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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06. 2017

언니네 이발관과 검정치마

내 취향은 아닌가 봐.


23년을 달려온 인디 밴드는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고해왔고 9년 만에 그 결과물을 내놓았다. 같은 해, 센세이셔널한 데뷔작으로 한국 인디 씬을 들썩이게 했던 아티스트는 소포모어 앨범을 내고 근 6년 만에 역시 새 앨범을 내놓았다. 시작도 달랐고 시기도 달랐고 거의 모든 점에서 달랐던 언니네 이발관과 검정치마는 2017년의 같은 달에, 간만의 앨범을 공개했다. 누구에게는 끝, 누구에게는 새 출발.




< 후일담 >을 처음 접했을 때도 < 가장 보통의 존재 >만큼 곱씹어 듣지는 않았다. 언뜻 평범하고 정말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던 앨범은 심각하게 치명적이어서, 그 시절 감성에 허우적거리던 사춘기 청춘들에게는 끔찍한 허무와 자기반성, 그리고 무한한 슬픔을 가져다준 작품이었다. 팝송도 잘 쓴다는 걸 증명한 < 꿈의 팝송 > 이후 모호해진 감이 없지 않았던 언니네 이발관은 < 가장 보통의 존재 >로 여리디 여린 감정과 연약하고 불안한 청춘의 심리를 확보했다. 한국 모던 록의 시작, 상징 정도로 여겨졌던 이 밴드는 '음악 듣는다'면 꼭 거쳐가야 할 필수 코스가 되었다. 


그 뛰어난 작품조차도 < 201 >의 파격을 따라오진 못했다. 홍대에서도, 신촌에서도, 한국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조휴일은 뉴욕에서 날아왔다. '본토 바이브 그대로'를 새기고 한국에 친히 '강림하신' 조휴일은 그전까지 우리가 부르지 않았던 멜로디를 가졌고, 생각하지 못했던 노랫말을 썼으며,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을 노래했다. 새로움을 갈구하던 팬들은 < 201 >을 질리도록 들었다. 너무 질리도록 듣다 못해 대중음악상까지 일사천리로 받았다. 발칙한 가사와 착 달라붙는 노랫말, 나른한 보컬은 모두를 중독시켰다.


지난 10년 동안 언니네 이발관과 검정치마는 이런 류의 '전설 속 주인공'으로, 이렇다 할 활동 없이도 계속해서 주목받았고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다. 대체 신곡은 언제 내냐 불평하다가도 'Antifreeze'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읽다 보면 할 말이 없어졌고 < 가장 보통의 존재 >를 돌리다 보면 한 시간 지나가는 건 금방이었다. 내 기억 속에는 살짝 잊혔어도, 나보다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기다린 앨범이 나왔다.


시간은 많이도 흘렀고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거나 감성적이거나... 하던 그런 류의 무드에 하염없이 빠져들어서 헤어 나올 줄 모르던 사춘기 시절도 지나가버렸다. 새로운 스타일 과거를 재발견하기보다는 과거와 연결고리가 비교적 적은 그런 음악들을 찾아다니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신보를 처음 듣고 느낀 감정은 '피로'였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데서 오는 알 수 없는 감정. '나는 그런 아티스트 아니라는' 검정치마의 푸념. 2~3년만 전이었다면 아마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슬슬 지나가버리는 노래 중 귀에 들어오는 곡은 몇 개 없었다. 



조휴일의 < Team Baby >는 3부작이다. 5년의 공백기 동안 왜 어떤 이유로 앨범이나 노래가 나오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타블로의 하이 그라운드에 새 둥지를 튼 그는 확실히 안정되어 보인다. 한국 음악 시장이라는 낯선 조류에 몸을 맡겼다가 '배신으로 물든 갑판 닦아줄 선원 하나 없는'(이별노래) 신세를 노래했던 그는 이방인이었고, 확실하지 않은 것이 미덕이었던 사람이었다. 2017년의 조휴일은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든든한 회사가 있고, < 201 > 때부터 쌓여온 혹은 새로움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언더그라운드 - 사운드 클라우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배부른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해도, 발 밑까지 내려앉는 드림팝 사운드에 몽롱한 사랑의 노래를 담아도 들어줄 사람이 많다. 


그래서 조휴일은 현실에 녹아내리고 뿌리를 내린다. '이대로, 난 이대로 아무것도 안 바꿀래 / 아쉬운 것들도 그대로 다 두고서 / 우리 처음 만난 그때처럼' (폭죽과 풍선들) 둘만 남아있더라도 괜찮아.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랑 걷자 저 멀리 까지 가다 지쳐 누우면 / 나랑 자자 두 눈 꼭 감고 나랑 입 맞추자'(나랑 아니면). 그래도 우리 행복하니까. 방 안에 누워있어도 세상은 우리 것이 되니까.  언젠가부터 삶에 지친 청춘들을 대변하는 무기력한 저항의 기치로 가득한 이번 앨범은 존 레넌의 '침대 혁명'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 앞으로의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조휴일의 '음악 초년생' 시기에 환장했던 나에겐 아티스트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분명 그는 성숙해졌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아버렸다. 더 이상 그가 발칙하거나 대범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그는 좋은 멜로디를 쓸 줄 알고, 특유의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건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다. 



언니네 이발관의 < 홀로 있는 사람들 >은 어쩌면 이석원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단어인지도 모른다. 그는 불안하고 또 불완전하기에, 섬세하고 예민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으니. 마지막 활동이 거의 확실한 앨범을 7년 동안 제작해왔고 언제 나온다는 기약도 없이 팬들은 싱글 하나라도 좋으니 기다려왔다. 밴드의 주제가라 소개한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는 '난 항상 이 세상을 알고 싶어 / 애를 써 왔네 / 내게 바라는 게 무언지 알 수 없었기에 / 하지만 / 그게 나 나야 /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다시 한번 이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진짜 전하고 싶은 말은 동명의 타이틀 곡 '홀로 있는 사람들'에 있다. '그래  /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 너와 함께 /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 우리 함께 계속 노래해'라는 메시지. < 가장 보통의 존재 >에서도 마지막 트랙에서 그는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 어디든 가고 싶네'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앨범 또한 성숙해진 언니네 이발관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철들지 않아 보이려 해도, 불안해 보이려 해도, 결국 불안하지 않은 23년 차 베테랑 밴드라는 것을. 그 내공은 주로 음악에 녹아있다. 사운드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정교하게 짜 놓은 구성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며, 그 목표는 '궁극의 팝 싱글'에 있다는 것.


똑같이 아티스트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여전히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니네 이발관은 이미 < 꿈의 팝송 > 때부터 성숙했었고, 좋은 멜로디와 훅을 가진 밴드라는 정체성은 굳어졌었다. < 비둘기는 하늘의 쥐 >의 날 선 감정이 < 후일담 >에서 다듬어졌을 때는 잘 세공된 아름다움과 청춘의 불안함을 대변한다는 만족스러움이 있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잘 만들어진 멜로디는 많고 멜랑콜리함은 넘쳐나며 불안을 자청하는 자들은 많다. 




기다려왔던 두 밴드의 성취는 각기 다른 이유로 아쉽게 내 귀에는 맞지 않게 되었다. 베테랑 밴드의 스완 송은 마지막이라는 이유와 더불어 잘 만들었으나 그마저도 옛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고, 촉망받는 신인이었던 아티스트의 새 앨범은 개인적으로 안정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리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 안주하는 형태라서 그렇다. 내가 나이가 들어버린 건지, 취향이 이상해진 건지. 그때와 같은 감동과 공감으로 음악을 듣지는 못하고 있다. 너무 넘쳐나는 시대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갈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대단해지기란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경쟁자들도 많으니. 멋지게 계속 살아가는 방법은 뛰어난 아티스트라도 쉬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Audio] 언니네 이발관 - 누구나 아는 비밀 (With 아이유), Sister's Barbershop - A Secret Everyone Knows (With IU)


[MV] 검정치마(The Black Skirts) - 나랑 아니면(Who Do You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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