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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29. 2021

취향의 결집, 발룬티어스와 백예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 뜻입니다하지만 요즘은 서로에게 연결되기보다 마음의 문을 닫는  먼저인  같아요저는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   있다고 믿습니다. 2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지금무게감 있는 이야기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우리 곁의 음악을  나이에만   있는 시선으로 담백하게 전하고자 합니다저의 '이십전심' 많은 분들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



27일 밴드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가 첫 정규 앨범 ‘더 발룬티어스’를 발표했습니다. 다소 낯선 이름의 신인 팀인데요. 하지만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 ‘스퀘어’를 히트시킨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이 보컬 멤버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완전히 인상이 달라집니다. 2011년 EBS 헬로루키 우승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멤버 고형석, 조니, 김치헌과 함께 발룬티어스를 결성한 백예린은 4년 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꾸준히 팬을 모아 왔죠.


많은 분들이 알앤비 보컬, 싱어송라이터로 알고 있던 백예린의 로커 변신에 주목했는데요. 앨범을 들어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소리가 강렬합니다. 거친 기타 톤, 빠른 리듬과 함께하는 백예린의 목소리가 도도하면서도 시원시원합니다. 멤버 간의 멋진 호흡에 ‘백예린 밴드’라는 걱정도 사라집니다. 앨범에 수록된 10곡 중 6곡이 이미 만들어진 노래였기에 미리 들어본 곡들이었고, 신곡은 4곡뿐이었는데도 완전히 새로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긴 시간 동안 백예린은 알앤비, 발라드 가수로 알려졌죠. 2007년 10살 꼬마 시절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대중에 첫 선을 보였을 때 그의 수식어는 ‘발라드 천재’였습니다. 이후 JYP엔터테인먼트 공채 오디션 1기에 합격해 ‘K팝스타 시즌2’ 우승자 박지민(현 제이미)과 함께 피프틴엔드(15&)로 활동했고, 2015년부터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바이 바이 마이 블루’, ‘우주를 건너’ 등 특유의 짙은 감성을 들려줬습니다. 


하지만 백예린의 팬이라면 그의 음악 속 은근한 ‘록 유전자’를 일찍이 알아채셨을 겁니다. 2017년 즈음부터 록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백예린은 밴드 발룬티어스를 결성한 후 서울재즈페스티벌, 렛츠락페스티벌, 썸데이 페스티벌 등 무대에 올라 로커의 꿈을 꿨습니다. 현재 1,429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기적의 영상, ‘스퀘어’ 직캠 영상이 등장한 때죠. 


170923 백예린(Baek Yerin) - Champagne Supernova (Oasis COVER) [렛츠락페스티벌] 4K 직캠 by 비몽


저 역시 그때부터 백예린의 음악을 더 집중하며 듣게 됐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렛츠락페스티벌에 출연해 영국의 세계적인 밴드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Champagne Supernova)’를 부르는 유튜브 영상이었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오아시스의 보컬 리암 갤러거의 뒷짐 지는 습관을 따라 하고, 거침없이 노래하는 백예린의 모습이 너무 좋아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너는 진짜 기적이야’라는 댓글에 좋아요를 수백 번 누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때 백예린의 모습은 제 사춘기 시절을 지배한 록 스타 중 한 명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애틀의 그런지 밴드들도 생각났고, 크랜베리스나 앨라니스 모리세트, 코트니 러브 같은 여성 록스타들의 모습도 겹쳤네요.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스웨이드, 애쉬 등 영국 밴드들의 잔향도 제 10대 시절을 관통한 노래들이었죠. 특히 백예린이 2000년대 시작을 알린 록스타 아이돌 에이브릴 라빈의 ‘Complicated’를 부를 땐 마치 저도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죠. 


이후 2019년 ‘아워 러브 이즈 그레잇(Our love is great)’ 미니 앨범에서 백예린의 록 DNA는 더 선명해졌습니다. 자작곡으로 오롯이 채워진 앨범에는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았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이 아닐거야’와 더불어 ‘지켜줄게’, ‘야간비행’,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등 밴드 중심의 곡들이 두드러졌습니다. 



백예린의 음악 세계는 록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이 넓고 깊었습니다. 19살부터 23살까지 혼자 써 내려갔던 곡들을 모아 발표한 ‘에브리 레터 아이 센트 유(Every letter I sent you.)’에는 ‘스퀘어’와 더불어 재즈, 소울, 알앤비, 팝 등 다양한 장르가 있었죠. 지난해 12월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텔어스바웃유어셀프(tellusboutyourself)’에서는 전자 음악과 팝으로도 장르를 넓혔고요. 커리어 내내 꾸준히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콜라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럼에도 발룬티어스의 음악을 들어보니 백예린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은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밴드, 브릿팝이라 불리는 영국 밴드들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거친 악기 소리와 함께 가수도 의도적으로 다듬지 않고 거칠게 노래합니다. 반항기 가득하면서도 연약한 정서를 담은 노랫말까지도 로큰롤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그 시절 록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여러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의 음악 취향은 10대 때 결정된다고 합니다. 2018년 뉴욕타임스가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와 함께한 기사에 따르면, 어떤 노래가 나왔을 때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 연령대는 10대라고 하네요. 예를 들어 발룬티어스의 노래는 지금 10대들, 그러니까 2003년생부터 2012년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겠네요. 또 다른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Deezer)의 통계도 볼까요. 새로운 음악을 챙겨 듣는 나이는 24살에 정점에 달하고 이후 꾸준히 하락하며, 전체 인구의 60% 정도가 듣는 노래만 계속 듣게 된다고 합니다.


제게도 어느샌가 록 음악은 10대 때 많이 들었던, 그래서 지금은 가끔 추억으로 즐겁게 듣지만 자주 듣지는 않게 되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음악을 가려서 듣지는 않았기에 20대가 되고, 웹진에서 활동하며 정말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찾아 듣고 또 글을 썼죠. 제가 추억 속에 그 시절 록 음악을 보관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음악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실력을 쌓아 드디어 본인들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네요.


The Volunteers (더 발룬티어스) ‘Let me go!’ MV


지난번 ‘이십전심’에서 소개한 올리비아 로드리고처럼 국내외적으로 록 음악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하죠. 과감하게 젊음을 발산하는 이들의 음악이 10대 때 단단히 새겨진 머릿속 록 유전자를 꿈틀거리게 만듭니다. 


한 때는 ‘중2병’ 음악, ‘철 지난 음악’이라며 록을 멀리 하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유행이 어떻든 결국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진짜 멋 아닐까요. ‘발라드 천재 소녀’가 인디 밴드의 무대에 매료되어 자신의 음악 세계를 깨닫고, 치열하게 곡을 쓰고 변신을 거듭하며 마침내 밴드 발룬티어스의 보컬이 된 백예린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백예린의 록 밴드 더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 데뷔 첫 라이브! ‘Summer’, ‘Let me go!’ by W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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