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부터 3월 9일까지 모아본 감정의 파편들.
3월 1일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 참석 이후 간밤에 몸이 좋지 않아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다. 한 건은 음성, 한 건은 양성이 나왔다. 다음날 오전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3월 2일부터 3월 9일까지 격리 기간 동안 하루에 하나씩 기록한 감정의 파편들을 모아 발행해본다. 해당일에 이유 없이 많이 들었던 노래를 유튜브 링크로 첨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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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녀오며 당분간 밖에 나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좀 서글퍼졌다. 코로나19 양성 소식은 생각보다 끔찍했지만 우려했던 만큼 우울하진 않았다. 다만 좀 혼란스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언제 나을 수 있을까? 알약 세 알을 하루 세 번 먹는 걸로 완치가 가능할까? 이번 주 여러 가지 일정은 나 때문에 멈춰버리는 걸까?
상상 이상의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사람들의 댓글을 읽고 있으니 기뻤다. 솔직히 감동받았다. 다만 좀 쪽팔리긴 했다. 코로나 양성 소식보다 더 가치 있는 일로 이만큼의 좋아요와 칭찬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잡생각 그만하고 많이 자야 한다는 형님의 말을 듣고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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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2일 차다. 어제보다 더 좋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2리터짜리 생수 한 통을 다 비웠는데도 갈증이 났다.
마감을 마치고 열두 시가 넘어갈 때쯤 PCR 양성 문자를 받았다. 국가 공인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것이다. 메시지를 읽고 샤워를 하러 화장실 문을 열고 몇 초 간 거울 속 초췌한 모습을 바라봤다. 볼품없이 길어버린 머리카락 끝에서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소염제 몇 알과 타이레놀. 흔하디 흔한 처방으로 인류 최악의 전염병을 퇴치할 수 있을까? 나를 대하는 그 누구도 들뜨거나 염려하지 않았다. 마치 지금 내가 씹고 있는 비타민 젤리, 그리고 어제 마셨던 칼국수 국물처럼 무미건조하다. 어제부터 미각에 심각한 하자가 생겼는데,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물에 빨아놓은 듯 미묘하고 불쾌한 막이 혀 표면에 얇게 코팅된 것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비타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조언에 레모나 한 통, 껌과 사탕을 몇 개 샀다. 하루 만에 500ml 물병 열 통을 비우고 레모나 한 포를 입에 까 넣으니 7년 전 논산훈련소의 기억이 떠올랐다. 황량한 까까머리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간식거리가 레모나였다. 가루약 먹는 듯 씁쓸한 레모나와 더불어 물 맛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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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3일 차 아침에도 목이 아팠다. 억지로라도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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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4일 차 아침에서야 확진자 통보 전화를 받았다. 모두 다 아는 내용을 건조하게 물어보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불친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일주일간 밖에 나갈 수 없지만 오늘 하루 유일하게 투표를 위해 한 시간 외출할 수 있다고 한다. 대략 그 시간에 맞춰보려 이것저것 글도 쓰고 작업도 하다 누워있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항상성을 유지하고픈 나와 부디 잠시 멈추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조언이 거듭 부딪쳐 혼란스러웠다.
인스타그램 피드 속 따뜻한 봄 햇살은 사라지고 쌀쌀한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투표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긴 줄이 투표소 주변 인도 끝에 길게 생겨났다. 누구에게 투표할까를 정하기보다 투표를 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이 생겼다. 칼칼한 목이 더 부어오르면 어떡하지, 내일 아침 숨쉬기도 힘들어지면 어쩌지, 그러고 보니 집에 약은 남아있던가? 당연히 괜한 걱정이었고 아무 이상 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왔다. 유독 멀게만 느껴지는 귀갓길을 따라 최대한 바깥공기를 더 많이 마시려 숨을 깊이 담아 내쉬었다.
격리 기간 동안 밀렸던 드라마와 영화를 틀어놓고 있다. 모니터에서는 넷플릭스, 아이패드에서는 음악, 아이폰에서는 지니어스. 어지러운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콘텐츠가 오늘의 승자, 정주행의 주인공이다. 극적인 순간, 결정적 계기, 눈물을 흘리며 뼈저리게 경험한 인생의 전환점 따위를 믿지 않게 된지도 오래됐다. 헤아릴 수 없는 우연과 거듭 번복하는 감정, 눈치채지 못하고 흘려보낸 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당장 지금 있는 그대로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과 갈등했던 이유가 아닐까. 때문에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만큼 슬픈 일도 멈추지 않고 쏟아진다 (고 믿고 있다.).
코로나보다 심각한 비극이 많다. 위태로운 가운데 오늘의 나는 나나 내 위의 사람들 대신, 나 다음 세상을 이끌어 나갈 이들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도 무덤덤할 것만 같다. 아, 그랬구나. 어쩌면 좋니.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서정적인 피아노 배경음악이 깔리는 것도 아니고, 다각도에서 현재 표정을 포착해줄 카메라도 없다. 적막, 진공, 그리고 소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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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5일 차부터 슬슬 살만하다는 느낌이 온다. 부어오른 목이 많이 가라앉았고 기침 빈도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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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6일 차 월요일이다. 약이 다 떨어져서 비대면 진료를 신청하러 한 시간 정도 전화를 돌리다 포기했다.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을 때쯤 도착하겠지만 봄 옷도 몇 가지 시켜봤다. 늦은 밤 방송 스케줄 두 개만 보고 암실같이 캄캄한 방 안에서 키보드 백라이트와 모니터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봤더니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방송은 훌륭했다. 목소리가 좀 맛이 간 걸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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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마지막 날이다. 억지로라도 좀 게을러보고, 실제로 게을렀던 시간이었다. 하루 한 번 샤워를 하면서도 끝내 면도는 하지 않아 볼품없이 자란 수염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거울 속 메탈리카 후드 티셔츠를 입고 퉁퉁 부은 얼굴로 헛기침을 하는 남자가 바로 나다. 이런 모습까지 사랑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일 자가진단 키트 검사를 마치고 면도를 해야겠다.
배달음식에 의존하다 보니 금세 일회용품이 쌓인다.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용기를 닦아 써보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사전 투표하러 나갔던 3일 전을 빼면 바깥공기를 맡아본 적이 없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조언에 500ml 물 40병을 4일 동안 다 마셨더니 비어있는 페트병 잔해들이 큰 박스에 수북하다.
왠지 우울한 마음에 티어스 포 피어스의 새 앨범을 재생했다. 힘차게 '에브리바디 원츠 투 룰 더 월드'를 노래하는 그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으되 여전히 우아하고 맑은 영혼으로 올곧게 노래한다. 앨범 제목은 ‘끓는점'이다. 포근하고 따스한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비탄의 정서에 호기심을 품고 검색했더니 긴 머리의 카리스마 기타리스트 롤랜드 오자발의 아내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며칠 전 토머스 투헬 감독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전쟁을 겪지 못한 입장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미안하다"며 기자를 질책하는 그를 보며 사소한 불행에 투덜거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런데 언제까지. 가끔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마음껏 무너져보고 싶다. 물론 일주일간 집안에 갇혀 있는 이런 형태로의 무너지기는 사양이다. 어쨌든 이 미니 감옥에서 출소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쇼핑몰을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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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고르다 새벽 다섯 시에 잠들었다. 오늘은 대통령 선거 날이다. 불편한 사전 투표라도 주중에 잠깐 바깥공기를 쐬고 온 게 좋았다. 씁쓸하게도 미세먼지 농도 앱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자가진단 키트에 몇 방울을 툭, 툭, 떨어트리자 얇은 시험지도 빠르게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다행히 한 줄이었다. 목은 여전히 따끔거렸다.
방을 깔끔히 청소했다. 이불과 수건, 옷가지도 세탁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플라스틱 용기를 묶어 밖에 내놓았다. 코로나19는 사람의 몸을 망치고 환경도 파괴한다. 무기력증과 피로감 탓이다. 좀체 몸을 움직일 기분이 나지 않는다. 행동반경이 좁아지는 만큼 넓다고 할 수 없는 내 방의 가용 공간도 줄어든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와 배달용기를 피해 손을 씻으러 들어가던 지난 며칠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쓰레기를 치우니 집은 다시 넓어졌다. 옷가지를 고이 접어 놓고 신발장을 정리하니 막상 내일 입고 나갈 옷이 없어 과소비를 했다. 열심히 써서 갚아야지.
개표 방송을 보러 근 며칠간 처음으로 택시를 불렀다. 왠지 오늘 밤 쉽게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크래프트 비어 한 캔이 몹시 절실했다. 거리는 새벽의 어느 날처럼 적막했다. 갓 격리 해제된 나를 환영하지 않는 것처럼. 운동을 쉬다 보니 너덜너덜해진 근육이 그대로 느껴져 굉장히 불편했다. 왜 기쁜 순간은 찰나에 그치고 마는 걸까. 행복해야지, 즐거워야지, 힘내야지. 불행하고, 괴롭고, 지쳤기 때문에 이런 다짐을 하는 건 아닐까.
여기까지 쓰는 동안 드디어 역전의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격리 일기를 마칠 시간이다. 지난 일주일간 홀린 듯 틀어 놓았던 <유포리아> 속 트랜스 상태처럼 몽롱한 가운데 어지러운 소리와 숫자, 희망과 절망의 고성이 오간다. 아마 오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