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2021. 시대정신과 따스한 인간미.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가 해체했다. 다프트 펑크는 지난 22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7분가량의 공식 영상 ‘에필로그(Epilogue)’를 공개하며 1993년부터 시작한 28년 음악 여정의 종언을 알렸다. 기마누엘 드 오멩크리스토와 토마스 방갈테르로 구성된 다프트 펑크는 커리어 동안 총 네 장의 정규 앨범과 두 장의 라이브 앨범, 2010년 월트 디즈니 영화 ‘트론 : 레거시’ 사운드트랙을 남겼다.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듀오의 해체 소식에 전자음악 팬들을 넘어 장르를 불문한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부터 일반 대중까지 상심을 표하고 있다. 국내에도 ‘하더 베터 패스터 스트롱거(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겟 러키(Get lucky)’ 등 다수 인기곡을 보유하고 있기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크다. 다프트 펑크의 활동을 돌아보며 이들의 음악적 위치를 조명한다.
여운이 긴 다프트 펑크의 해체 소식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뉴스에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아쉬움과 감사의 인사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부고가 아닌 결별이고, 완전한 종말도 아니지만 상실감이 크다. ‘에필로그’ 영상 속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동료를 비정하게 산산조각 내버리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 깊어서였을까. 영상 조회수는 3월 4일 기준 2,310만 회, ‘좋아요’ 수는 148만 회에 육박한다. 다프트 펑크가 세대와 장소를 뛰어넘은 ‘음악 아이콘’이었음을 증명하는 지표다.
프랑스 파리에서 록 밴드를 꿈꾸던 기마누엘 드 오멩크리스토(이하 기망)와 토마 방갈테르(토마)에게는 시대의 행운이 있었다. 199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대륙을 휩쓸던 하우스(House), 개러지(Garage) 등의 전자 음악은 청년 계층의 ‘힙’한 문화였고 이들은 대규모 파티 ‘레이브(Rave)’를 조직하고 공권력의 단속에 맞서 반항을 이어나갔다. 다프트 펑크 등장 전에도 전자 음악은 인기 있는 음악이었다는 뜻이다.
사실 다프트 펑크의 출발도 전자 음악이 아니다. 1993년 달링(Darlin’)이라는 록밴드가 다프트 펑크의 기원이다. 이들의 운명은 영국의 잡지 멜로디 메이커로부터 ‘어설픈 쓰레기(Daft Punky Thrash)’라는 평을 받고 나서부터 영원히 바뀌었다. 전자 음악에도 관심이 많던 두 청년은 매체의 혹평에 흥미를 느껴 팀 이름을 ‘다프트 펑크’로 바꾸고 드럼 머신, 베이스 라인, 시퀀서 등 조촐한 홈 레코딩 장비를 갖춘 후 재기 발랄한 결과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994년 데뷔곡 ‘더 뉴 웨이브(The New Wave)’처럼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새로운 물결’을 몰고 왔다.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디스코를 전자 음악으로 옮긴 하우스 장르지만 단조롭지 않았고, 1990년대 인기를 구가하던 테크노 장르와도 달랐다.
특히 주목할 작법은 흘러간 옛 노래들의 부분을 가져와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샘플링(Sampling) 기법이었다. 첫 히트작 ‘다 펑크(Da Funk)’에서 다프트 펑크는 하우스, 힙합, 중독성 있는 전자음을 뒤섞으며 본 메이슨(Vaughan Mason), 배리 화이트(Barry White)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노래 일부를 가져와 음정을 조절하고 드럼 비트를 혼합했다. 이윽고 첫 번째 정규 앨범 ‘홈워크(Homework)’가 나왔다.
리듬에 몸을 맡기던 당대 청년들은 다프트 펑크의 멜로딕한 재창조물에 열광했다. 이들과 함께 1990년대 프랑스 일렉트로닉 음악가들을 소개한 영화 <에덴>(2014)의 설명을 빌리자면 그것은 ‘새로운 디스코’, 훗날 ‘프렌치 하우스’라 명명되는 음악이었다. ‘쓰레기’라 저주하던 매체들이 호평을 건넸고 더 많은 이들이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일렉트로닉의 대중화를 이끈 것이다.
이때부터 기망과 토마가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매체의 관심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가면도 쓰고 비닐봉지도 뒤집어쓰던 그들은 기어코 결심을 내렸다. 2집 ‘디스커버리(Discovery)’를 앞두고 그들은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부로 로봇이 되었다’는 선언과 함께 헬멧을 착용했다. 새로운 천년을 앞둔, 전 세계가 밀레니얼 공포를 느끼던 순간, 시대정신에 부합한 일렉트로닉 아이콘이 탄생했다.
다프트 펑크는 시대의 요구와 발을 맞췄다. ‘밀레니얼 버그’라는 대규모 기계 고장 오류를 경계하며 헬멧 쓴 로봇이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구축했다. 비주얼 그 자체로도 멋졌지만 작업물을 가꾸는 솜씨 역시 젊은 세대의 니즈를 저격했다. ‘은하철도 999’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에게 ‘디스커버리’ 앨범 뮤직비디오를 맡겨 새천년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음악에 유도했고, 과감한 샘플링 기법으로 디지털 시대 음악 창작의 문법에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순간은 단연 ‘얼라이브 2007(Alive 2007)’이다. 세 번째 정규작 ‘휴먼 애프터 올’이 과격하고 기계적인 사운드로 고전할 때 다프트 펑크는 2007년 프랑스 파리 공연장에 대형 피라미드 세트를 세우고 화려한 레이저 쇼와 함께 이제까지 그들이 발매한 곡들을 발췌하여 재가공한 후 플레이했다. 21세기 일렉트로닉 공연의 새로운 순간을 제시한 이 무대는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며, 다프트 펑크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최고의 순간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다프트 펑크의 성공을 견인한 유일의 요소는 아니다.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부로 로봇이 되었다’ 이후 이어지는 ‘인간의 뇌와 심장을 가진 로봇’이라는 설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프트 펑크 인기의 핵심은 역사 속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을 찾아 듣고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조립한, 이를 넘어 새로운 고전을 창조하고자 야망에 불탔던 인간적인 매력에 있다.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누구나 듣고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 수 있다. 전자 음악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이들도 다프트 펑크의 노래는 흥겹고 쉬운 노래로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음악에 진심이었다. 이들이 집중한 하우스 음악부터가 1970년대 디스코, 펑크, 재즈 등 음악을 혼합해 디제이가 재생하는 음악이었다.
듀오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을 듣고, 하나하나 집중해서 소리를 발굴했다. 인간적인 멜로디는 덤이었다. ‘원 모어 타임(One more time)’과 ‘하더 베터 패스터 스트롱거’, ‘휴먼 애프터 올’, ‘텔레비전 룰즈 더 네이션(Television Rules The Nation)’까지. 모든 다프트 펑크의 노래에는 송곳처럼 뇌리에 꽂히는 멜로디가 있고, 그 기원을 찾아가면 과거의 멋진 댄스 음악이 빛나고 있다.
2013년 거대한 성공을 가져다준 앨범 ‘랜덤 액세스 메모리즈(Random Access Memories)’는 인간을 흠모한 기계들의 야심작이었다. 기망과 토마는 과거 음악의 유산을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막대한 비용과 작업 설비를 갖춰 그들 스스로가 21세기의 고전을 만들고자 했다. 기계로 다시 해석하던 소리를 실제 악기 연주로 대체했고, 풍부한 역사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1970년대 디스코의 전설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를 초빙했다. 퍼렐 윌리엄스, 줄리안 카사블랑카스 등 현대의 음악 스타들도 함께였다.
레코드사의 인내와 멤버들의 장인 정신으로 다듬어진 이 작품은 완벽한 승리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며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 된 ‘겟 러키(Get Lucky)’가 지구촌을 흔들었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베스트 일렉트로닉 뮤직/댄스 상, 베스트 엔지니어드 앨범 부문 3관왕에 올랐다. ‘천한 댄스 음악’이라 은근히 무시받던 디스코 음악이 이때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디스코는 대중음악을 휩쓰는 핵심 장르 중 하나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다프트 펑크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곡은 단연 ‘조르지오 바이 모로더(Giorgio By Moroder)다. 디스코 여왕 도나 서머의 프로듀서, ‘손에 손잡고’, 영화 ‘탑건’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조르지오 모로더가 2분가량 삶을 반추하고 나면, 다프트 펑크가 멘트가 끝난 후 이어지는 1980년대 풍 기계적인 유로 신스 팝과 펑크 밴드의 생생한 밴드 연주,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혼합한다. 디스코 시대와 지하 클럽 하우스 음악, 1990년대 부흥과 2000년대 그들이 이끈 일렉트로닉 대중화를 모두 연결하는 실크로드, 미싱 링크 같은 곡이다.
다프트 펑크의 팝 감각은 2016년 더 위켄드(The Weeknd)와의 합작에서도 두드러졌다. ‘아이 필 잇 커밍(I Feel It Coming)과 ‘스타보이(Starboy)’ 속 황량하고도 감각적인 기계 터치가 퇴폐적인 위켄드의 목소리와 더해져 세련된 복고의 미를 더했다.
점점 인간에 가까워지던 그들의 행보였기에 이번 결별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 역시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음을 상기시켜주는 소식처럼 들리기도 한다. 1993년부터 2021년까지 28년 간 최선을 다하고, 그들은 멋진 스포츠 스타처럼 은퇴를 선언했다.
시대의 행운과 따스한 인간미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들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그중에서도 단연 깊은 울림을 주는 대목은 듀오의 장인 정신이다. 다프트 펑크의 작업은 고된 노동과 재창조, 음악에 대한 순수하고 집요한 열정이 결국 예술을 이루는 핵심임을 모두에게 상기시켰다. 음악이 홍보, 비즈니스, 인맥, 과시 등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 다프트 펑크는 헬멧 아래 얼굴을 가리고 기계처럼 무섭게 창작에 집중했다. 쿨하고 근사했던, 하지만 더없이 숭고했던 우리 시대의 마스터. 그들의 손길이 벌써부터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