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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Dec 10. 2019

유투(U2) 내한, 공연 예술의 정점을 목격하다

‘더 조슈아 트리 투어’가 깊이 새긴 이정표


2015년 폴 매카트니는 놀라웠고 2016년 콜드플레이는 경이로웠다. 그리고 2019년의 유투(U2)는 인생을 바꿀만한 경험을 선사했다. 43년의 기다림 끝에 ‘모든 것을 가진’ 록 밴드의 ‘지상 최대의 콘서트’를 마주한 관객들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갔다. 황홀한 무대 장치와 치밀하고 유기적인 기획, 과거와 현재의 상처를 보듬으며 미래를 인도하는 메시지 앞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환호, 목놓아 부르는 ‘떼창’과 감격의 눈물이 내내 쏟아졌다. 공연장을 나서며 '내 삶은 유투 공연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로 나뉜다'라 감격하던 한 관객의 소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미 유투의 월드 투어는 거대한 규모와 효과적인 서사로 무장한 대중음악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영상으로 간접 체험하는 것과 오감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화물 전세기 3대, 50피트 트럭 16대로 직접 공수해온 가로 61m, 세로 14m의 거대한 8K 해상도 LED 스크린의 위력 앞에 그간의 모든 무대 장치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공연 시작 전 고고히 서있는 나무 한 그루가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이 스크린의 목적은 투어의 모체가 된 앨범 < The Joshua Tree >의 발매 30주년을 기념하는 데 있었다. 붉게 물든 배경 아래 검은 나무의 그림자 아래로 거대한 도로가 펼쳐지며,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의 명징한 기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With or without you'의 합창을 장식한 협곡의 일출은 물론 'Bullet the blue sky'의 공격적인 영상 효과, 아일랜드 국기의 녹색-흰색-주황색을 형상화한 'One tree hill'의 거대한 나무가 쉴 틈 없이 시선을 앗아갔다.

유투 공연의 대단한 점은 명확히 설정해 둔 핵심을 소개하는 방법이 너무도 친절하고 흥미롭다는 것이다. 유투의 대표곡만 아는 관객이라도 화려한 영상과 특수 효과, 선명한 서사를 갖춘 < The Joshua Tree > 공연을 즐기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언뜻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등장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보노의 친절한 설명이 뒤따랐다. 성조기와 미국의 등장에 대해 아일랜드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재치 있는 과거 영상을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빠트리지 않았다.



이런 짜임새 있는 서사를 가능케 하는 것은 역시 유투의 녹슬지 않은 음악 역량이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Sunday bloody sunday'와 'I will follow'부터 이미 관객석은 열광과 함성으로 끓어올랐다. 'Sunday bloody sunday'와 'New year's day'의 연주는 마치 음원을 듣는 것처럼 깨끗했고,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와 'With or without you' 등 < The Joshua Tree > 앨범의 노래들은 1987년과 비교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세월의 흐름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어도 보노의 목소리는 타고난 아름다움을 뽐냈다. 깊고도 호소력 짙은 보컬과 이를 뒷받침하는 에너지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콘서트를 여는 밴드의 프론트맨다운 실력이었다. 디 에지의 황홀한 기타 플레이는 말 그대로 황홀했다. 보노의 소개처럼 '기타 과학자'라는 칭호가 정확했다. 딜레이 주법을 활용해 꽃잎처럼 휘날리는 사운드가 귀를 파고들었다. '음향 무덤'으로 악명 높은 고척 스카이돔의 벽을 완벽히 넘진 못했으나, '선방했다'라는 평가라도 받은 아티스트는 유투가 처음이다.

< The Joshua Tree > 앞뒤로 밴드의 과거부터 현재를 쭉 훑어 곡을 선정한 것 역시 오래도록 밴드를 기다린 팬들에 대한 배려였다. ‘Elevation’, ‘Vertigo’ 등 강렬한 로큰롤 트랙으로 열광을 불 오리지널 셋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I will follow’와 ‘Desire’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합창으로 응답했다. 보노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애덤 클레이튼이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라 약속하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유투는 처음 방문하는 한국을 가벼이 보지 않았다.


견고한 실력을 바탕으로 유투는 밴드 고유의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풀어 거부감 없이 수용시킨다. 실제로 유투는 이 날 공연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과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현안을 끊임없이 언급했다. 김정숙 여사의 방문으로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남북 평화 무드는 물론 인권과 평화, 청소년 자살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은근하면서도 과감했으며 2만 8천여 명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서로 다른 감격을 안겨주었다.

유투가 이 날 평화의 상징으로 삼은 인물은 존 레논이다. 공연이 펼쳐진 12월 8일은 그의 기일. 내년이면 우리는 뉴욕의 아파트 앞에서 정신 질환자의 총탄에 쓰러진 존 레논의 사망 40주년을 맞는다. 유투는 원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는 내용의 'Pride'를 노래하던 도중 이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며, '멤피스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를 '뉴욕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로 바꿔 불렀다. 공연 중간 'Stand by me'의 일부를 삽입하고 비틀즈의 'She loves you'를 노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미 공연 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Ultraviolet(Light my way)'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고난 겪는 이들을 위로하는 이 곡을 시작함에 앞서 보노는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스토리(Herstory)의 시대’라 외쳤다. 이윽고 화면에 수놓아진 인물들은 여성의 힘과 여성의 인권, 여성의 연대를 상징하는 이들이었다. 제주 해녀들로부터 출발해 화가 나혜석, 서지현 검사, 이수정 교수가 지나가고,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설리의 얼굴이 등장하자 관객석이 숙연해졌다. 눈물을 훔치는 여성 관객들에게 유투는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라는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다. 밴드의 섬세한 사전 준비가 다시 한번 큰 감동을 안겼다.

고척 스카이돔을 가득 메운 2만 8천여 명의 관객들은 1976년 데뷔한 유투가 4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하는 이유를 정확히 확인했다. 우선 기술의 승리다. 150명 이상의 기술 스태프들이 공연장 곳곳에 투입되어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대중음악 전용 아레나 급 공연장이 없는 한국에서 이 날 유투의 무대 장치와 사운드 튜닝은 향후 해외 그룹들의 내한 공연은 물론 한국 아티스트들의 무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공연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새긴 셈이다.

또 하나의 감동은 그 압도적인 기술 아래 겸손과 근면함으로 빚어낸 '하나 됨'의 가치다. 전 세계 발길이 닿는 나라마다 서로 다른 감격을 안기며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모습은 안이함과 거리가 멀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곳, 제 조국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어져있군요!'라는 보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외국 밴드 공연을 봤는데, 이상하게 '국뽕'이 차오른다!'는 한 관객의 후기가 이 신비로운 경험을 압축하고 있다. 이 날 우리는 '공연 예술의 정점'을 경험했다. 최근 문법으로 말하자면, '인생 공연 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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