구축해가는 그의 음악 세계는 1980년대를 바탕으로 신세대의 활력과 감성을 더하며, 심오한 고민 대신 일상 속 공감에서 재치를 발견하며 매력적인 요소들을 채워 넣는다. 'Call me maybe'의 그가 아닌 'EMOTION'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그가 2017년 2월 24일 YES24라이브홀로 첫 내한을 왔다.

모든 공연은 관람 전 기대와 걱정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이 공연 전엔 걱정이 훨씬 앞선 게 사실이다. 2013년의 우주 히트곡 'Call me maybe'를 빼면 결코 높지 않은 인지도, 2015년 < EMOTION > 발매 후 꽤 시간이 지난 내한 시기,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업로드하더니 건강 관계상 사전 팬 미팅까지도 취소됐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관객 수 걱정, 라이브 걱정, 호응도 걱정 등 염려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공연 후기의 패턴이 그렇듯, 이 걱정이 쓸데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프닝 쇼를 맡은 대니 L 할의 DJ 퍼포먼스가 끝나고, 30분 대기 시간 후 19시 40분 정시에 딱 맞춰 금발의 칼리가 등장했다. 그리고 오프닝 송 'Run away with me'의 진한 색소폰 연주가 울려 퍼지며, 공연 전 기우를 말끔히 씻어내기라도 하듯 총천연색 상쾌함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지는 업비트 'Making the most of the night', 'Gimme love', 'EMOTION' 까지 쉬지 않는 셋 리스트 구성은 오프닝 공연 후 대기 시간 동안 잠시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잊기에 충분했다. 

가장 걱정했던 라이브 컨디션도 좋았고, 에너지 넘치는 무대 매너와 열창은 관중의 즉각적 호응을 이끌어내며 열기를 더했다. 브레이크 타임 없이 쭉 이어진 라이브는 < EMOTION > 수록 위주로 채워졌으며, 큰 변주나 편곡은 없었지만 원곡 그대로 충실함에 무리 없는 성실함이 강점이었다. 아마 원 히트 원더로 그를 기억하던 관객이었더라도 이 날의 선명한 음악 색채를 통해 칼리의 지향과 캐릭터를 대번에 알아챘으리라. 물론 히트 메들리 'Good time', 'Call me maybe', 'I really like you'에서의 엄청난 열기는 기본.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잘 소개하며 익숙한 이들에게는 확실한 강림의 현장을 보여줬다.
                                                      


그러나 컨디션 저하와 브레이크 타임 없는 공연의 한계였는지, 필살기 곡들을 소진하고도 러닝 타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못했다. 이에 무대 아래로 사라진 칼리와 그 밴드를 거의 5분 간의 앙코르 요청으로 관객들이 다시 강제 소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흔한 '앙코르'부터 시작해서 '칼리, 칼리, 칼리'의 열띤 환호를 지나 종국에는 'One more song', 칼리의 조국 'Canada!' 합창까지 등장했으니 말 다했다. 결국 무대 위로 돌아온 그는 열광 관중들 두 명을 무대로 올려 역설적 제목의 'I didn't just come here to dance'를 부르며 정말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제야 구 악스홀의 팬들도 그를 보내줄 수 있었다. 

건강 문제로 인한 짧은 러닝타임과 팬서비스 부족에도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팬들은 대부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저마다의 몸짓으로 리듬을 타면서, 손뼉 치고 열광하며 즐거움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칼리 레이 젭슨 또한 최선을 다하며 환호를 이끌어냈다. 프로 정신을 보여준 아티스트와 이에 놀랄 정도의 호응으로 화답한 관중들의 상호 만족이었다. 완벽하지 못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럭키 걸 칼리, We really really like you!






2017년 03월 IZM 기고됨. (링크)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미 어워드는 망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