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트럼프 시대의 끝.
현지시각 1월 20일 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2017년부터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인기 가수 레이디 가가와 제니퍼 로페즈, 가스 브룩스가 참여해 식장을 빛냈다. 이어진 취임식 저녁 행사는 톰 행크스, 에바 롱고리아가 진행을 맡고 미 전역에서 케이티 페리, 데미 로바토, 저스틴 팀버레이크, 요요마, 본 조비, 존 레전드, 푸 파이터스 등 쟁쟁한 가수들이 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식 참여를 거부하며 152년 만에 취임식에 참가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백악관을 떠난 트럼프. 그의 임기를 굵직한 노래들로 돌아본다.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던 그 날이 현실로 다가왔다. 2017년 1월 20일, 미합중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 날이었다. 서구 지성이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표어와 가짜 뉴스, 언론플레이가 억눌린 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차별과 증오, 혐오과 구별 짓기가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극렬한 논쟁과 혼돈으로 가득했던 4년 전 취임식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언론 비서관 숀 스파이서가 지하철 이용자 수, 잔디 보호 커버 등 뻔한 거짓말로 사실을 덮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백악관 선임고문 캘리언 콘웨이는 NBC 인터뷰에서 숀을 옹호하며 ‘그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말했을 뿐’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내놓았다. 이후 ‘대안적 사실’은 트럼프 국정 운영의 핵심이 됐다. 팩트는 누군가의 ‘대안적 사실’로 대체됐고, 음모론과 불신의 곰팡이가 피어났다.
그 해 에미넴이 BET 힙합 어워즈에서 트럼프에게 호통을 치는 등 저항도 만만찮았지만 미국인들은 은근히 트럼프의 확신에 찬 거짓말을 지지했다. 트럼프를 ‘용기 있는 사람’이라 일컬은 카니예 웨스트도 그중 한 명이었다. 붉은 MAGA 모자를 쓰고 거침없는 지지 발언을 이어나가던 그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3분짜리 토론 형식의 노래 ‘Ye vs. The People’로 답을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면,
나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단 거 아냐?
그렇게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직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카니예 웨스트가 백악관에 초대받아 장광설을 늘어놓던 2018년의 미국. 1년 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텍사스 침례교회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흉흉하던 미국 사회는 2월 14일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공포에 빠진다. 17명의 목숨을 빼앗은 용의자는 MAGA를 사랑하는 인종차별주의자, 대안 우파 성향이었으나 트럼프는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며 총기 규제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트럼프는 많은 것을 무시했다. 자유의 땅을 향해 고국을 등진 이민자들에게 공개 석상에서 ‘똥통(shithole) 같은 나라 출신’이라 모욕을 퍼부었다.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대통령과의 불륜 관계를 주장하며 명예훼손 혐의를 주장할 때도 귀를 닫았다. 세계 환경을 위한 파리기후협약도 ‘쿨’하게 탈퇴했다.
그 사이 미국은 지옥으로 변해갔다. 기득권 층과 레드넥들에게는 ‘위대한 미국’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에 시달리던 소외계층들은 강도높은 폭력과 위협 속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 해 5월 6일, 차일디쉬 감비노가 홀연히 공개한 뮤직비디오 한 편이 사회에 충격을 안기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다.
이게 미국이야. 정신 바짝 차려…
적자생존의 아비규환이 열렸다.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트럼프의 야욕은 결국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의 연방정부 셧다운을 불렀다. 1월 25일까지 계속된 폐쇄로 공직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지만 대통령은 3000km 상당의 견고한 국경선을 그어 그 비용을 멕시코에게 전가하겠다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퍼렐 윌리엄스와 N.E.R.D.가 ‘Deep down body thrust’라는 조롱의 노래를 불러도 꿈쩍하지 않았다.
의회는 5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 장벽 건설 예산을 책정할 계획이 없었다. 전쟁과 같은 미 국경 지대의 일상이 생생히 알려졌고, 최루탄을 피해 두 딸의 팔을 잡고 달아나는 어머니의 사진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천 명 넘는 이민자들이 자녀들과 떨어져 보호 시설에 격리됐다. 6월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국경을 넘으려다 숨진 채 발견된 부녀의 모습은 전 세계를 분노케 했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방해’에 책임을 돌렸다.
이민자들이 세우고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 미국은 폐쇄와 차별을 택하며 문을 닫고 있었다. 거듭되는 총기사고와 높아만 가는 장벽 앞에서 라스베이거스 출신 밴드 킬러스(The Killers)는 차분한 가스펠로 피로에 지친 아메리칸드림을 위로했다.
이 자유의 땅에서,
콘크리트와 철근의 벽을 쌓는다고 하네요.
트럼프의 4년은 ‘고립’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작부터 위기였다.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와의 밀월 관계는 ‘러시아 게이트’로 불거지며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를 불렀다. 특검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2019년에는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시 유력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의 뒤를 캐도록 의뢰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졌다. 하지만 다가올 2020년에 비하면 이때의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협이 속속 보고되던 2019년 말부터 트럼프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단순한 지역 전염병처럼 여겨지던 이 질병은 지금까지 총 2,4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감염시킨 전대미문의 대재앙으로 발현했다. 트럼프의 무능은 이 범유행을 부채질했다. 민주당의 음모론, 여론의 호도 등 다양한 핑계를 대가며 바이러스의 위험을 깎아내리기 애썼다. 그렇게 미국은 40만 명 이상의 자국민을 잃었다.
공공 석상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고 백신에 회의적인 시선을 내비친 데다 의도적으로 바이러스의 위험을 알면서도 사실을 은폐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트럼프조차도 10월 1일 영부인과 함께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망신을 샀다.
판데믹 상황에 더욱 곤경에 처한 미국의 소외계층들은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을 눌려 잔인하게 목숨을 잃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미 전역 200여 개 도시와 전 세계 곳곳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인종 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시위가 발생했다.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표어 아래 정의를 부르짖는 시위대에게 트럼프는 ‘모두의 삶도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로 화답했다. 한 해 내내 블랙 커뮤니티에 대한 과잉 진압은 끊이질 않았다. 한국계 미국 아티스트 앤더슨 팩은 이런 현실을 'Lockdown'으로 알렸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어.'
앤더슨 팩의 현실 고발은 지쳐있었다.
2019년 6월 30일 평택 오산 미 공군기지, 격납고에 걸린 대형 성조기를 배경으로 착륙한 미 대통령의 헬기 ‘마린 원’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연단으로 걸어 나왔다. 벼락과 천둥을 뚫고 아시아의 소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지 행사장에는 록 밴드 AC/DC의 ‘Thunderstruck’이 울려 퍼졌다.
트럼프는 미디어를 활용해 그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할리우드 및 프로레슬링 단체 식의 극본으로 자신을 치켜세우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것이 그의 장기였다. 2020년 코로나 19 범유행과 인종 문제로 대통령 선거 재선이 어려워 보였지만 트럼프는 본인의 승리를 호언장담했다.
트럼프는 평소에도 닐 영, 롤링 스톤스, 퍼렐 윌리엄스, 톰 페티, 퀸, 에어로스미스 등 가수들의 노래를 저작권 비용 지불 없이 무단 사용하며 악명이 높았다. 유명 아티스트들이 노래를 사용하지 말라는 소송을 걸고 공개 중지 서한을 보낼 정도였다.
2020년 선거운동에서도 트럼프는 디스코 그룹 빌리지 피플의 ‘Macho Man’을 홍보하며 자신을 강한 남자로 포장했다. 그리고 올해 1월 20일,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그가 마지막 에어 포스 원을 탑승할 때 나온 노래 역시 빌리지 피플의 ‘YMCA’였다.
제대로 저작권료를 지불했는지는 의문이다.
조 바이든의 승리에 대다수 미국인들은 환호했다. 트와이스의 ‘Feel special’에 맞춰 레이디 가가가 춤을 추고, 록 밴드 스팀(Steam)의 ‘Na Na Hey Hey Kiss Him Goodbye’가 곳곳에서 불려졌다. 하지만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까지도 바이든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극단적인 음모론주의자들 큐아논(QAnon)과 대안 우파 세력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가짜 뉴스와 맹목적인 지지를 퍼트리며 트럼프 시대를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밥 말리의 ‘One love’와 ‘Three little birds’를 부르며 현실을 부정한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게 다 잘 될 거니까…’.
기어이 그들은 지난 1월 6일, 트럼프의 선동에 이어 1814년 미영전쟁 이후 206년 만에 미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 이 혐의로 트럼프는 2019년 12월에 이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에서 두번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조 바이든은 2021년 1월 20일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레이디 가가가 미국 국가를 불렀고 제니퍼 로페즈와 가스 브룩스가 식장을 빛냈다. 취임식 저녁 행사는 톰 행크스, 에바 롱고리아가 진행을 맡고 미 전역에서 케이티 페리, 데미 로바토, 저스틴 팀버레이크, 요요마, 존 레전드, 푸 파이터스 등이 축하 무대를 꾸렸다.
이제 미국은 분열된 사회를 재건하고 통합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았다. 백악관을 떠난 트럼프가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는 중인 것도 걸림돌이다. 행사 하루 전 유명 토크쇼 호스트 제임스 코든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One day more’ 패러디 영상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하루만 더’와 ‘내일이 오면’의 투쟁 속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