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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Dec 21. 2021

[2021 결산]
기억에 남는 케이팝 싱글 15곡

글의 순서와 순위는 무관합니다.


2021년 연말 결산을 공개합니다. 음악 100건을 선정했습니다. 케이팝, 가요, 팝, 추가 추천 총 4개 부문입니다. 각 부문은 싱글 / 앨범으로 나눠져 있고, 각 항목당 15건을 선정했습니다. 추가 추천은 10건만 선정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케이팝 싱글 15곡을 소개합니다. 

*글의 순서와 순위는 무관합니다.



보아 'Better' 

"이젠 가져 준비됐어 우리만의 시간!". 데뷔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기념비적인 열 번째 정규 앨범 [Better]에서 보아는 우상화를 거부하고 현재 진행형의 독자로 섰습니다. 유영진과 함께 복각한 이 SMP 스타일의 곡은 보아의 긴 커리어를 압축하여 제시하는 주마등이자, SM엔터테인먼트가 야심 차게 준비한 컬처 유니버스(SMCU)의 중심을 단단히 세우는 횃불 같은 곡입니다. 발매 당시에는 중요한 아티스트를 기념하기에 다소 안전한 선택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한 해가 흐르는 동안 'Better'는 보아의 케이팝 개척사를 함께한 팬들은 물론 그의 시대를 겪지 못한 Z세대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안겼습니다. 인기 팬 계정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보아의 역대 최고 곡의 영예를 안았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2021년 케이팝 신을 관통한 '새비지(SAVAGE)'를 예고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을 고양한 곡입니다.      



온앤오프 'Beautiful Beautiful' 

콜드플레이와 BTS의 'My Universe'보다 온앤오프의 'Beautiful Beautiful'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사이버펑크 풍의 미래, '카우보이 비밥'과 '승리호'를 연상케 하는 뮤직비디오가 우선 눈을 사로잡죠. 흥겨운 디스코 리듬의 비트 위 세련된 신스 리프를 곳곳에 배치하고 멈춤 없는 긍정과 활력의 메시지를 전하는 곡은 데뷔부터 함께한 모노트리 황현의 작품입니다. 힘찬 합창의 후렴부와 곡 후반 등장하는 아카펠라 파트의 센스가 킬링 포인트. 뮤직비디오 말미 로봇들과 함께하는 힘찬 군무는 명실상부한 2021년 케이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위클리 'After School'

근사한 코리안 하이틴 판타지를 선보이며 업계인들을 긴장케 한 위클리는 3부작의 마지막 곡 'After School'와 함께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저돌적인 'Tag me'와 'Zig Zag'와 달리 여유로운 레게 리듬을 채택하며 한 층 성숙한 면모를 내비치면서도 '교복 치마 대신 체육복 바지 / 복도 끝까지 달려갈 준비' 등 현실 밀착형 가사로 친근함을 더합니다. '소녀의 세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문법, 신선했습니다.    

 


STAYC 'ASAP' 

2021년을 대표하는 곡입니다. 스테이씨를 책임지는 프로듀서 블랙아이드필승은 준수한 데뷔곡 'So Bad'에 이어 멤버들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야심작을 내놓았습니다. 베이스, 보컬 샘플, 드럼만으로 구축한 도입부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결한 가운데 적재적소 보컬 디렉팅이 곡에 승리를 안겨줍니다. 허스키한 재이, 당돌한 수민의 패스를 세은이 훌륭히 받아 아이사가 하이라이트를 고조하고, 시은의 청량한 목소리와 윤의 힘찬 'ASAP'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매우 훌륭합니다. 1분 안에 매력을 압축하여 눌러 담은 데다가 댄스팀 코드팔팔의 '꾹꾹이춤'까지 더해지며 짧은 동영상 흐름을 타고 역주행과 정주행을 반복했습니다.      



NCT 드림 '고래 (Dive Into You)' 

'고래'는 NCT 드림의 20대를 선언하는 청춘의 송가입니다. 지난해 로테이션 그룹에서 7인조 고정 그룹이 되며 더는 헤어짐을 걱정하지 않게 된 이들은 첫 정규 앨범 '맛(Hot Sauce)'과 함께 날아올랐고, 그 힘은 강렬한 타이틀 싱글 '맛'보다 스무 살 젊음의 빛나는 우정과 미래를 그린 수록곡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와이 돈 위(Why Don't We), 프리티머치 (Prettymuch) 등 서구 보이 밴드의 데뷔 초 모습을 연상케 하는 '고래'는 그중 으뜸입니다. 존 메이어의 'Dreaming With A Broken Heart'와 닮은 기타 리프 위 일곱 소년들을 살게 한 '유일한 나의 바다'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더욱 넓고 깊이 빠져들고픈 '꿈을 꾸는' 곡입니다. 이 정서가 리패키지 앨범의 'Hello Future'까지 이어졌고요.   



방탄소년단 'Butter' 

2021년 전 세계를 휩쓴 히트곡입니다. 'Dynamite'의 성공 이후 자신감을 얻은 하이브는 글로벌 월드 스타의 두 번째 영어 싱글로 모두에게 스무스(Smooth)하게 녹아들 수 있는, 여유롭고 무해한 댄스 팝을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방탄소년단의 치열했던 과거 곡들에 비해 재미는 덜한 편입니다만, 올 한 해를 기록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노래임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 원 디렉션, 조나스 브라더스의 자리에 방탄소년단이 있습니다.      



에스파 'Next Level' 

'Next Level'을 처음 듣고는 실망이 컸습니다. 흥미로운 '광야' 세계관을 랩으로 길게 설명하는 파트가 지루하게 느껴졌고, 영화 '분노의 질주'에 삽입된 원곡을 변주한 유영진의 파트 역시 그리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Next Level'은 대중의 선택을 받아 연일 승승장구하며 역시 평단의 혹평을 받은 곡이 성공한다는 절대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습니다. 제가 간과한 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에스파가 들려주는 SMP와 과격한 가사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및 스토리텔링은 이미 대중에게 낯설지 않았다는 것, 둘째로 짧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선풍을 일으킨 '디귿춤'으로 재미를 잡았다는 것, 셋째로 이 모든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의 퍼포먼스가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케이팝에 '넥스트 레벨'을 열었습니다.      



스트레이 키즈 '소리꾼' 

단순하다 못해 기상천외한 표현과 추임새로 그들만의 스웩(SWAG)을 독창적으로 구현한 스트레이 키즈는 올 한 해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퍼포먼스 강점을 살려 그대로 밀고 나간 '킹덤 : 레전더리 워' 이후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 싱글 '소리꾼'은 과장된 강렬함과 극단으로 점철된 키치함이 이 팀의 정체성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곡입니다. 많은 팀들이 시도한 국악기와 한국 전통 요소 활용의 결과물 중 가장 자연스럽고 그룹 정체성과 부합하면서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케이팝 보이 그룹의 파워 및 대형 퍼포먼스를 상징하는 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 스트레이 키즈는 그들만의 음악으로 단단한 지지층을 결집했습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LO$ER=LO♡ER' 

'머저리, 상처뿐인 겁쟁이'였던 2010년대를 지나 '사랑에 달러 사인을 새긴' 루저의 시대가 왔습니다.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연약한 청소년기의 감정을 세계적인 팝 펑크 유행과 결합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2021년 케이팝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동을 펼친 팀입니다. 리패키지 앨범 '혼돈의 장 : FIGHT OR ESCAPE'의 타이틀곡 'LO$ER=LO♡ER'는 이모(EMO)와 힙합의 과도기였던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보다 한 층 더 직관적인 록 사운드로 청춘의 좌절과 극복의 희망을 담아냅니다. 삶에 지치고 사랑에 상처 받는 Z세대가 복권, 주식, 가상 화폐에 빠져들며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가는 세태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이 방황의 끝에 어떤 절망 (혹은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지.      



제시 'Cold-Blooded' 

'스트릿 우먼 파이터' 세미 파이널 미션에서 싸이와 제시가 등장하자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긴 시간 아티스트들의 백댄서 혹은 안무가로 무명의 자리에 머무른 댄서들이 빛을 발하는 와중에 또다시 지위를 격하하려는 방송사와 의뢰 아티스트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죠. 현명하게도 제시는 이 곡의 주인공이 YGX, 라치카, 훅, 코카앤버터, 홀리뱅, 프라우드먼 여섯 크루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시는 한 발 물러나 카디 비의 'WAP'을 연상케 하는 노 코드 비트 위에서 랩 지원 사격에 만족했고, 뮤직비디오 촬영팀은 여섯 크루들을 부각하기 위해 밤새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렇게 피네이션의 퍼포먼스 지향주의 역사에도, 대한민국 여성 댄서들의 역사에도 멋진 한 획이 그어졌습니다. 제목처럼 '냉정한' 판단의 승리입니다.      


전소미 'XOXO' 


1994년의 투투는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네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라 자문했고, 올해의 스테이씨는 "ASAP 내 반쪽 아니 완전 Copy"같은 상대를 꿈꿨습니다. 반면 전소미는 "반쪽 같은 소리 하지 마, 내 반쪽 이제 내 거야."라 외칩니다. 핑크 스웨츠(Pink Sweat$)가 작곡한 기타 팝 위에서 2000년대 하이틴 무비 주인공으로 분한 전소미는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훅을 배치하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멜로디는 상당히 캐치하며,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노래와 랩을 소화하는 모습은 왜 그가 그룹의 일원이 아닌 독자로 활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Dumb Dumb'으로 이목을 끈 다음 'XOXO'로 마음껏 펼쳐 보였습니다. 
     


NiziU 'Chopstick' 

3분 이내의 짧은 러닝 타임 안에 유명한 클래식 음악의 각 파트를 변주하고 그에 어울리는 퍼포먼스까지 훌륭하게 설계한 다음, 피아노 건반을 활용한 그래픽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발매 날짜까지 11월 11일에 맞추는 센스를 발휘한다? 바로 'Chopstick'입니다. 데뷔곡 'Make You Happy'가 '니지 프로젝트'와 니쥬를 소개하는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 곡은 한 발 더 나아가 각 멤버들을 소개하는 킬링 파트를 부여하고 팀 단위 호기심마저 해소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젓가락 행진곡을 샘플로 삼았음에도 긴박한 전개를 통해 전혀 지루하지 않으며, 멤버들의 퍼포먼스 역시 '일본 그룹' 선입견을 타파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XOXO'와 다르게 반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노래라는 점도 흥미롭네요. 프로듀서 박진영이 진심을 다하면 이렇게 무섭습니다.      



NCT 127 'Favorite (Vampire)'  

2020년 [Resonance]로 확고한 청사진을 제시한 NCT의 기세가 매서웠습니다. 드림의 기세를 몰아 127 팀도 세 번째 정규 앨범 [Sticker]를 발표하며 멈춤 없는 확장을 꿈꿨는데요. 에스닉한 멜로디 루프 하나로 미니멀한 무드를 극대화한 'Sticker'가 기존 이들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압축하여 제시했다면, 리패키지 후속곡 'Favorite'는 어지러이 아지랑이 지는 휘슬 멜로디와 위험하고도 달콤한 유혹의 선율 및 풍부한 코러스를 가미하며 또 하나의 SM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대 초 알앤비 신을 이끌었던 스타 프로듀서 다크차일드의 이름이 반가웠습니다.      



트와이스 'Scientist' 

'사랑은 과학이 아니라 단순한 것'이라 노래하지만, 트와이스의 'Scientist'는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가수' 앤 마리와 케이팝 베테랑 작곡가 멜라니 폰타나, 블랙핑크의 'Bet You Wanna'를 만든 프로듀서들이 함께한 'Scientist'는 2015년부터의 트와이스 커리어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곡을 시작하는 미나의 보컬은 완전한 저음으로 출발하며, 이후 멤버들의 보컬도 절대 들뜨는 법이 없습니다. 절제된 '이과 감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간결하고 통통 튀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노래로 트와이스는 그들의 '트와이스랜드' 테마파크에 흥미로운 새 어트랙션을 추가했습니다.     



아이브 'Eleven' 

'Eleven'은 포스트 아이즈원을 묻는 이들에게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공합니다. '꽃 3부작'의 고풍스러운 무드와 성장 서사를 이식해 안유진, 장원영 두 멤버와 기존 연습생들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곡도 매력적입니다. 에프엑스의 '첫 사랑니'를 연상케 하는 시타르 풍의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을 가져와 신비로움을 더하더니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킬링 파트에서 BPM을 확 끌어내려 모두를 흠칫 놀라게 하죠. 두 번째 훅이 끝나고 레드벨벳 '행복'에서 들었던 아프로 비트가 전면에 나설 때의 쾌감도 상당합니다. 과감한 무대 카메라 워킹 아이디어도 훌륭했고요. 아이즈원의 유산이 어떻게 더 '다채로운' 형태로 발현될지에 대한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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