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복고 리듬.
청량한 복고 리듬. 1980년대 뉴웨이브의 재기 발랄한 톤을 이식한 < After Laughter >에서 비비드 컬러 패션의 파라모어는 팝과의 교집합을 넓혀 나가던 그 시절 록의 기치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짤막한 기타 리프와 미디 실로폰 사운드를 더하며 걸 밴드 익스포제(Expose) 스타일의 드럼 비트를 더한 메인 싱글 'Hard times'와 신스팝 인트로를 거쳐 파라모어 스타일의 훅으로 이어지는 'Rose colored boy', 펑크(Funk) 리듬에 일렉트로 브릿지와 미디 마림바 사운드를 더해 일렉트로 팝으로 귀결되는 'Told you so'의 3연타 시작이 완벽한 '백 투 더 퓨처'를 알린다.
이런 변화는 < Paramore >의 성공이 가져다 준 자신감과 여유로부터 출발한다. 멤버 탈퇴 속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팀을 재편해야 했던 전작에서 그들은 'Misery business'를 모체로 삼은 고유의 에너제틱한 팝 펑크에다 'Last hope', 'Daydreaming'처럼 드라마틱한 구성의 곡들을 더하며 무게감을 실었다. 차트와 평단 모두를 만족시킨 전작으로부터 파라모어는 리드미컬한 히트 싱글 'Ain't it fun' 스타일을 주축으로 거친 기타 톤을 매끈하게 다듬고, 신스 사운드를 적극 도입하면서 다소 차분하고, 나른한 메시지의 복고풍 새 앨범을 추출해냈다.
너른 레트로로부터의 힌트를 통해 파라모어는 자신들만의 형형색색 퍼즐을 맞춰나간다. 1970년대 플리트우드 맥 스타일 소프트 록에 애니 레녹스를 더한듯 우아하게 선율을 그려내는 'Forgiveness'와 댄서블한 스카(Ska) 기타 리프가 노 다웃(No Doubt)의 초창기를 연상케 하는 'Caught in the middle', 더 큐어의 'Friday I'm in love'에서 음침 한 스푼 빼고 발랄 두 스푼 넣은 'Grudges' 등 과거의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재조합하여 캐치한 멜로디로 멋지게 가공해낸다. 팀의 메인 작곡가 헤일리 윌리엄스와 기타리스트 테일러 요크의 능력은 현재 정점에 있다.
이처럼 < After Laughter >가 영리한 것은 복고와 현대적 팀 정체성을 조화롭게 섞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레트로를 택한 현대 밴드들의 함정은 굳이 원본 대신 복제품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건데, 파라모어는 특유의 개성과 밴드의 상징 헤일리 윌리엄스의 대체 불가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이를 유유히 흘려버린다. 활기차지만 권태로운 메시지를 담은 'Hard times'와 공격적인 목소리로 자아를 노래하는 'Idle worship' 등 오묘한 감정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헤일리의 보컬, 포크 발라드 '26'와 1975의 'The sound'가 연상되는 팝 펑크 트랙 'Pool'까지 포함하는 넓은 범용성은 1980년대로부터의 스케치에 파라모어라는 총천연 물감을 칠하는 과정이다. 특히 전작의 우쿨렐레 스킷을 연상케 하는 어쿠스틱 기타 도입부로 출발하여 신스팝을 거쳐 'Proof'의 매력 있는 팝 펑크 훅으로 이어지는 'Fake happy'는 유연함의 끝을 들려준다.
매끈하게 잘 뽑힌 팝 앨범이다. 록이 설 자리를 잃고 주류 차트에는 힙합과 EDM이외의 장르를 찾기 힘든 현 시점에서, 복고의 문법으로 올 해의 유력한 넘버 원 팝 앨범을 만들어낸 팀이 '밴드' 파라모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록이 팝이었고 팝이 록이었던 1980년대를 추억하는 < After Laughter >는 그 시절의 마니아들은 물론 신세대 팝 팬들의 취향까지도 충족하는, 바람직한 레트로 응용의 사례다. 영민하게 새 시대의 축으로 성장한 헤일리 윌리엄스와 파라모어다.
▼ 클릭하시면 이즘 링크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