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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16. 2022

구림과 힙은 한 끗 차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한국의 힙'


*2021년 12월 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한국의 힙’을 논하기 전에 먼저 ‘힙(Hip)’에 대한 정의부터 내릴 필요가 있다. 원래 ‘힙하다’, ‘힙스터’는 유행과 거리가 먼 개념이다. 영미권에서 힙한 것, 힙한 사람은 트렌드를 배제하고 개인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면 한국의 힙은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힙하다’와 비슷한 단어는 ‘핫하다’ 또는 ‘트렌디하다’였다. 누구도 의구심을 품지 않고 유행하는 장르나 스타일을 힙이라 정의했다.  


한국에서 힙이라는 개념이 너무 오래, 그리고 많이 남용되다 보니 오래도록 ‘힙하다’라는 표현 자체에 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생각이 바뀐 해가 바로 작년, 2020년이었다.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만은 힙하다는 단어가 어느 정도 근거 있게 활용됐다. 록, 힙합, 알앤비, 발라드, 댄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곡들이 조명을 받았고 그중 주류 미디어의 수혜를 입거나 소문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곡들이 ‘힙한 음악’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힙한 무언가가 널리 알려지면 그것은 더 이상 소수의 것이 아니게 된다. 주류 문화로 편입된 하위문화는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으며, 자연히 그에 반하는 ‘힙한 어떤 것’이 출현한다. 하지만 지난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새롭고 독특한 문화 집단으로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범 내려온다’의 주인공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다.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


이날치는 음악 감독 장영규를 주축으로 젊은 다섯 명의 소리꾼과 드러머 이철희, 베이스 정중엽이 2019년 결성한 팀이다. 판소리를 감각적인 현대 댄스 음악으로 편곡한 앨범도 훌륭했지만 네이버의 라이브 시리즈 ‘온스테이지 2.0’에서 선보인 타이틀 곡 ‘범 내려온다’ 무대가 결정적이었다.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 이날치, 자유롭고 재치 있는 몸짓을 펼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활약은 한국관광공사의 유튜브 광고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의 흥행을 이끌며 한 해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흥미로운 지점은 지금부터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해외에서도 상당한 반응을 얻으면서 그들은 한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의 힙스터, 대안 문화로도 고평가 받는다. ‘범 내려온다’가 분주히 거리에 울려 퍼졌고, 씽씽, 오방신과, 추다혜차지스 등 다양한 퓨전 국악 밴드들이 등장해 좋은 음악을 들려줬음에도 여전히 국악은 대중에게 낯설다. 우리에게 낯설다면 해외에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올해 콜드플레이와 ‘하이어 파워(Higher Power)’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도 마찬가지다. 개성 있는 분장과 예측불가 춤사위로 무장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현대무용 그룹으로 그 이름부터가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애매모호함(ambiguous)를 지향하는데, 이것이 거대한 우주와 외계 행성을 품고 싶었던 거대한 밴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노래방, 골목, 청계천 등 익숙한 배경을 바탕으로 낯선 춤을 추는 댄서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Feel the Rhythm of KOREA: INCHEON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인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기획은 유사한 현황에 놓인 두 개념을 결합했다는 데서 영리한 기획이다. 전통으로 대우 하나 깊이는 알지 못하는 국악, 하루 안에 전 국토를 주파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찾아가지 않는 우리의 관광지 곳곳을 담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9월부터 공개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의 두 번째 시즌은 더욱 총명하다. 이날치의 판소리는 AOMG와 하이어 뮤직,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힙합 아티스트들이 재해석한 민요로 대체됐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빈자리는 오래된 일상을 근사한 구도로 포착해 일상 속 멋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종로, 동묘, 황학동의 거리를 담은 서울 편은 우리의 오래된 일상이 사실 굉장히 독특한 것임을 ‘아리랑' 가락에 실어 보낸다. 갯벌을 질주하는 경운기로 ‘머드 맥스'라는 극찬을 이끌어낸 서산 편과 한복을 입은 외국인 모델들의 꿈같은 유유자적 모습을 담은 전주 편은 다수 노출된 관광지를 마법과 같은 이국적인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없던 ‘국뽕'도 생길 시리즈,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힙한 대안 문화로 대우받는 광경이다.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히트를 통해 우리는 일상 속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한국스러운’ 것들이 2020년대의 새로운 세계 유행을 선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의 ‘힙스터’로 그 잠재력이 크다. 달고나와 딱지치기, 국악과 한옥마을,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에 등장하는 독특한 문화가 서구화된 빌딩 숲 도시 속에서 글로벌 시장의 포맷에 적합한 형태로 가공된다. 특출 나고, 전례 없는 것이지만 호환성이 높다. 승부는 오리지널리티에서 갈린다. 일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독특한 어떤 요소에 파고들어 근사한 형태로 가공해나가는 ‘글로벌 힙’의 지향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50 - Bang Bus (Official MV) (Censored)


최근 나는 DJ 250의 ‘뽕을 찾아서’ 시리즈에서 차세대  ‘한국의 힙’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스스로를 ‘촌스러운 취향’이라 소개하는 이 프로듀서는 지난 4년 간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인의 DNA 깊숙이 내재된 ‘뽕’을 탐구했다. 카바레, 사교댄스, 뽕짝 디스코, 길보드 차트, 블루스 아니고 ‘부르스’, 트로트 아니고 ‘도롯도’….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지만 누구도 깊게 고민하지 않는 ‘뽕끼’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그의 결과물이 곧 세상에 나온다.


신파, 저질, 코믹, 고리타분… 그 속에 ‘한국의 힙’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고루한 작법을 반복하거나 요즘 힙하다는 요소들을 어설프게 가져와 따라 하지는 말자. '힙'과 '구림'은 한 끗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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