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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19. 2023

TAR 타르, 비극의 수수께끼

토드 필드 감독, 케이트 블란쳇 주연.



리디아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며 EGOT 회원이다. 공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난민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서구 사회의 모범 스타 지휘자다. 현재 그의 가장 큰 목표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해석하여 도이체 그라모폰과 스튜디오 레코딩 발매하는 것으로, 가장 저명한 제5번 교향곡 실연 및 녹음만을 앞두고 있다.


리디아는 촘촘하게 배치된 스케줄표에 따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을 소화하며 창작의 고뇌까지 감당해야 하는 유명인의 삶을 산다. 그는 정체불명의 미세한 소음에 작업을 망칠 정도로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곧 우리는 그 노이즈가 리디아 본인의 어두운 동굴로부터 흘러나오는 불치의 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떳떳하지 못한 과거의 흔적은 그를 자주 주눅 들고 거짓말하게 만든다.


영화는 리디아의 잘못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파멸로 치달은 한 타인의 삶이 인터넷 뉴스에서 건조하게 지적될 때가 위기의 시작이다. 이후는 그저 차갑게 관조할 뿐이다.


[TAR 타르] 메인 예고편


‘타르’는 끝없이 질문하는 영화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엄격한 문법은 마치 한 인간의 죄악을 폭로하고 몰락을 중계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완벽한 사실을 회피하는 영화는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작동하고 있다. 자문자답했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리디아는 엄격한 클래식 시장에서 여성으로 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개척자다. 하지만 그에게 제기되는 의혹은 성적인 추문이다. 리디아는 후학을 양성하는 데 열정적이고 폭넓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은 계산적인 인간관계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재해석하는 리디아의 감각과 천재적인 엄격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카리스마를 권력으로 휘둘러 타인의 삶을 유린한 것도 사실이다.


운명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다. 하지만 영원히 잊힐 형벌까지 허용하지는 않았다. 리디아의 죄악은 흐릿하지만 분명한데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갈망은 어지럽긴 해도 진실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캔슬 컬처에 대한 반박으로 읽을 수 있다. ‘타르’를 여성 혐오 영화라 비판하는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어떤 이는 악인의 전락을 바라보며 통쾌함을 느낀다. 가장 확실한 감상이지만 작품의 애매한 태도가 속을 뻥 뚫어주지는 못한다. 이 모호한 비극의 서술자 같은 관점이야말로 ‘타르’의 느리지만 진중하고 묵직한 매력이다.


토드 필드의 시선은 회의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난무하고 예술가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지나칠 정도로 장황한데, 너무도 차가운 현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 불편하고도 매혹적인 세계를 완성하는 이가 케이트 블란쳇이다. 그는 ‘타르’의 모든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모든 순간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섬세하며 음악에 대한 통찰력과 현실에 대한 통제를 갖추고 있으나 은밀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천재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블루 재스민'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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