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할지라도 진심이었던 나의 감정들.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서로에게 연결되기보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지금, 무게감 있는 이야기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 곁의 음악을 이 나이에만 볼 수 있는 시선으로 담백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저의 '이십전심'이 많은 분들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
SG워너비 역주행 열기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지난 4월 17일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오랜만에 과거 히트곡들을 부르고 나서부터 ‘타임리스(Timeless)’, ‘라라라’, ‘내사람’, ‘살다가’ 등 노래들이 다시금 음원 차트 및 매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요. ‘타임리스’는 오래도록 멜론, 지니, 벅스 등 스트리밍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지난 5월 2일에는 SBS 인기가요 1위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타임리스’와 SG워너비의 노래들이 돌아오며 2000년대 유행하던 음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진 모습입니다. ‘싸이월드 시절’, ‘아이리버 시절’이라 회자되는, 지금 2-30대가 된 친구들이 실시간으로 함께했던 2000년대 중후반 유행가들이 다시 유행의 흐름을 만들고 있죠.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에 나올법한 노래들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각종 매체를 통해 자주 소환되는 모습입니다.
때마침 ‘그때 그 시절’ SNS들의 부활 소식이 들려옵니다. 싸이월드는 지난 4월 29일부터 홈페이지에서 아이디 찾기 및 도토리 환불 서비스를 시작했죠. 2019년 10월 잠시 서비스를 중단한 이후 2년 만의 부활인데, 당시 회원 수가 약 1천100만 명이었고 도토리 잔액은 38억 4천996만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2년 5월 서비스를 종료한 버디버디 역시 지난 4월부터 홈페이지 개편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을 찾기 위해 싸이월드 BGM(배경음악) 순위를 확인했습니다. 그 시절 페이스북 프로필, 인스타그램 피드와 같았던 사이버 개인 공간,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해 사람들은 도토리를 구입해 배경음악을 설정했죠. 이렇게 설정한 배경음악은 내 미니홈피에 방문할 때마다 자동 재생됐습니다.
그 시절 싸이월드 BGM 인기 순위를 살펴볼까요. ‘05학번 이즈 백’의 오프닝 곡 ‘와이(Y)’부터 추억이 새록새록 자동 재생됩니다. 마노와 지오로 구성된 2인조 힙합 그룹 프리스타일이 2004년 ‘프리 스타일 3’ 앨범에 수록한 노래인데요, 타이틀곡이 아니었음에도 잔잔한 분위기 위 슬픈 이별의 이야기와 멜로디가 당시 싸이월드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 히트한 노래였습니다. ‘와이’와 더불어 ‘수취인불명’, ‘그리고 그 후’ 역시 인기였죠.
프리스타일과 더불어 프리스타일 같은 '감성 힙합’ 노래들이 단골 배경 음악이었습니다. MC몽, 노블레스, 에이트, 리쌍, MC 스나이퍼, 에픽하이 등 힙합 그룹들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가 울상 짓는 미니홈피 속 미니미(싸이월드 아바타)와 함께 감성을 자극했죠. 예민한 사춘기 시절 친구들의 미니홈피에서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 리쌍의 ‘발레리노’, 에픽하이의 ‘러브 러브 러브’는 단골 선곡이었습니다. 어느 날 MC몽의 ‘죽을 만큼 아파서’가 BGM으로 흘러나오고, 미니홈피 방명록이 닫혀있다면, 그 친구에게 우울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죠.
힙합과 양대산맥을 이룬 장르는 발라드였습니다. 미드 템포 알앤비, 소울, 록 등 장르는 다양했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사랑 주제 아래 ‘발라드’라는 이름으로 통칭된 노래들이죠.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을 필두로 SG워너비의 ‘타임리스’, 바이브의 ‘그 남자 그 여자’ 등 서글픈 노래들이 미니홈피를 장식했습니다. 록 장르로는 버즈의 ‘남자를 몰라’, 이지(izi)의 ‘응급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 등이 떠오르네요. 노래방에서 한 번쯤은 감정을 잡고 불렀던 노래들입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그 시절 싸이월드 배경음악은 다 우울한 노래만 있었나 싶네요. 주로 남자들이 위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많이 설정하곤 했죠. 여자인 친구들은 당시 최고 인기였던 드라마 ‘궁’의 주제가 ‘퍼햅스 러브(Perhaps Love)’, 씨야의 ‘사랑의 인사’ 같은 밝은 곡부터 거미의 ‘어른아이’ 등 여성 가수들의 노래를 주로 배경음악으로 설정하곤 했습니다.
팝 음악도 인기를 누렸는데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Toxic)’, 비욘세의 ‘리슨(Listen)’, 에이브릴 라빈의 ‘컴플리케이티드(Complicated)’ 등이 기억납니다. 카리나의 ‘슬로우 모션(Slow Motion)’은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이 한 번쯤 꼭 거쳐가는 곡이었고요. 생각해보니 스위트박스(Sweetbox)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클래식과 댄스를 섞어 노래를 만들던 프로듀서 GEO와 보컬 제이드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이었는데 유독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죠. ‘라이프 이즈 쿨(Life Is Cool)’, ‘돈트 푸시 미(Don’t Push Me)’, 기억나시나요?
2000년대 학창 시절 노래방은 이런 싸이월드 BGM 순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항상 발라드를 부르는 친구들이 SG워너비와 버즈의 노래를 부르면, 힙합 좋아하는 저와 다른 친구들이 에픽하이와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를 선곡해 열심히 랩을 하던 시절이었죠. 한 시간이 금방 사라지던 그때, 서로 좋아하는 음악은 달랐어도 모두가 알고 있던 노래였기에 열심히 호응하고, 어깨동무하며 노래 불렀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SG워너비와 싸이월드 BGM의 재유행에 마냥 긍정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2000년대 음악 시장은 암흑기였다’는 말이 종종 나오곤 하죠. MP3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며 음반 판매량은 나날이 줄어들었고, 하나의 유행하는 장르가 아무런 발전 없이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어 비슷한 스타일의 노래만 범람했던 시절이라는 비판도 분명 존재합니다. ‘소몰이 창법’, ‘감성 힙합’이라 불리는 호칭이 긍정적으로만 쓰이지 않는 이유죠.
하지만 우리 세대가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 ‘부족함’입니다. 무엇이든 모자라고 서툴던 시절, 제한적인 디지털 서비스에서 배경음악과 픽셀 아바타로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때의 모든 경험 그 자체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타임리스’와 더불어 수많은 싸이월드 BGM들은 곧 그 시절 나의 일상이었고, 나의 정체감이었으며, 과할지라도 진심이었던 나의 감정들이었거든요.
삼십 대인데 사회는 우리를 어린애 취급하고,
인터넷에선 아재 취급하고
음악은 트로트만 맨날 나오고
어느 곳 하나 내가 주류인 곳이 없이
동떨어진 기분이었는데
이 영상 보면서
내 인생 가장 찬란하고 이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너무 좋네요.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SG워너비의 유튜브 라이브 영상 클립에 달린 한 사용자의 댓글에 공감이 갔습니다. 그때도 이런 ‘싸이월드 감성’은 우리들이 소통할 수 있는 소소한 세계였어요. ‘얼짱시대’에 등장한 얼짱들의 이름을 외우고, 전자사전에 몰래 인터넷 소설을 다운로드하여 읽고, 생일 때마다 도토리를 주고받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처럼 반가운 기억이죠.
어느새 되어버린 어른이 아직도 낯설고 힘겹지만 과거를 추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레트로 열풍에 대해 머리로는 이성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네요. ‘타임리스’를 흥얼거리며 돌아온 싸이월드를 검색해봅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우리들의 추억은 흘러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