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헌 Feb 04. 2022

케이팝과 메타버스의 동행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나아갈 길


*2021년 12월 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넌 광야를 떠돌고 있어”. 지난해 11월 걸그룹 에스파가 ‘블랙 맘바(Black Mamba)’로 모두를 삼켜버리자 사람들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에스파의 아버지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그 해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에스파를 '미래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이라 소개했고, 대중은 미래주의적 디자인과 아바타 멤버, 가상공간의 존재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미래 시제가 아니라 현재시제였다. '광야를 떠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미 '광야를 떠돌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에스파는 인지하지 못한 사이 우리의 일상에 성큼 로그인한 가상의 평행 세계, 메타버스의 존재를 각인했다. 



2021년 메타버스는 어디에나 있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곳곳 어디든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활발한 참여와 상호작용을 통해 기존 인터넷보다 더욱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을 수 있는 이 공간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며 미지의 영역에서 광활한 개척지대로 가치를 높였다.  


케이팝 팬들에게는 메타버스가 너무 많이 듣다 못해 피로감을 느낄 정도의 용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케이팝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돌 그룹의 서사와 그들을 둘러싼 세계관을 적극 소비하는 충성스러운 팬덤을 중심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경계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 존재감을 과시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소비자 경험의 극대화를 촉진하는 케이팝 산업과 능동적인 소비자 역할을 강화하는 메타버스는 최적의 파트너다. 케이팝은 플랫폼을 확장하고, 메타버스는 콘텐츠를 확충한다. 



NFT(대체 불가능 토큰) 개념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2021년 케이팝과 메타버스의 확장은 더욱 가속화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며 기획사들은 콘텐츠 개발과 더불어 다양한 업체와 손을 잡고 가상현실 진출에 열을 올렸다.  


SK텔레콤의 '케이팝 메타버스 프로젝트'는 혼합현실(XR) 기술을 적극 활용해 위클리, 스테이씨의 디지털 휴먼 콘텐츠를 제작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니뮤직은 마마무, SF9, 온앤오프 등 다양한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가상현실 콘서트를 담은 VR앨범을 대거 출시한데 이어 11월에는 모바일 게임사 해긴과 함께 메타버스 음악 서비스 신규사업 추진을 선언했다.  


1998년 사이버 가수 아담의 뒤를 잇는 가상 그룹 제작도 활발하다. 인공지능 전문기업 펄스나인이 제작한 11인조 걸그룹 이터니티에 이어 올해 큰 화제를 모은 가상 모델 로지를 만든 싸이더스 엑스의 3인조 걸그룹,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가상 아이돌 그룹이 등장 예정이다. 



아바타 '아이(ae)'들을 소개하며 이 흐름을 주도한 에스파는 올해 대성공을 거뒀다. '광야', '코스모', 'P.O.S'를 동원하며 본격 세계관 설명에 앞장섰던 'Next Level'이 난해한 곡이었음에도 히트했고, 날카로운 금속 전자음으로 한 층 더 과격하게 나간 'SAVAGE' 역시 사랑받았다. 대중은 멤버들과 캐릭터, SMP라 불리는 독특한 음악 세계에 열광하며 '디귿춤'을 따라 췄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이후 6월 29일 'SM 콩그레스'를 통해 “그동안 축적해 온 SM의 킬러 콘텐츠, 즉 SM 오리지널을 바탕으로 프로듀서와 프로슈머가 함께 할 콘텐츠 유니버스 속에서 우리의 킬러 콘텐츠가 모두의 ‘리크리에이터블(Re-Creatable)’ 콘텐츠로 무한 확장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모션그래픽, 아바타, 소설의 영문 앞자리를 딴 카우맨(CAWMAN),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퓨처 커머스 샵, 지난 27년간 콘텐츠를 총망라하는 SMCU 오리지널 세계관은 SM이 디지털 시대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일깨웠다. 



하이브도 지난 11월 4일 '하이브 브리핑 위드 더 커뮤니티(HYBE BRIEFING WITH THE COMMUNITY)'를 통해 그들의 현시대 해석을 풀어놓았다. 하이브의 핵심은 '바운드리스(Boundless)'다. 음악의 힘으로 국가와 언어, 문화와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다.  


내년 1월부터 아티스트 IP를 활용해 개발한 오리지널 스토리가 웹툰과 웹소설 콘텐츠로 공개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방탄소년단, 엔하이픈과 데뷔 예정인 새 걸그룹에 입체적인 이야기를 더하고 세계관을 확충할 전망이다.  


이어 하이브는 가상 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에 5,000억 원 투자를 알리며 아티스트 IP를 기반으로 한 NFT 개발을 예고했다. NFT는 메타버스 내 시장을 형성할 뿐 아니라 현실과 가상공간을 연결하는 핵심 요소기에 케이팝이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미 지난 7월 JYP가 두나무와 NFT 플랫폼 신규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투자를 진행했고, SM은 솔라나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반의 NFT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메타버스와 NFT를 적극 활용하며 케이팝은 글로벌 시장에 첨단의 이미지를 각인하며 다양한 산업 주체들과의 협업 가능성을 높였다. 음악 장르 그 이상의 거대한 공간과 문법으로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급진적인 기술 혁신 가운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  


오늘날 케이팝의 인기와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은 모두 아티스트를 헌신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으로부터 왔다. NFT 진출 선언 이후 하이브 불매 운동이 불거지고, 메타버스 및 기술 등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과감한 진보와 따뜻한 설득으로 케이팝과 메타버스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 결산] 기억에 남는 케이팝 앨범 15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