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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pr 24. 2020

코로나19에 격리당한 음악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해갈 뿐이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4월 11일 중앙 방역대책본부 권준우 부본부장의 잔인하고도 정확한 예측이다.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이 지구 상 모든 국가들을 멈춰 세우며 인류는 원치 않은 새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당연한 것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허물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아래 기성 산업에 적색 경고등이 켜지는 중이다. 


대중음악계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에 직격탄을 맞았다. ‘봄의 침묵’에 소리를 잃은 격이다. 공연, 콘서트, 페스티벌, 기획, 앨범 발매, 신곡 발표 등이 모두 미뤄지거나 취소되며 전례 없는 침체기가 찾아왔다. 뮤지션들과 관계자, 기획사 모두가 의도치 않게 숨을 고르고 있다. 매주 활기를 띠어야 할 공연장과 클럽은 복귀를 기약할 수 없는 긴 휴지기를 겪었고, 팬들을 설레게 했던 거대 페스티벌과 행사 모두 먼 옛날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성공적인 방역체계를 구축한 우리의 사정은 나은 편으로, 기지개라도 킬 수 있는 한국과 달리 팝 시장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다수의 해외 매체들은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콘서트 업계의 손실이 9억 달러(1조 1,11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코첼라(Coachella), 글라스톤베리(Glastonbury) 등 굵직한 페스티벌은 물론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 같은 행사까지도 모조리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연 기획사 라이브네이션과 AEG가 그들의 일정표를 깔끔히 비웠을 정도다. 뮤지션은 물론 투어 매니저 및 음향 엔지니어들부터 공연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다. 


음악 업계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외출을 금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더 많이 들을 것이라 희망을 품었다. 오판이었다. 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Netflix)가 한 달 새 1600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모으며 거대 기업으로 발돋움한 반면 음악 재생은 눈에 띄게 줄었다. ‘뮤직 비즈니스월드와이드’에 따르면 미국 사회 코로나바이러스 공포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3월 13일부터 19일까지 미국 내 스트리밍 횟수는 7.6%, 디지털 음원 소비는 10.7% 감소했으며 피지컬 앨범 소비는 27.6%나 줄어들었다.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의 경우 ‘톱 200’ 차트 재생수가 전 주 대비 1억 8천 건이나 감소했다.



2000년대 이후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던 음악 산업계는 2010년대 이후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며 실로 오랜만에 상승 곡선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음원은 실물 음반 소비를 대체했을 뿐, 실제 성공의 핵심은 공연 및 페스티벌 업계의 성장에 있었다. ‘빌보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10명 음악가들의 평균 수입 비중에서 공연 수입이 무려 85.7%를 기록했다. 스트리밍 손실도 뼈아프지만 재개를 기약할 수 없는 콘서트 취소 및 연기야말로 더욱 치명적이다. 


이제 음악의 개념은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완벽히 옮겨왔다. 아티스트들은 그 대안을 온라인에서 찾는다. 스트리밍 횟수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같은 기간 미국 내 유튜브, 틱톡 등 영상 플랫폼 소비는 오히려 1.3% 증가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인 지금 음원 소비와 대규모 공연 및 페스티벌은 줄었으나 음악가들의 자발적인 라이브 중계는 오히려 늘었다. 특히 기성 미디어의 수혜를 받지 못했으나 소셜 미디어에 능통한 인디 뮤지션들은 빅 룸 TV(Big Room TV),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좁은 작업실을 온라인 쇼케이스 장으로 만들었다. 



고무된 음악가들은 랜선으로 연대하여 바이러스와 싸우고자 한다. 4월 19일 레이디 가가와 자선 단체 ‘글로벌 시티즌’,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최한 ‘원 월드 : 투게더 앳 홈(One World : Together At Home)’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에 맞서는 의료진을 후원하기 위해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즈, 빌리 아일리시, 엘튼 존, 알리샤 키스 등 10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합동 공연을 펼쳤고, 7일만에 3500만 달러 (약 452억 원)을 모금했다.


오는 4월 25일에는 워너뮤직그룹에서 기획한 ‘플레이온 페스트(PlayOn Fest)’가 생중계된다. 콜드플레이, 카디비, 브루노 마스, 앤 마리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유명 공연 실황이 전파를 탄다. 이들 공연은 1985년 에티오피아 기근 구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밥 겔도프와 미지 유어가 기획한 대규모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의 인터넷 시대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오프라인 시장이 온라인 시장으로 흡수되는 발걸음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이들 공연이 지금 당장 라이브 에이드만큼의 감격과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들이 쇼를 훔쳤다!’는 찬사를 받았던 퀸(Queen)의 역사적인 무대가 인터넷에서 펼쳐지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영상 스트리밍 전성기를 인도한 인터넷이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는 실황 무대의 현장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보는 것’ 뿐 아니라 ‘현실에서 함께하는 것’을 놓쳤기에 쿼런틴(Quarantine : 격리) 시대 음악은 부진할 수밖에 없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침체기다. 그럼에도 희망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코로나19 구호 기금으로 2백만 달러를 기부했고, 스포티파이는 어려움에 빠진 아티스트들을 위해 천만 달러 규모의 구호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기금 모집에 나서고 있다. 


‘원 월드’와 같은 대규모 온라인 자선 공연은 코로나19에 맞서 일선에서 투쟁하는 의료진들과 창작의 고삐를 놓지 않는 뮤지션, 음악 업계 종사자들에게 힘을 싣고 있다. ‘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선보인 방탄소년단, 4월 21일 프린스 사망 4주기를 맞아 대규모 트리뷰트 공연을 생중계한 레코딩 아카데미, 너바나 커버 라이브를 예고한 포스트 말론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위기 극복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 중이다.


분명 코로나19 이전의 음악 세계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대중음악의 가치가 불변할 것이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음악은 영상이 침투할 수 없는 일상과 감정 곳곳 아주 미세한 곳까지 파고들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 


‘원 월드’에서 리타 오라(Rita Ora)가 부른 노래 ‘I’ll never let you down’처럼 우리도 음악을 놓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시대.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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