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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02. 2020

코로나에 파고든 악(惡)의 편견

<1> 콘(Korn)의 ‘Shoots And Ladders’



캘리포니아 출신 뉴 메탈(Nu Metal) 밴드 콘(Korn)은 1994년 동명의 데뷔 앨범 <Korn>의 수록곡 ‘Shoots and ladders’로 음산한 ‘잔혹 동화’를 노래했다. 도입부 1분에 달하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악기 백파이프 연주가 불길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밴드의 대표곡이다.

‘Shoots and ladders’의 음산한 세계를 구상한 장본인은 콘의 리더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다. 그의 유년기는 불우했다. 부모는 어린아이를 방치했고 베이비시터는 그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학창 시절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성적 학대와 폭력, 집단 따돌림의 과정에서 깊은 내면에 분노가 쌓여갔다.

조나단에게 어린 시절 들었던 동요는 고통과 학대의 상징이었다. ‘숨겨진 목소리가 드러나고 / 어둠은 실제로 다가오네 / 이 모든 악(惡)을 부른 동요집의 페이지를 바라봐’라 노래하는 이 노래는 '메리의 어린양(Marry had a little lamb)', '런던 다리 무너지네(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등 동요 가사를 그대로 가져왔다.



밴드는 음울하고 축축한 세계 아래 천천히 화를 곱씹으며 전진하다 영어 동요 ‘This old man’에 이르러 억눌렀던 광기를 모두 터트린다. 절그럭거리는 필티(Filthy)의 베이스와 면도날 같은 제임스 ‘멍키’ 셰퍼(James ‘Monkey’ Shapper)의 소리와 함께 우리가 알던 동요가 해체되고 불안의 정서가 곡을 압도한다. 해맑은 동심 이면의 인종차별, 집단 따돌림, 혐오로부터 확산되는 분노와 증오가 민낯을 드러낸다.

여러 동요 중 곡을 시작하고 주축을 이루는 노래는 영국 동요 ‘링 어 링 오’ 로지스(Ring a ring o’Roses)’다. 조나단 데이비스가 조곤조곤 ‘장밋빛으로 물든 로지 주위를 돌아요 / 주머니에 꽃다발을 가득 채워 두고 / 아-티슈, 아-티슈 / 우리는 모두 쓰러져요’라 노래하는 부분이다.
 


과거 서양의 아이들은 우리의 강강술래처럼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놀이를 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요 연구가들은 이 발랄한 동요에 새로운 해석을 제기했다. '링 어 링 오' 로지스'는 사실 1665년 런던 인구의 20%인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 대역병’ 시기, 흑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아이를 추모하고 경고하는 내용의 노래라는 것이다.

'링 어 링 오' 로지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질병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발랄한 동요에도 흔적을 남겼음을 전제하고 있다. 실제로 판데믹(Pandemic)이라 불리는 대규모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 속 가장 큰 위협적인 적이었다. 치료법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수백에서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내며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 특히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케 한 흑사병과 20세기 1억 명의 희생자를 낳은 스페인 독감은 인류 문명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었다.

현대적 의료 기술과 정확한 정보가 갖춰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전염병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이 더욱 강했다. 그래서 때로는 질병으로 인한 희생자들보다 무고한 피해자들의 수가 더 많았다. 구약 성경에도 등장하는 한센병 환자들은 ‘문둥이’라 멸시받으며 환자들만의 공간에 격리됐고,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와 유대인, 무슬림 등 이교도들이 흑사병을 퍼트렸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횡행하며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23일 정부는 코로나 19 대응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의 ‘심각’으로 올렸다. 2월 18일 대구 경북권으로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며 26일 기준 총 확진자 수는 1천 명을 돌파했다.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될수록 공포와 혐오 표현 역시 급속히 퍼져나간다. 질병에 대한 준수한 대처가 이뤄지던 국내 발병 초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지며 실질적 가능성과 기회비용, 정확한 사실 대신 두려움에 기반한 비난이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세계 보건기구는 “신종 코로나 관련 과잉 정보가 괴담으로 번지고 있다며” 작금의 사태를 ‘인포데믹(Infodemic)’, 정보 전염병이라는 새 용어로 정의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자연스러우나 그것이 조작된 정보와 혐오 표현의 창구가 되어선 안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입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진위 여부 구분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해질수록 사회 전반에 스며든 혐오와 차별, 낙인찍기의 목소리도 높아간다. 콘과 조나단 데이비스가 ‘Shoots and ladders’로 광기 어린 폭발을 경고했듯, 차츰차츰 쌓여가는 악(惡)의 편견은 분출의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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