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아홉번째 정규 앨범 <Jesus Is King>
리틀 리처드(86)는 1950년대 로큰롤 태동기의 스타였다. 기상천외한 의상과 과격한 퍼포먼스, 독특한 창법으로 기성 음악 시장에 반항적인 로큰롤을 유행시켰다. 그랬던 리처드는 돌연 1957년 은퇴를 선언했다. ‘지구가 화염에 휩싸인 환상’을 보게 됐는데 그것을 신의 계시로 여긴 것이다. 이후 반항 세대의 영웅은 독실한 신앙인이 되어 전 세계를 순회하고 포교 활동을 벌였다.
지난 26일 새 앨범을 발표한 래퍼 카니예 웨스트에게선 리틀 리처드의 모습이 겹친다. 그의 새 앨범 이름은 <지저스 이즈 킹(Jesus Is King)>이요, 그 음악은 ‘주님은 나의 빛’이라 칭송하는 가스펠 힙합이다. 지난해 9월 본인의 인스타그램으로 예고한 <얀디(Yandhi)>가 무기한 연기되고 온라인 유출되며 1년 동안의 씨름을 거친 끝에 새로이 탄생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 때 카니예 웨스트는 자신의 위치를 예수에 비유했다. 2013년 발표한 여섯 번째 정규작의 이름은 <이저스(Yeezus)>였다. 실제로 그는 2000년대 힙합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었고, 2010년 발표한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로 힙합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음악계에서 한 장르의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 카니예의 위상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믿음은 <이저스> 속 한 곡을 ‘나는 신이다(I’m a god)’라 명명할 정도로 거대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성공한 음악가이자 패션 브랜드 ‘이지 부스트’를 가진 사업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조울증에 시달렸고, SNS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여러 메시지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도널드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함은 물론 ‘흑인 노예제도는 선택이었다’는 망언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랬던 카니예는 올해 1월부터 선데이 서비스(Sunday Service)라는 이름의 공개 음악 예배를 진행하며 신의 뜻을 전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음악가들과 목회자들이 참여하여 가스펠과 힙합을 아우르는 ‘선데이 서비스’ 속 음악이 <지저스 이즈 킹>에 담겨있다. 그 내용이 너무도 신실해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 같다.
‘에브리 아워(Every hour)’의 성가대 합창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신은 우리의 왕이자 우리는 그의 병사’라는 ‘셀라(Selah)’, ‘팔로우 갓(Follow god)’과 ‘온 갓(On god)’, ‘갓 이즈(God is)’, ‘지저스 이즈 로드(Jesus is lord)’까지 일관된 예수의 구원과 주 찬양을 힘차게 노래한다. 조울증에 고통받던 자신을 온전히 마주했던 전작 <예(ye)>의 혼란과는 정반대다.
<지저스 이즈 킹>이 카니예 웨스트의 첫 신실한(?) 시도는 아니다. <이저스>의 바탕을 이루고 있던 기독교적 세계관은 물론, 2016년에는 ‘울트라라이트 빔(Ultralight beam)’이라는 장엄한 노래로 신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저스 이즈 킹>만큼 실제 가스펠 노래를 가져와 뼈대를 세우고, 한치의 예외 없이 평이하게 찬양과 복음을 전하는 작품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카니예 웨스트의 앨범은 단단하지만 동시에 평범하다. 1~2분 사이로 곡 길이가 짧지만 만듦새가 깔끔하지 않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못한다. 실제로 카니예 웨스트는 앨범 발매 후에도 계속해서 스트리밍 음원을 수정하여 업데이트하고 있다.
실제 가스펠 음악을 옮긴 노래들과 전위적인 음악을 샘플로 사용한 곡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무색무취하다. 영국의 <가디언> 지는 이 앨범을 두고 ‘덜 익은 노래들이 카니예 웨스트의 성스러운 계몽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라는 평을 내렸다.
< 지저스 이즈 킹 >의 신앙도 마냥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한 때 카니예 웨스트는 2004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켰을 때, 전국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은 흑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라 일갈하던 인물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고 우간다의 독재자 요웨리 무세베니에게 이지 부스트를 선물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자유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아티스트라지만 카니예의 종교적 스탠스는 보수적 행보에 가깝다.
성스러운 예배 역시 새로운 사업의 한 갈래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지난 4월 미국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에서 선데이 서비스 무대를 펼친 카니예는 공연을 기념해 다양한 기념 의류를 발매했으며, 7월에는 의류 라인 사용 목적으로 ‘선데이 서비스’ 상표 등록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저스 이즈 킹> 역시 음악 이상으로 인기 있는 것이 앨범 머천다이즈(기념품)이다. 실제로 앨범 발매일이었던 25일(현지 시각) LA에서는 <지저스 이즈 킹>의 팝업 스토어가 열려 11월 16일 발매 예정인 ‘이지 380’과 머천다이즈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음악 자체보다 선데이 서비스 머천다이즈, 이지 부스트 신상품 프로모션이라는 설명에 관심이 끌린다. 미완성본을 급하게 발표하여 실물 앨범 발매 전까지 음원을 고치는 행위는 그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목회자가 되었던 리틀 리처드는 1962년 돌연 교회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금 로큰롤 스타가 되었다. 이유는 그 해 영국에서 소울 가수 샘 쿡(Sam Cooke)과 함께한 복음 공연이었다. 신앙인들은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과감한 공연을 선보이는 리틀 리처드를 불경하게 보아 야유를 쏟아댔다.
카니예 웨스트의 경우는 다르다. 선데이 서비스 공연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앞다투어 참여하는 인기 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머천다이즈는 발매와 동시에 품절된다. <지저스 이즈 킹>의 메시지도 묵직하다. 다만 음악적 완성도가 의문이고, 그 신앙의 바탕도 최근 행보와 비교해보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본인의 브랜드에 십자가를 추가하려는 ‘21세기 음악 천재’의 복음이 여러 모로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