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연말 결산을 공개합니다. 음악 100건을 선정했습니다. 케이팝, 가요, 팝, 추가 추천 총 4개 부문입니다. 각 부문은 싱글 / 앨범으로 나눠져 있고, 각 항목당 15건을 선정했습니다. 추가 추천은 10건만 선정했습니다.
*글의 순서와 순위는 무관합니다.
올해의 싱글과 더불어 올해의 앨범으로도 손색없는 보아의 정규 10집 [Better]입니다. 타이틀 싱글의 카리스마와 더불어 섬세한 감정 표현과 능수능란한 보컬 플레이로 케이팝의 올스타 제작진과 함께 웰메이드 팝 앨범이 탄생했습니다. 'Honey & Diamonds'의 섬세한 팔세토와 'Cut Me Off'의 차가운 무드, 로파이 질감의 'Cloud', 벅차오르는 드럼의 'Start over'를 오가는 보아의 관록은 언제 들어도 경이롭습니다. "마침내 난 꿈을 이뤘죠 / 넘어진 만큼 더 높이 뛸 수 있었죠". 'Little Bird'의 뭉클한 감동을 넘어 케이팝의 '넘버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Better) 세상을 향해 화려한 날개를 펼쳤습니다.
[LILAC]은 인간 이지은의 20대를 톺아봅니다. 아이유는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을 "알잖아 내가 한번 미치면 어디까지 가는지"라 요약하기도 하고 ('Coin'), 화려한 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항상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Celebrity') 미묘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경험을 풀어내기도 합니다 ('어푸'). 언뜻 경쾌하지만 어딘지 모를 아련한 슬픔이 담긴 첫 노래 'LILAC'에서 "이런 결말이 어울려"라 사뿐히 마음을 다지더니 신비로운 마지막 곡 '에필로그'에서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다음으로 가요"라며 한 뼘 더 자라난 미래를 기대케 합니다. 'Strawberry Moon' 한 스쿱으로 완전히 20대를 떠나보낸 아이유가 2010년대의 아이콘을 넘어 2020년대의 첫 페이지를 산뜻하게 펼쳤습니다.
과감하고 새로운 케이팝 호러 테마 파크가 열렸습니다. 엔하이픈의 [BORDER : CARNIVAL]은 2000년대 중후반 EMO 음악, 사이키델릭 록, 신스 팝을 기반으로 하여 강렬한 에너지로 직진, 혼란의 한가운데를 정면 돌파하는 저돌적인 작품입니다. 2013년 아케이드 파이어의 [Reflektor]가 구현한 카니발의 정서를 레퍼런스 삼아 어지러운 사운드와 리듬의 'The Invitation', 불안정한 808 베이스와 함께 질주하는 ‘Drunk-Dazed’, 레게 리듬을 더한 'Fever'와 소년의 고백 'Not For Sale'이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를 닮은 성장 드라마,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나 <레모니 스니켓>처럼 신비로운 십 대 판타지 세계를 꿈꾸게 한 웰메이드 케이팝 앨범이었습니다.
[Dear OHMYGIRL]은 '살짝 설렜어'와 'Dolphin'의 성공 이후에도 오마이걸을 지탱하는 '소녀의 세계'가 여전히 흥미롭고 견고하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세상이 함부로 소녀들을 교복, 짝사랑, 어른에 대한 동경으로 재단할 때 오마이걸은 데뷔 초부터 꾸준히 호기심, 우정, 추억, 다정함, 섬세함 등의 소중한 감정을 강조했습니다. 어른이 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을 찬찬히 되짚어보며,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믿음을 전합니다. '비밀정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Dear You(나의 봄에게)', 미스터리한 테마로 유년기를 그린 '나의 인형(안녕, 꿈에서 놀아)', 몽환의 무드 아래 극복의 정서를 담은 'Swan' 등 그룹의 정체성과 같은 곡이 가득합니다.
정체불명의 우주선 내부와 대기권을 뚫고 돌진하는 유성 파편들. 엑소의 첫 여름 스페셜 앨범 [Don't Fight The Feeling]은 복잡한 용어와 카리스마의 부담을 벗어던진 베테랑 보이 그룹이 쿨한 댄스 그룹으로 기획사 라인업에 깊이를 더하며 세대교체를 진행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타이틀 'Don't Fight The Feeling'은 절제된 보컬 플레이 아래 멈출 생각이 없는 저돌적인 베이스 리프를 진행했고, 섹슈얼한 가사의 펑키한 트랙 ‘파라다이스’와 더불어 ‘훅!’, ‘Runaway’의 미디엄 템포 알앤비, 어쿠스틱 팝 ‘지켜줄게’가 엑소의 새로운 페이즈를 든든히 뒷받침했습니다.
세 명의 이븐 오브 데이가 2015년부터 다섯 명의 데이식스가 꾸려온 커리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1990년대 발라드와 홍콩 영화를 테마로 삼아 보다 자유로운 음악을 시도한 이들은 범람하는 위로의 메시지 속 두드러지는 진실한 청춘의 고백을 담았습니다. 내밀한 감정부터 거대한 연대로의 제안까지, 드넓은 파노라마를 담아내는 손길이 거침없이 유연합니다. 그룹 전체 커리어로도 손꼽힐 명곡 '뚫고 지나가요', 영미권 팝 밴드의 웰메이드 노래와 견줄 수 있는 '역대급 (WALK)'과 강렬한 기타 리프로 밴드 구성의 묘미를 전하는 앨범 후반부 '비극의 결말에서'와 '나홀로 집에' 등이 흥미롭습니다. 비주얼 요소에 국한됐던 케이팝의 퀴어 요소 활용을 넘어 서사적으로 연대와 지지를 호소한 'LOVE PARADE'로 중요한 의미까지 담았습니다.
NCT의 막내들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함께하며 데뷔를 이뤘고, 서로를 의지하며 밝은 미래를 노래했지만 소속사의 원래 계획은 스무 살이 되면 졸업하여 헤어져야 하는 로테이션 그룹이었습니다. 지난해 7인조 고정 그룹으로 더는 헤어지지 않게 된 이들은 첫 정규 앨범 '맛'과 함께 날아올랐습니다. 경쾌한 'Diggity', 트로이 시반이 떠오르는 '우리의 계절', 최고의 곡이라 생각하는 '고래'와 잭슨 파이브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을 지나 일곱 멤버들의 우정으로 갈무리하는 'Rainbow(책갈피)'가 드림 유닛만의 해맑은 면모를 튼튼히 뒷받침했습니다. 'Hello Future' 리패키지로 완성된 NCT 드림의 세상은 미래가 더욱 밝습니다.
좌충우돌 사춘기를 지나 맞이한 어른의 세계는 '혼돈의 장'이자 혹독한 추위의 땅입니다. 이모(EMO)와 팝 펑크(Punk) 리바이벌 흐름을 타이틀 싱글에 녹여내며 Z세대 정서를 효과적으로 이식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올해 손꼽힐만한 완성도의 앨범으로 설득력 있는 서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New Rules'는 'No Rules' 아래 혼란스러워지고, '동물원을 빠져나온 퓨마'는 '밸런스 게임'을 펼치며 서릿발처럼 얼어붙은 마음은 'Frost'처럼 날카로워집니다. 글로벌 시장과 호흡하는 디스코 팝 'Magic', 타이틀 곡과 더불어 록의 터치가 선명한 '디어 스푸트니크', 세일럼 일리스(Salem Ilese)가 참여한 'Anti-Romantic' 등 모든 곡이 TXT 세계관에 흥미를 더합니다. 첫인상과 달리 거듭 들을수록 좋았던 앨범입니다.
[NOEASY] 제목 그대로 스트레이 키즈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키치와 촌스러움 사이의 외줄을 아슬하게 타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퍼포먼스로 끊임없이 신선한 자극을 전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습니다. [GO]으로 제시한 충격을 더욱 폭발적인 소음으로 제시한 [NOEASY]는 스트레이 키즈의 공식이 확고한 개성으로 굳어졌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것만 있는 게 아니라고 열렬히 주장합니다. 'CHEEZE', 'DOMINO', '씩 (SSICK)' 등 밉지 않은 개그와 갓세븐의 뒤를 잇는 'The View'와 '좋아해서 미안', '말할 수 없는 비밀', 멤버들의 유닛 곡 간 균형이 훌륭합니다. BTS의 성공 이후 모두가 미국 시장을 바라보는 사이 스트레이 키즈가 온 세계를 거침없이 누볐습니다.
데이비드 보위, 보이 조지, 혼네, 시규어 로스. 개성 강한 여러 레퍼런스들이 안정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능글맞고 천진한, 거침없는 화법으로 사랑받는 샤이니 키가 올해 [BAD LOVE]로 들려준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더 위켄드(The Weeknd)가 연상되는 차가운 레트로 무드 아래 감각적이고도 미스터리한 노래들을 배치하며 매끄러운 진행과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강조했습니다. 타이틀 넘버는 물론 올해 최고의 호흡을 보여준 '탱키'의 듀엣 'Hate that...'과 헤리티지의 풍성한 코러스가 더해진 'Eighteen (End Of My World)'까지 놓칠 곡이 없습니다.
'LOCO'를 [Crazy In Love]로 인도하는 도입부로 생각한다면 있지의 첫 정규 앨범은 그들에게 기대하는 모든 요소를 담은 웰메이드 케이팝 앨범입니다. QR코드와 틱톡 프레임, 트랩 비트와 날카로운 랩이 더해진 'SWIPE', 당돌한 20대를 노래하는 '#TWENTY', 저돌적인 하우스 곡 'B[OO]M-BOXX'와 'Gas me up'까지, 있지는 거침없이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 자신만만하게 등장한 그룹이 커리어의 1기를 매듭지으며 새로운 광기의 콘셉트를 찾아나가는 모습입니다.
에스파의 [SAVAGE] 이후 더 이상 우리는 SM엔터테인먼트가 펼쳐 보인 신세계를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광활한 세계관과 야심 가득한 사이버 인격, 수수께끼 같은 스토리라인을 흥미진진하게 소비하고 확장하며 상상합니다. "이제 다른 케이팝은 재미없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반응이 등장합니다. 그 바탕에는 'Next Level'로 예고한 '광야' 모험담 [SAVAGE]가 있습니다. 야성적인 선동가 속 멤버들에게 캐릭터 속성을 부여하는 'anergy'로부터 비타협적인 세상의 승전가 'SAVAGE', 있지의 당돌함과 에프엑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일렉트로 팝 'YEPPI YEPPI', 'SAVAGE'의 충격을 소프트하게 다듬어 놓은 'ICONIC'까지 매 순간이 흥미진진합니다. 과격하고 소란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디지털 메타버스 오페라.
[ALPHA]는 케이팝 아이돌 그 이후를 고민하는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귀감이 될 솔로 앨범입니다. YG엔터테인먼트와의 석연찮은 결별 이후 CL은 소속사를 비판하며 독자 노선을 걷는 동시에 모그룹 투애니원의 정수를 유지하며 대중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인 기업 베리 체리(Very Cherry)를 설립해 주도권을 확실히 거머쥔 다음, 'SPICY'와 'Tie a Cherry' 등 기존 솔로 활동기의 카리스마를 계속 가져가면서 [사랑의 이름으로]에서 들려준 고감도의 멜로디와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Siren', 'Let It'에 담았습니다. "난 나답게 항상 내가 느낀 대로 해." 투애니원 버전의 'Let It'을 꼭 듣고 싶습니다.
하이브 합류 후 발표한 <Your Choice>에서 고정 팬층의 우려를 사기도 했던 세븐틴은 저돌적인 [Attaca]를 발표하며 의심을 불식했습니다. 타이틀 싱글 'Rock With You'의 제목처럼 '그리워하는 것까지', '매일 그대라서 행복하다'처럼 로킹한 곡과 '소용돌이', 'Pang!' 등 절제된 무드로 재단된 곡이 조화롭습니다. 특히 담백하고도 파워풀한 레트로 무드의 댄스곡 'Crush'가 매력적입니다. 베테랑 그룹임에도 꾸준히 '입덕 요소'를 만드는 세븐틴의 저력입니다.
타이틀 싱글의 호불호는 갈릴 지언정 트와이스의 앨범 단위 결과물은 언제나 준수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적극 겨냥한 세 번째 정규 앨범 [Formula of Love: O+T=<3]는 그중에서도 그룹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해외 작곡진, 심은지, 모스픽, 이원(e.one), 시프트 키(Shift K3y), 앤 마리(Anne-Marie) 등 올스타 라인업을 꾸려 리햅(R3HAB)의 리믹스까지 더한 앨범은 웰메이드 디스코 팝, 트랩, 발라드, 록, 신스 팝, 일렉트로닉, 레게톤을 모두 아우르며 팝의 최전선으로 나아갑니다. 3분 이내 길이에 재치 있는 변주를 더한 'Last Waltz', 그룹 최고의 발라드라 할 수 있는 '선인장', 차분한 마무리의 'CANDY'까지 놓칠 곡이 없습니다. 앨범 테마에 맞춰 절제된 톤으로 노래하는 아홉 멤버들의 보컬 디렉팅도 인상적입니다. 과거 약점으로 지적되던 이질감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21년 트와이스의 사랑 공식만큼 케이팝을 잘 정리한 작품은 흔치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