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에서 평론가로 그리고 그 너머로
형식은 때론 실질을 좌우한다.
IZM을 거쳐간 많은 분들께는 익숙한 문장이다. 주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의미 있는 격언으로 사용된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와 유의미하고 중요한 내용도 결국 그 주장을 담아내는 것이 서투르거나 엉성하면 빛을 잃게 되니, 단어와 문장부터 글 길이까지 틀을 잘 잡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여기에 한 단어를 바꾸고 싶어졌다.
형식은 언제나 실질을 좌우한다.
20대 전까지 나는 취미로 블로그에 음악과 사회 기타 등등 전반에 대해 제멋대로 글을 쓰던 학생이었다. 운이 좋아 토털 100만 방문객을 모아놓고도 그런가 보다 하며 딱히 뭔가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운이 좋아 덜컥 합격해버린 IZM에서는 바로 그 블로그가 나를 선택한 이유라는 후기를 들려줬다. 쓸데없는 긴장감에 부들부들 떨던 첫 모임부터 지금까지 나는 속칭 'IZM 스타일'이라는 형식에 적응하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거리가 먼 앨범이 배정됐다. 장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듣던 습관이 도움이 됐다. 명반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상찬으로 가득 채운 원고는 끝내 업로드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많은 암묵적인 룰들이 있었다. 사이트 구조는 이렇게 되어있고, 문단 수는 평균적으로 이 정도이며, 문장이 너무 길어서는 안 되고, 생소한 용어를 많이 사용해서는 안되고... 기타 등등.
그 앞에는 항상 '모두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이것이 IZM의 방향이라면 방향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만 쓰면 편하다. 한 작품을 학술적으로 파고들어 길게 쓰면 재미있다. 실제로 딥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그런 글이 더 잘 쓴 것 같고, 멋지고, 인용할 거리도 많다.
하지만 항상 우리는 대중을 향해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학생도,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어렵게만 쓰고 수식만 하려고 하던 일개 블로거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중지의 마음으로도, 학술지의 마음으로도 써보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나갔다. 그렇게 많은 작품에 리뷰를 달고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 과정 동안 위의 사항을 다 지켰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하고 싶은 말도 다 해봤고 감정대로 쓴 경우도 있었다.
분명 글 제목 내 이름 옆 뜨는 수치는 실제로 가늠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하지만 정작 주위에서 내 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이런 일을 한다더라, 저런 일로 가수들 만나고 다닌다더라. 그게 다였다. 블로그 시절부터 오래 나의 글을 봐왔던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IZM엔 누가 써도 다 똑같아.
너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
입대 후 최대한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두꺼운 군용 수첩을 PX에서 구매해 듣는 대로 글을 썼고 점수 매기기를 아예 하지 않았다. 음악을 공부하며 들으면 안 된다지만 실제로 이때는 토시 하나 다 틀리지 않고 모든 주석의, 모든 차트의 노래를 다 들었다.
네이버 블로그를 벗어나 브런치로 장소를 옮긴 것도 그때다. 믿을 수 없지만 당시 나는 오래 못했던 내 이야기, 개인적인 나의 생각을 담기 위해 속된 말로 안달이 나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최후의 단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불과 작년이었다.
그렇게 다짐한 후로 약 5년이 흘렀다. 여전히 IZM에 리뷰를 업로드하고 브런치에도 글을 쓴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됐다. 타인의 생각을 다르게 만들고자 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IZM은 우리의 생각부터 먼저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주의를 다져 놓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내부의 관성과 외부의 시선이 여전히 더 강하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사이트의 무게는 합류한 지 8년 차에 불과한 나보다 더 무겁다. 오래도록 축적되어 온 글과 이미지는 역사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선입견으로도 작용한다. IZM 출신인데 뻔하지, IZM이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뻔하지. 지금도 IZM에 올라오는 글을 읽어봐. 뻔하지.
동시에 내부에서는 하던 대로의 관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고, 저런 식으로 해야 하고, 이런 음악에는 이런 가치를 저런 음악에는 저런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자 형식이 있다. 그 형식이 때론 실질을 좌우한다. 생각보다 많이 좌우한다.
IZM을 바라보는 시선, IZM의 이미지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음악 웹진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형태든 각인되어있다는 점 자체가 다행이라 생각한다. 때로는 그런 것도 재미다.
그러나 모든 게 형식만으로 재단되어선 곤란하다. '형식이 실질을 좌우한다'가 단어와 문장을 넘어, 글을 넘어 이를 쓰는 사람들과 조직 내부에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이 조직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다.
형식은 실질을 좌우하지만, 그 형식을 바꾸기 위해선 실질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뜯어고치고 있다. 하지만 살벌한 재건축 사이에도 남겨야 할 건물 토대나 기둥은 있다. 망설임과 현명함 사이. 내가 손댈 수 없는 것들. 그런 부분이 생각지도 못하게 발목을 잡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