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1막, 지드래곤 2막, 권지용의 3막.
이만큼 애절한 러브 송도 쓸 수 있다. 'Last Dance'의 쓸쓸함을 일견 연상케 하는 '무제'는 그보다 더 담백하게, 피아노 하나만을 남기고 더 여려진 권지용의 보컬로 촘촘하게 감정의 빈 틈을 채워나간다. 숨겨진 히트메이커에서 대세로 자리매김하려 하는 선우정아의 터치 덕인지 도입부부터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제발 단 한 번이라도 / 너를 볼 수 있다면 / 내 모든 걸 다 잃어도 괜찮아'라는 절절한 고백이 허투루 흘러가지 않는다. '죽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는 센티멘털의 끝은 많은 이들이 시도하고 가장 흔한 감정 장사지만 이를 제대로 잡아내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더욱이 얼마 전 '이제 막 서른인데'라던 권지용이.
빅뱅과 지드래곤을 지탱해왔던 것은 트렌디보다는 이 고유의 감성이었다. 프리템포 계열로부터 출발했던 감성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빅뱅 신화는 이후 힙합과 클럽 튠, EDM 등 다양한 가공을 거쳤으나 결국 이 팀을 지탱해온 것은 이 어쩔 줄 모르는, 결국에는 무너지고 마는 우울과 시크의 정서였다. 그것이 자꾸자꾸 반복되다 보니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BLUE'였고, 그것을 가장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가 제조하여 대박을 터트린 것이 'Loser'였다. < MADE >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도 'Last Dance'와 그 제목도 찬란한 '에라 모르겠다(FXXK It)'.
구설수도 많고 논란과 스캔들도 많았던 빅뱅이었기에 이 감성은 팀의 상황과 맞물려 들어가며 성장 스토리를 선사했고, 이미지로는 문제가 생길지 몰라도 음악으로는 동세대의 공감을 확보하며 튼튼한 기반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지드래곤의 솔로 커리어는 어떨까. 팀이라 할 수 없었던 과감한 콘셉트를 실험하기도 하고 모두가 열광할 파티 튠을 만들어내는 데도 능했지만 그 속에는 더 불안한 감정이 있었다.
< One Of A Kind >의 '그XX'부터 < 쿠데타(Coup D'Etat) >의 '니가 뭔데'와 'Black'의 감성이 '크레용'이나 '늴리리야'같은 힙합 튠보다 훨씬 오래 사랑받았다. 정말로 '삐딱하게'가겠다는 선언의 '삐딱하게'에서도 그는 '내버려둬 / 어차피 난 / 혼자였지'라며 이별 뒤의 허무함과 방황을 멈추지 않는 질주와 끝없는 파티, 방랑으로 보여준 바 있다.
그랬던 그가 '무제'를 통해 침잠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테다. 20대 청춘을 다 바쳤던 빅뱅은 탑의 입대와 더불어 당분간 휴지기에 접어들었으며, 멤버들은 차례대로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유와의 '팔레트'에서 서른이 되어버린 자신을 언급하면서 새 앨범 < 권지용 >을 소개할 때는 '인생 3막의 시작'이라는 말을 적었다. 그 또한 사람이고 부담되고 고민이 있다는 공감대의 형성인데 사실 앨범 전체를 들어보면 그런 진지함보다는 혼란이 먼저 다가온다. 한껏 날을 세운 'Intro. 권지용'과 '개소리'를 보면 아직 그 자신도, 겪어보지 못한 그 연령대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 와중에 차분한 '무제'가 있다.
잘할 수 있는 멜로디와 무드만을 골라서 극대화한 '무제'는 인간 권지용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무언가를 과시하거나, 비판하거나, 불편한 낌새로 무장한 다른 트랙들과 달리, 누군지 알 수 없으나 그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과거로부터의 유산을 바탕으로 출발하지만, 이처럼 그가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노래하려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흥미롭고, 한편 한 멤버의 실수로 엉망이 되어버린 상황이 개입되면서 더욱 애절하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타이틀이 '개소리'에서 이 곡으로 옮겨온 것도 분명 그런 상황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드래곤의 인생 3막이나 30대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런 간절함에는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나 빅뱅과 지디를 싫어했던 나조차도 '무제'를 듣고서는 턱을 괴고, 멍하니 감정의 파고대로 3분 동안 휩쓸려 다녔으니. 권지용도 나도 나이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