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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Nov 28. 2019

기계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

박경이 쏘아 올린 사재기 의혹, 마미손의 가사로 해석해보자.


음원 사재기 의혹에 불이 붙었다. 24일 블락비 멤버 박경이 자신의 트위터에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라는 글을 게시하며 시작된 논란은 실명 거론된 가수들이 일제히 명예훼손 혐의로 박경을 고소하며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됐다. 이후 가수 성시경,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멤버 김간지 등이 음원 사재기로 의심되는 정황을 고발하며 박경의 발언을 지지하며 의혹의 눈초리가 커지고 있다.


박경이 언급한 가수들은 현재 멜론, 지니, 벅스 등 음원 서비스의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올라있는 가수들이다. 대부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예 가수, 혹은 기성 가수나 팀의 애절한 발라드 노래다. 지난해 4월 닐로의 ‘지나오다’가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숀, 우디 등의 아티스트들이 비슷한 경로로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거듭되는 의심의 목소리에 소속사들은 “바이럴 마케팅을 통한 홍보 방법의 효과”라며 반박했고, 이 문제를 확인한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사재기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박경의 발언은 개운치 못한 가요계에 다시 한번 강한 의문을 던진 셈이 됐다.


이에 26일 가수 마미손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현재 음원 사재기 논란의 핵심을 압축한 노랫말이 촌철살인이다. 마미손의 가사를 통해 음원 사재기 의혹을 살펴본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Official Audio - Mommy Son)





천 개의 핸드폰이 있다면 별의 노래만 틀고 싶어


음원 사재기는 특정 곡을 비정상적인 경로로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 재생하거나 다운로드하여 음원 차트의 순위를 높이는 행위다. 음악 재생 횟수 (스트리밍 건수)와 다운로드 건수가 충족되면 음원 플랫폼 차트의 순위권에 오를 수 있기에 가능한 조작 행위다.


이는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의거하여 불법 행위다. 음반·음악 영상물 관련 업자 등이 제작·수입 또는 유통하는 음반 등의 판매량을 올릴 목적으로 해당 음반 등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음원을 구입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감상의 주된 방법으로 자리한 2010년대 초부터 사재기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음원 사이트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만 하면 더 큰 성공과 홍보를 담보할 수 있는 덕이다.


수백, 수천 대의 공기계 휴대폰을 동원하고, 해킹과 유령 계정 등을 통해 다수의 음원 사이트 계정을 확보해 동시다발적으로 특정 곡을 재생해 차트 상위권에 노래를 진입시키는 수법이다.


2015년 JTBC의 대대적 보도를 통해 브로커들의 사재기 현장이 공개되었다. 중국 등 해외에 ‘작업장’을 차려놓고, 확보한 다수 기계를 통해 특정 음원을 재생하는 현장은 가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JYP, YG 엔터테인먼트 등 연예 기획사들이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별거 없더라 유튜브 조회수

페북으로 가서 돈 써야지


박경이 트위터를 통해 저격한 바이브, 임재현, 송하예, 장덕철 등의 성공은 이와 같은 전통적 개념의 음원 사재기와는 거리가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지나오다’의 가수 닐로가 소속된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이 드문 성공을 “소속 가수를 띄우는 ‘새로운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라 밝혔다. 그 전략이 바로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곡을 홍보하는 전략을 뜻한다. 이를 기획하는 마케팅 업체들은 기획사, 소속사의 의뢰를 받아 타 가수들의 노래 커버 영상과 페이스북 홍보 게시물을 준비한다.


이들의 주된 홍보 창구는 적게는 수십만부터 많게는 백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다수의 페이스북 페이지,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유튜브 채널이다. ‘너만 들려주는 음악’,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이런 업체들이 직접 기획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닐로의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의 전략은 이 방법은 다수 대중을 겨냥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광고 툴을 통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집중된 음원 서비스 주 이용층들을 겨냥하고, 지역 + 성별 + 시간대 등 세부적으로 조절된 마케팅 믹스를 활용한다.


일단 차트에 진입하기만 하면, 차트 상위 100곡을 자동 재생하는 나머지 다수 소비자들에 의해 순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번 이름을 알리면 후속곡은 더 홍보할 필요도 없다.


주된 플랫폼이 페이스북멜론인 이유도 있다. 한때 멜론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점유율은 6~70% 정도에 육박했다. 그러나 현재 시장점유율은 49.6%로 하락했고, 그마저도 뉴미디어 플랫폼은 빼고 음원 사이트만 비교한 비율이다.


2018년 모바일 서비스 이용행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43%의 대중이 주된 음악 감상 도구로 유튜브를 꼽았다. 멜론은 28.1%에 그쳤다. 연령대 별로는 오직 20대만이 유튜브보다 멜론을 많이 사용한다. 음악 시장을 대표했던 멜론 실시간 차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차트’의 지위를 잃었다. ‘멜론 사용자들의 차트’가 됐다.


이 때문에 소셜 미디어의 마케팅과 홍보, 유입만으로도 차트 순위가 쉽게 바뀌는 것이다. 음원 사재기는 불법이지만 바이럴 마케팅은 불법이 아니다. 바이브, 송하예, 임재현 등 박경에게 언급된 아티스트들이 ‘절대 사재기가 아니다’라며 당당히 말하는 이유다. 의심스러운 ‘차트 역주행’ 임은 분명했으나, 음원 서비스 업체가 상세 데이터를 공개하기 전까지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기계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


하지만 박경이 입을 연 이후 가수들의 증언은 이 바이럴 마케팅 아래의 사재기 행위를 의심케 만들었다.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김간지는 사재기 브로커의 실제 제안을 폭로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신곡을 노출하고, 바이럴 마케팅으로 순위 폭등을 꾸미자’는 정황을 설명하고, 그 이면에서 은밀히 자금을 투자해 차트 순위 상승을 만든다는 것이다. 김간지는 음원 수익의 80%를 브로커가 갖고, 가수가 나머지 20%를 가져가는 배분 비율도 언급했다.


가수 성시경 역시 27일 KBS 해피 FM ‘매일 그대와 조규찬입니다’에서 관련 일화를 전했다.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 ‘전주를 없애고 제목을 이렇게 하라’는 주문을 넣으며 작곡 과정에도 관여를 한다는 것이다.


성시경의 발언은 사재기 의혹을 받는 노래의 대부분이 발라드라는 점, 신인 아이돌 그룹이나 팝 아티스트들의 바이럴 마케팅은 차트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계절이 지나 우리 헤어진 여름에도 

발라드만 틀고 싶어


닐로의 ‘지나오다’,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송하예의 ‘새사랑’, 황인욱의 ‘포장마차’ 등 이들 발라드 곡들은 대부분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슬픔과 감동의 정서를 깔고, 고음 파트를 통해 가창력을 과시하려 한다.


이와 같은 비슷비슷한 ‘양산형 발라드’ 곡들이 2019년 한 해 내내 음원 서비스 차트를 장악했다. 마미손은 이렇게 분노한다.


짬에서 나온 바이브가 그 정도라면
야 쪽 팔린 줄 알아야지


과거 ‘차트 역주행’은 영광스러운 호칭이었다. 중소 소속사의 한계와 유명 가수들에 밀려 발매 당시에는 인기를 얻지 못하다, 차츰차츰 인기를 얻으며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는 훈장과 같았다.


그러나 바이럴 마케팅과 발라드 노래들의 차트 점령 이후 ‘역주행’은 수상한 이름이 됐다. 지금 차트에 올라있는 발라드 노래들이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은 극히 드물다.

상황을 가정해보자. 어느 날 음원 서비스를 이용하다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모르는 가수의 노래를 발견했다. 익숙한 반주, 읍소하는 보컬의 흔한 발라드 노래다. 이런 노래들이 내가 알고 있는 유명 가수들의 곡보다 높은 순위에 오래 머물고 있다. 익히 보아온 ‘역주행’ 곡의 상승 그래프와도 다르다.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은 음악의 진정성을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너만 몰랐던 음악’은 몰라도 되는 음악이었고 ‘진짜 좋은데 묻힌 노래’는 좋지 않았다. 음원 사재기처럼 불법 행위는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참작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마케팅’이 아니라 음원 사재기의 변형된 형태라는 의견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심도 있는 수사와 취재를 통해 음원 서비스의 차트 구조와 데이터, 마케팅 아래의 사재기 의혹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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