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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l 17. 2020

자칭 평론가의 고독

지금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을 바꾸려 하고 있다.



하여튼 평론가들은 이게 문제야.



좋은 결과는 있어도 좋은 회의는 없다.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머쓱해하며, 누군가는 프로젝터 화면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침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여튼 평론가들은 이게 문제야. 그렇다고 내가 맞다며 좋아할 일은 아니다. 나도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하니까. 돈을 버니까.


누가 그랬던가. 평론가를 장래희망으로 삼은 사람은 없었다고. 오늘 여기 회의에 모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식상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명분 아래 이리저리 의견을 내보지만 여러모로 공허하다. 공감되지 않는 주제를 의논하는 것도, 힘들게 만든 기획의 결과가 몇 백 조회수에 그치는 것도 의욕을 떨어트린다. 이 모든 걸 버틸 수 있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엔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구글 너마저


대중음악평론가라는 호칭엔 약점이 많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폭넓게 요구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학술적 이어선 외면당한다. 큐레이터이자 해설가, 검수가가 되기도 하고 기획도 할 줄 알아야 하며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부지런히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당한다. 대중음악에 예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인식은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이 이 직함을 동경한다. 이름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어린 시절 동경하던 나의 영웅들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는 점, 산업의 최전선에서 반짝이는 결과물을 미리 만져볼 수 있다는 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 밝지 않았던 나의 유년기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 (음악을 좋아했던 학창 시절과 음악에 미쳐있었던 학생의 삶은 꽤 다르다.) 이 매력적이다.


십 대 후반 공부하기 싫어 음악 듣고 글만 쓰던 내가 20살 하고도 3개월 만에 IZM에 합류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지만 마냥 긍정적인 부분만 있진 않다. 기록과 표현의 삶이 곧바로 직업과 친목의 경계에 녹아든 것은 대단했지만 그렇게 삶의 궤적이 고정되어버렸다. 속에 화만 많고 사람들 앞에서 쭈빗거리기만 하던 너드에게 동경의 대상이 생겼고 그들은 내 삶의 방향 혹은 가치관을 너무 빨리 굳게 만들었다.


지금도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은 과분하게 느껴진다. 그 무게를 덜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도를 해봤다. 젠체하기도 하고 한없이 겸손해보기도 했다. 무게를 덜기 위해 멋도 내봤다. 완결되지 않은 수많은 기획이 있었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첫 문장도 많다. 하지만 공고한 (어쩌면 은둔하는) 평론의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서, 나 자신이 관습화 된 시선을 떨쳐버리고 부담 없이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마음먹은 대로 다 됐으면 이 작업에 미련도 갖지 않았을 테다.


지금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을 바꾸려 하고 있다. 지금껏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얻은 대중음악평론가의 직함을 스스로 내던지는 길일지도. 이 기획의 제목처럼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나만의 변화를 요란하게 떠들고 다니는 일인 것 같아 힘이 빠지기도 한다.


나는 오래도록 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혹은 역량 부족으로) 하지 않았다. 음악을 매개체로 하면, 내가 쓰는 글과 의견만 잘 제시하면 그 결과물들이 나라는 사람을 대변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폐쇄적인 태도, 나서기를 꺼려하는 마음이 지금의 대중음악 평론계를 만들었다. 고리타분하고, 어떻게 해서 되는지도 모르고, 전문성도 검증할 길 없으며 때로는 굉장히 아집에 가득 찬 사람들처럼 보이는, 어쩌면 아예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집단을.


최근 한 앨범을 해설하며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생존과 계승의 첫 단계임을 증명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밴드, 음악인,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단 나 자신에게 하는 충고에 가까웠다.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 자칭 평론가의 고독을 털어놓고자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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