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해 12월 31일이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썼다. 즐겨 들은 노래, 인상 깊게 본 영화, 좋았던 드라마와 책 모두 악착같이 리스트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다음 연도로 넘어가기 전 모두 정리하고 공유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좋은 음악은 많았고 좋은 영화도 많았으며 좋은 책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를 표현하고 뱉고 토해내는 일련의 과정이, 조금 강하게 표현하자면 뭐랄까, 배설 행위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다녔다. 만화경처럼 화려하게 번쩍이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 콘텐츠에 눈이 멀어 닥치는 대로 손을 뻗어 맛을 음미하고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빠르게, 남들보다 먼저, 솔직하게, 열심히, 기계적으로. 지금까지의 내가 신봉해 온 단어들이다.
결과적으로 그건 내 가치를 스스로 내가 낮추는 과정이었다. 말의 깊이는 얕아졌고 문장은 시들어갔다. 유년기 운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접했던 모든 것들에 기대서 지식을 비틀어 즙을 짜내는 느낌이었다. 2017년과 2018년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분주했지만 그 결과로 돌아온 건 별 볼 일 없었다. 기계적인 일상과 생각 없는 ‘해야지’가 일상을 파먹어갔다. ‘열심히 한다’, ‘잘하고 있다’라는 격려는 일종의 강박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좋은 경험이라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2018년을 마치며 품었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에서 자꾸만 멀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예전처럼 성실하지도 못했고 관용을 베풀지도 못했다. 차별과 고정관념을 없애야 한다고 여느 해보다 가장 많이 떠들고 다녔음에도 그랬다.
래퍼 제이 클레프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노래로 머릿속을 어지러이 헤집는 생각의 굴레, 그를 바라보는 외부의 편견 어린 시선을 사색했다. 많은 생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현실에서 내 손아귀에 움켜쥘 수 있느냐, 그 어떤 사람이 봐도 내가 그 생각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냥 공상가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고 존재하도록 만들지 못해 괴로웠다.
며칠 전 우연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정승일 씨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었다. 진중권 씨와의 과거 베를린 유학 경험, 방송 경험을 털어놓는 내용이었다. 그중 마지막 문단이 나를 비추는 것만 같아, 마음속 한 구석이 깊이 어지러워졌다.
“진중권만 아니라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발언을 쏟아내는 인물들을 간혹 본다. 남들 1시간 이야기하면 본인은 4시간, 5시간 이야기하는..... 나는 속으로 "저런 사람들은 언제 책 읽을 시간, 현실을 둘러볼 시간을 갖는 거지? 현실/진실에 관해 자신이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더 읽고 더 관찰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거 아냐 ??" 라는 의문을 강하게 가지곤 한다.”
올해의 나는 예년만큼 많이 말하지 않았다. 아마 글도 예년에 비하면 적게 썼을 것이다. 보고 듣고 읽고 느꼈던 것들 전부를 애써 글로 기록하고 말로 전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찾는 곳은 오히려 늘었다. 메이저 언론사에도 기고를 하고 정기적인 모임도 하게 됐다. 덜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데에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투루 나의 감정을, 나의 문장을, 나의 생각을 낭비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부터 무언가를 털어놓으면 나중엔 무엇이 남아있을까. 지금은 더욱 채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사랑, 영혼, 음악, 책, 사상, 지식, 그 모든 것들. 내가 단단해질 때까지, 깊이 채워나가고자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2020년을 내 인생의 분기점으로 정해왔다. 올해의 성과는 그 비워내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