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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06. 2020

라우브의 [~how i’m feeling~]

준비된 새 시대 팝스타의 다채로운 세상



스트리밍과 유튜브 시대의 젊은 팝스타들은 자유롭다. 그들은 최신 전자 기기를 능숙히 다루며 홀로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과 연주를 모두 도맡는 멀티 플레이어들이며, 소셜 미디어 채널과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결과물을 공개하고 세상에 홍보하는 1인 기획사들이다. 인터넷이 허락한 이 무한 자유의 세상에서 찰리 엑스시엑스(Charli XCX), 릴 나스 엑스(Lil Nas X), 바찌(Bazzi), 트로이 시반(Troye Sivan) 같은 스타들이 자신을 선명히 드러내며 2020년대의 ‘미래 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1994년생 아리 스타프랜스 레프(Ari Staprans Leff), 라우브(Lauv)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이미 우리에겐 2019년부터 국내 스트리밍 실시간 차트 100권 내에 꾸준히 진입하며 ‘준 가요급’으로 사랑받는 ‘Paris In The Rain’의 주인공으로 너무도 사랑받는 이름이다. 이후 트로이 시반과 발표한 ‘i’m so tired...’, 또 다른 국내 히트곡 ‘2002’의 앤 마리(Anne-Marie)와 함께한 ‘fuck i’m lonely’ 역시 팝 마니아들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지난해엔 방탄소년단(BTS)이 발표한 ‘Make It Right’을 새로운 무드로 리믹스하여 그들의 글로벌 팬덤 아미(A.R.M.Y)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라우브는 14살부터 곡을 쓰고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에 눈을 떴다. 아울 시티(Owl City), 네버 샤우트 네버(Never Shout Never) 등의 팀에게 영향을 받았고 재즈를 공부하며 전자음 위주의 음악 세계에 독특한 특성을 더해갔다. 이후 뉴욕 대학교 스타인하트 문화대학에 진학하며 뉴욕에 발을 들인 라우브는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작곡가로 본격적인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 전부터 마이스페이스(Myspace),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 스포티파이(Spotify) 등 다양한 음악 서비스를 활용하던 라우브는 젊은 팝 스타답게 자신의 결과물을 인터넷 상에서 효과적으로 홍보했다.


2015년에는 그 전 해 발표한 그의 첫 싱글 ‘The Other’를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했는데, 이 곡이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얻으며 글로벌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톱 100(Global Top 100)’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가져다줬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졸업 후 데뷔 EP <Lost In The Light>를 발표하며 세상에 자신을 알렸고, 이후에는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협업과 작곡 과정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알렸다. 미국 일렉트로닉 트리오 치트 코드스(Cheat Codes)와 데미 로바토가 함께 부른 ‘No Promisis’, 찰리 엑스시엑스의 ‘Boys’가 라우브의 작품이다.


이후로는 가파른 상승세였다. 2017년 넷플릭스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 삽입되어 그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I Like Me Better’를 발표하고, 에드 시런(Ed Sheeran)의 ‘디바이드(Divide)’ 아시아 투어에 게스트로 참여하여 활약을 이어갔다. 이렇게 만들어온 곡들을 2018년 종합해 <I met you when I was 18. (The playlist)>라는 제목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Paris In The Rain’이 수록된 앨범이다.


 형형색색 팔레트로 담아낸 감정과 정체성



라우브는 히브리어로 사자를 의미하는 본인의 본명 아리(Ari)를 라트비아어로 표기한 이름이다. 생일도 8월 8일로 사자자리 태생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사나운 맹수의 것과 거리가 멀다. 에너지로 가득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감정을 어루만지는 라우브의 노래를 듣다 보면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게 초원을 거니는, 풍성한 갈기의 젊은 수사자가 연상된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3분 이내의 확실한 멜로디 속 청춘의 멜랑콜리한 감정을 효과적인 단어로 압축하는 그의 음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다채로운 장치로 지루함을 피하며 효과적으로 반복 청취를 유도한다.


그가 발표하는 첫 정규 앨범 <~how i’m feeling~>은 그 폭넓은 재능과 형형색색의 감정을 21곡에 걸쳐 풀어낸 작품이다. 앨범 커버 속 하얀 옷차림의 라우브에 올라타 있는 파랑, 보라, 빨강, 초록, 노랑, 주황색의 작은 라우브들은 아티스트가 밝힌 대로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수많은 나들”을 상징한다. 4개월 전 공개한 4번 트랙 ‘Sims’의 뮤직비디오에서 예고된 바 있는 이 컬러풀한 콘셉트 아래, 3분 이상을 넘지 않는 확실한 개성의 노래들이 신예 팝스타의 청춘을 담아내고 있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색은 ‘절망적이게도 사랑에 빠진’ 파랑 라우브다. <I met you when I was 18.>의 강렬한 파랑이자 ‘Paris In The Rain’으로 각인된, 아티스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우울의 정서다. 마림바를 연상케 하는 맑은 신시사이저 소리와 함께 출발하지만 이별 후 공허한 마음을 욕설과 함께 숨기지 않는 ‘fuck i’m lonely’, 사랑 노래에 지쳤다며 집으로 가고자 하는 나른함을 감각적인 기타 리프 위 트로이 시반과 함께 노래한 ‘i’m so tired...’가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과 함께한 ‘Who’에서의 신비로운 고독 역시 닿을 수 없는 사랑을 짙게 노래하는 곡이고, 팝 밴드 레이니(LANY)와의 협업 ‘Mean it’ 역시 감각적인 기타 톤 아래 짝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런 연약한 감정은 오렌지의 ‘나약한’ 라우브로 이어진다. 잔잔한 건반 연주로 출발해 2000년대 더 스크립트(The Script)가 연상되는 밴드 연주를 전개하는 ‘Lonely Eyes’와 피아노 한 대로 꾸려낸 ‘Julia’의 울림이 절절하다. 특히 앨범의 처음을 장식하는 ‘Drugs & the Internet’, 그리고 그와 쌍을 이루는 수미상관의 마지막 곡 ‘Modern Loneliness’의 구성이 흥미롭다.

 

Lauv ‘Drugs & the Internet’

‘Drugs & the Internet’은 <I met you when I was 18.> 발표 후 우울증을 겪은 라우브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상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환멸을 겪고 만든 곡이다. 건반 연주와 함께 차분히 시작하는 곡은 통통 튀는 후렴구에서 “난 내 모든 친구들을 약과 인터넷으로 바꿨어”라 고백하며 반전을 안긴다.


특히 라우브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곡이 될 것’이라 말한 ‘Modern Loneliness’의 노랫말은 스마트폰 시대의 우울을 겪는 우리의 완벽한 자화상이다. “혼자인 적은 없지만 우린 언제나 우울해 / 내 친구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전화도 않고 문자도 하지 않아”라는 가사가 제목 그대로 ‘현대의 고독’을 살아가는 청춘을 대변하고 있다.


다행히도 라우브가 준비한 색은 네 가지나 남아있다. “영원히 슬프고 싶지 않아”라는 힘찬 메시지를 힘 있는 기타 피킹으로 선보이는 ‘Sad Forever’의 라우브는 빨간색의 ‘화끈한’ 면모와 ‘긍정적인’ 노란색의 에너지를 모두 갖고 있다. 제목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를 담은 심플한 기타 팝 ‘Sweatpants’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경쾌한 비트로 문신에 담긴 의미를 노래하는 ‘Tattoos Together’의 라우브의 모습이 발랄하다. 통통 튀는 신스팝 ‘Invisible Things’도 빼놓을 수 없다.


‘바보 같은’ 초록색의 라우브와 ‘실존하는’ 보라색의 라우브도 재미있다. “휴대폰을 통해 사랑할 거야”라며 장거리 연애를 암시하는 ‘For Now’는 내용과 달리 꿈결 같은 잔잔한 구성이 낭만을 가져온다. 오랜 친구에게 친구 이상의 관계를 느끼고 감정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Feelings’, 너무도 완벽한 사람을 의도치 않은 상황에 만난 것에 오묘해하는 ‘Sims’ 모두 밝은 톤 위에서 재치 있는 가사를 전개한다.


트위터에서 유행하던 “삶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캐나다로 이사하라”는 구절에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Canada’는 특히 재미있는 트랙이다. 진한 베이스 연주와 공간감 넘치는 비트 위 라우브는 2018년 제60회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한 캐나다 가수 알레시아 카라(Alessia Cara)와 호흡을 맞춰 젊은 커플의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낸다.

 

무한의 가능성, 다재다능한 매력의 라우브



라우브는 <~how i’m feeling~>을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넓은 자신의 형형색색 음악 팔레트를 활짝 펼쳐 보이고 있다. 알앤비와 재즈, 힙합, 기타 팝과 보이 밴드의 음악이 3분 이내의 정갈한 이지 리스닝 팝으로 재단되어 나온다. 상투적이지 않고 새로움과 재치로 가득한 노랫말과 감각적인 멜로디 메이킹 능력 역시 인상적이다. 선명하고 과감하다.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면에 펼쳐 보이는 것은 아티스트의 첫 작품 전략으로 더할 나위 없지만 동시에 그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라우브는 <~how i’m feeling~>으로 그런 우려로 덮을 수 없는 넓은 세계를 선보였다. 무한의 인터넷 세상을 항해하는 신진 팝스타의 기분 좋은 출사표다.


Lauv ‘fuck, i’m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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