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파이 위기 ② 조 로건 이슈, 스포티파이의 앞날은?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가 휘청인다. 캐나다의 전설적인 록스타 닐 영은 지난 24일 스포티파이에 공개서한을 보내며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The Joe Rogan Experience)'를 진행하는 코미디언 조 로건과 자신의 음악 중 양자택일을 통보했다. 스포티파이가 조 로건을 선택하면서 이제 닐 영의 모든 음악을 스포티파이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
스포티파이 위기 흐름을 정리하는 두 편의 글을 준비했다. 스포티파이의 현재 위기 상황을 정리하는 1편, 상황을 조망하며 느낀 감정과 오디오 플랫폼의 현실을 다룬 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1편으로 연결됩니다.
스포티파이가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스포티파이는 2006년 회사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높은 음악 저작권료 때문이다.
스포티파이 매출액의 70%가 저작권료로 지불된다. 2017년 스포티파이의 총매출은 5조 2천억 원 이상이었지만 4,1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출혈을 감수한 덕에 타 스트리밍 플랫폼보다 방대한 음원 보유량과 음악 기업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2018년 4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나서도 200달러 선에 머무르는 등 성장성이 높지 않았다.
이에 스포티파이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바로 팟캐스트 시장이다. 팟캐스트는 저작권료가 발생하지 않고 광고 매출만 크리에이터와 나누면 되는데, 광고 효과가 큰 데다 주 청취층이 고학력 고수입자로 구성되어 있어 재생 중단 비율도 적다. 2019년부터 스포티파이는 5억 달러 이상을 들여 김릿(Gimlet), 더 링어(The Ringer) 등 팟캐스트 제작사를 인수하며 내실을 다져갔고, 조 로건에게 1억 달러 계약을 안기며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했다.
선택은 적중했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확장과 함께 스포티파이는 전례 없는 성장을 누렸다.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 독점 제공 소식에 17% 오른 주가는 킴 카다시안, 미셸 오바마 등 셀러브리티들의 스포티파이 합류 뉴스와 함께 48.5%나 상승했다. 2018년 52억 5,900만 유로였던 매출은 이듬해인 2019년 67억 6,400만 유로로 껑충 뛰었다. 광고 매출 성장세도 가팔랐다. 2021년 스포티파이의 광고 기반 매출은 3억 2,300만 유로로, 전년 동기 1억 8,500만 유로에 비해 약 1.7배나 상승했다.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는 회당 평균 청취자 1,100만 명에 달하는 스포티파이 팟캐스트의 핵심이다. 다니엘 에크 CEO가 타운힐 미팅에서 '조 로건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회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콘텐츠도 제공해야 한다'라 말한 것은 진심이다. 닐 영과 조니 미첼의 음악을 내리는 것은 당장 큰 손해를 부르지 않는다. 반면 조 로건과 관계를 끊게 되면 심각한 경영 위기가 찾아온다. 자체 수익 모델을 갖추고 있는 애플 뮤직, 아마존 뮤직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닐 영과 조니 미첼 등 거장들의 스포티파이 보이콧 선언은 용감한 일이다. 세계 최대의 음악 감상 플랫폼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내리는 일이 쉬운 결정이겠는가. 그러나 아티스트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저항에 나선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음악 산업계의 주요한 현상 중 하나는 저작권 거래다. 유니버설, 워너, 소니 빅 3 기업뿐 아니라 힙노시스, 비저너리 뮤직 그룹 등 신진 회사들까지 음악 저작권을 현금으로 구입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기폭제는 밥 딜런이었다. 2020년 12월 밥 딜런은 1960년대 초부터 당해까지 발표한 모든 곡의 판권을 유니버설 뮤직에 판매했고, 지난 1월 25일에는 소니뮤직에 모든 음악과 향후 내놓을 신곡 권리를 넘겼다. 유니버설로부터는 3억 달러(3,000억 원), 소니 뮤직으로부터는 2억 달러(2,400억 원)를 받았다. 도합 5억 달러다.
공연이 사라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아티스트들은 저작권을 현금화하며 든든한 수익을 얻었다. 밥 딜런의 뒤를 이어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저스틴 비버, 티나 터너,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저작권을 판매했다.
닐 영 역시 2021년 1월 판권의 50%를 힙노시스에 판매하며 1억 5,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가디언' 지가 닐 영의 투쟁 방식을 '지조 있고도 간편한 방법'이라 지칭한 이유다. 닐 영 정도의 록스타라면 자본 논리에 양심을 거둘 필요가 없다. 스포티파이에서 100만 회 스트리밍 될 때 닐 영이 거머쥐는 돈은 3천 ~ 3천5백 달러에 그친다.
"닐 영은 스포티파이가 필요한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핵심 팬층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의 주 수입원은 투어와 피지컬 앨범 판매입니다.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발표한 라이브 앨범 5장, CD 10장 세트 등 아카이브 레코딩 판매고가 'Heart of Gold'나 'Rockin' in the Free World' 스트리밍 수익보다 많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 The Guardian -
이번 스포티파이 보이콧이 거장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유다. 반면 조 로건의 가짜 뉴스에 더욱 분개할 젊은 아티스트들은 함부로 스포티파이에서 자신의 음악을 내릴 수 없다. 전 세계 음악 감상자의 62.1%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고, 스포티파이가 31%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피치포크 지가 '스포티파이 보이콧이 놓친 기회' 칼럼을 통해 닐 영과 조니 미첼 등 거장들에게 단순 보이콧 이상을 주장한 이유다.
"닐 영과 조니 미첼이 조 로건의 팟캐스트 속 잘못된 정보와 이를 가능케 했던 스포티파이의 역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옳다. 월 수백만 회 이상 스트리밍을 발생시키는 아티스트들의 불참은 플랫폼에 손해를 안길 것이고, 견고한 태도를 다지고자 하는 의지도 존경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덜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주장해온 명분을 위해 비판의 정도를 넓혔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 Pitchfork, 'The Missed Opportunity of the Spotify Boycott'
조 로건 이슈가 스포티파이에 손실을 가져다줄까? 포레스터 리서치에 따르면 스포티파이 사용자 중 19%가 조 로건의 행동 이후 구독을 취소하거나 취소할 계획이라 응답했다. 하지만 숫자는 숫자일 뿐.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빠르게 화제를 모으는 만큼 빠르게 식어버린다. 넷플릭스가 좋은 예시다. 아동 성상품화 의혹을 받는 영화 '큐티스', 성소수자 조롱 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데이브 샤펠로 인해 '캔슬넷플릭스' 운동이 벌어졌지만 실제로 구독 취소를 신청한 이들은 소수에 그쳤다.
안타깝지만 스포티파이가 조 로건 사태 때문에 볼 손해는 미미하다고 본다. 닐 영, 조니 미첼, 인디아 아리를 잃은 것은 아쉽다. 그럼에도 로건이 벌어다 주는 천문학적인 광고 수입에 비하면 감수할만한 리스크다. 다니엘 에크 CEO의 거친 속내처럼 스포티파이 경영진들은 이제 스스로를 음악 감상 플랫폼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스포티파이는 종합 오디오 플랫폼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구글과 같다. 조 로건은 그 플랫폼에 가장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크리에이터다. 닐 영의 보이콧 선언은 스포티파이에게 크리에이터들과 그들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 사건이다. 그동안 거대 인터넷 플랫폼들은 '플랫폼 중립성'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코로나19 시기 동안 소셜 미디어의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실제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의 위험을 간과하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하며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인식으로 논란을 피해 가고자 했던 것이 스포티파이의 실책이다. 이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강력한 알고리즘 기반의 음악 추천과 신예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음악 감상 앱'도 스포티파이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팟캐스트 서비스로 거듭났음에도 논란의 여지에 대해 덜 민감한 '오디오 플랫폼' 역시 스포티파이다.
스포티파이가 향후 콘텐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그들의 몫이다. 스포티파이 구독을 계속 이어갈지도 개인의 몫이다. 다만 확실해진 것은 있다. 개인화와 혁신을 앞세워 글로벌 음악 시장을 이끌던 '젊은' 스포티파이의 이미지는 이제 없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큰 빅 테크 기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책임도 져야 한다. 조 로건과 독점 계약을 맺으며 그의 무분별한 게스트 초빙과 검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를 방관한 책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스트리밍 요율을 인상하지 않았으나 거장들의 봉기 전까지 신인 아티스트들을 적극 지원하는 '쿨'한 플랫폼의 이미지를 가져간 책임에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코로나19 정보센터를 만들어놓고, 플랫폼을 떠나는 레전드 아티스트들에게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공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만에 2,300억 달러를 날려버린 메타(전 페이스북)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스포티파이가 선택한 길이고, 스포티파이가 감수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