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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ug 30. 2017

어정쩡한 서태지 25주년 리메이크

사반세기 전보다도 활력 없는 가요계


서태지의 노래를 다른 누군가가 부르는 건 낯선 풍경이다. 25년이라는 사반세기 긴 시간이 되어 이제는 역사로 기록되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그는 과거보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리메이크에 더욱 인색했고, 이미 슈퍼스타기에 굳이 더 많은 누군가에게 알려질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 음악 대장'을 통해 서태지를 깨닫고, 양 사장님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2017년이 되자 그도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새 세대를 위한 서태지 가이드' 주인공들은 차트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졌으면서도 젊은 아티스트들로 꾸려졌다. 방탄소년단부터 어반 자카파, 윤하, 루피&나플라, 에디킴 등 10대부터 20대까지 주 음악 소비 층을 공략했다. 리메이크 범위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서태지 솔로 시절까지 넓지만 '인터넷 전쟁'을 제외하면 주로 감성적인 곡들로 꾸며졌다. 그러나 단 하나 모자라는 것이 있다. 서태지의 신곡 순위보다도, 그 아티스트들의 신곡 순위보다도 낮은, 차트에 잡히지 않고 누구 하나 언급하지 않는, 인지도다.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는 방탄소년단의 'Come back home'과 음원 강자 헤이즈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를 제외하면, 이제까지 나온 노래 중 대중의 관심을 받은 곡은 전무하다고 봐도 좋다.


윤하 (Younha) - Take Five MV


물론 이 프로젝트는 차트 1위를 노린 어마어마한 기획이 아니기 때문에 성적에 큰 의의를 둘 필요는 없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 변절하지 않은 팬덤을 위한 선물이라면 이 정도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이 리메이크가 보다 더 괜찮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방향부터 잘못 설정되었고, 내용조차 예측을 벗어나지 않으며 25주년 맞은 레전드를 대우하는 기념으로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모습이다.


리메이크 과정에 있어 원작자의 의견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새 단장한 곡들은 20여 년 전 서태지가 발산했던 에너지와 신선함의 반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드러머 해승의 신들린 비트 쪼개기가 있었던 'Moai'는 그 역동성을 모두 거세하고 어반 자카파의 달콤한 목소리와 지친 일상 속 '힐링'을 제공하면서 흔한 노래가 되어버렸고, '빛이라는 건 / 일어서는 것 / 가까이 있게'로 지독한 자아의 고뇌 속에서 한 줄기 빛이었던 'Take Five' 역시 추억의 환기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슬픈 아픔'은 또 어떤가. 묵직한 그런지 록 넘버였던 노래엔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덧붙여졌고 원곡의 처연한 감성은 '힙한' 수란의 목소리 속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록으로부터 저항과 반발의 가치를 가져온 힙합이 방탄소년단의 'Come back home'과 루피 X 나플라의 '인터넷 전쟁'을 맡아 선방한 것을 보면 그 대비는 더욱 명확해진다. 밴드 참여는 힘들었던 걸까?


헤이즈 (Heize) -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In the Time Spent With You) MV


결과적으로 서태지를 재소환한다기보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어버린 셈이 됐다. 그나마 차트에서 선방한 곡이 헤이즈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인데, 본디 헤이즈가 품고 있던 감성과 원곡의 분위기가 맞아떨어지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멜로디 감각이 현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능가함을 보여줬다. 그러나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고, 새 아티스트들의 재해석은 오히려 가요계의 매너리즘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특히 원작자가 최신 트렌드를 창의적으로 소개했던 아티스트였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더. 아니, 요즘은 '하여가', '교실이데아', '인터넷 전쟁' 등은 기대할 수 없는 시대니 감지덕지라도 해야 하나. 




이미 역사적인 인물이 된 서태지에게 계속해서 혁신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음악계에서 그렇게 입만 열면 말하는 '가요계에 혁신을 가져다 온' 그 결과물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서태지가 적극적으로 해외 트렌드를 따라가면서도 절대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말로 된 노래를 썼고, 우리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덕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해외 유행하는 음악은 무분별하게 추종하여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노래가 되고, 메시지는 거의 없는 셈 쳐야 하며 혁신을 만들어내려는 움직임보단 당장의 소비재로 작동하고자 한다. 결국 25주년 리메이크는 지겹도록 들어온, 서태지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재확인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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