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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Sep 17. 2019

비틀즈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의 '예스터데이'

영화 <예스터데이>, 필요한 건 오직 사랑뿐.


갑자기 난 예전의 반도 못한 사람이 되었죠
- Yesterday -


거리의 뮤지션 잭(히메쉬 파텔 분)은 14살 때 학교 파티에서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불러 평생의 매니저 엘리(릴리 제임스 분)를 만났다. 그러나 현재, 창고형 마트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그의 관객은 네 명뿐이다. 유명 페스티벌 소형 텐트에서 최악의 공연을 마친 후 잭은 ‘이 길고 험난한 길은 끝(The Long And Winding Road)’이라며 엘리에게 음악 생활을 청산할 것이라 말한다.

운전면허도 없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울한 귀갓길, 운 없게도 잭은 바로 그때 전 세계를 뒤덮은 12초간의 대규모 정전 사태로 달려오던 버스에 치여 앞니 두 개를 잃는다. 그러나 그 시간에 세상은 비틀즈, 존, 폴, 조지, 링고, 페퍼 상사와 렛잇비, 헤이 쥬드와 노란 잠수함을 잊어버렸다.

<예스터데이>는 위대한 아티스트의 위대한 음악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것으로 만든다. 비틀즈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그 시간에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었던 잭뿐이다. 그는 이제 오직 자신만이 알게 된 비틀즈의 명곡을 다시 불러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 평소 선명히 기억하고 있던 노래는 물론 일상 속 대화와 순간으로부터 끊임없이 그들의 명곡을 불러내는 것이 잭의 주요한 임무가 된다.



나는 스트로베리 필즈에 갈 거야, 너도 데려갈게.
- Strawberry Fields Forever -


생존 멤버들과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영화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비틀즈의 노래가 쏟아진다.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노래들, 이를테면 ‘Yesterday’와 ‘Let It Be’는 물론이고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차근차근 훑어간다. 어찌나 곡이 많은지 극 중 잭은 포스트잇에 곡의 이름을 적어 벽 한편을 빼곡히 채워 넣어야 할 지경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과 워킹 타이틀의 간판 각본가 리차드 커티스는 영화 곳곳에 비틀즈의 숨결과 역사, 노래를 숨겨둔다. 그것은 앞니 치료를 받으러 간 잭에게 치과 의사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갔지(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라 말하는 장면처럼 간접적이기도, 슈퍼스타가 된 잭의 프로모션 무대가 고향 서포크의 허름한 호텔 옥상인 것처럼 직접적이기도 하다 (비틀즈의 루프톱 콘서트).  

동시에 <예스터데이>는 주인공이 비틀즈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로드 무비’의 성격을 가진다. 잭이 비틀즈를 기억하기 위해 리버풀의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와 페니 레인(Penny Lane), 엘리노어 릭비(Eleanor Rigby)의 묘를 찾아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세상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멜로디와 가사에 감탄하면 감탄할수록, 잭이 떠올려야 할 멜로디와 노랫말 역시 늘어난다. 심지어는 그 헷갈리는 ‘엘리노어 릭비’의 이야기까지.



무게를 견뎌, 오래도록 짐을 짊어져야 해요.
- Carry That Weight -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고도 잭은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되지 못한다. ‘Let it be’의 초연을 듣는 잭의 부모님은 세 번이나 노래를 끊어버리고, ‘I wanna hold your hand’의 첫 무대는 아이들의 생일 축하 공연이다. 다섯 곡의 EP는 할인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제공되고, ‘In my life’를 처음 소개하는 지역 방송국 토크쇼 사회자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요리 코너로 순서를 넘긴다.

물론 위대한 노래는 알려지기 마련이다. 우연히 지역 방송을 본 팝스타 에드 시런이(진짜 에드 시런이다.) 오프닝 가수 자리를 제안하고, 저명한 팝스타 매니저 데브라가 그를 기획하며 잭은 순식간에 ‘세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된다. 무명의 잭에게 비틀즈는 ‘명예라는 이름의 독배’를 건네고, 오래도록 자신의 매니저를 맡아준 엘리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계기를 전달한다. 온 세상의 주목을 보여주는 거대한 디지털 스크린 앞에 선 잭, 그를 배경으로 ‘Carry that weight’가 의미심장하게 흘러나온다.

곧 잭은 노래의 가사처럼 거대한 무게를 견디며 괴로워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고향에서 리버풀까지 달려온 엘리를  다음날 ‘제임스 코든 쇼’ 스케줄 때문에 포기해야 하고, 비틀즈의 위대한 앨범 제목을 무시하고 ‘원 앤 온리’라는 제목을 붙인 음반 기획자들의 아이디어는 마음 한 켠의 불안을 부추긴다. 노래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잭은 점차 그가 본인의 삶에서조차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모든 외로운 사람들, 어디에서 온 걸까?
- Eleanor Rigby -


잭이 ‘독이 든 성배’를 견디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쉽게 부르고 또 따라 했던 비틀즈의 위대한 유산이 사실 천재적 재능보다는 치열하고 지난한 고행의 결과물인 탓이다. ‘비틀즈’라는 이름을 정한 1960년부터 1964년 2월 7일 미국 JFK 공항에 상륙하기 전까지, 비틀즈는 리버풀의 캐번 클럽부터 독일의 함부르크를 오가며 그야말로 피나도록 노래하고 연주하며 미친 것처럼 음악을 들었다.

엘리의 차를 타고 작은 공연장을 전전하며 노래하던 잭 역시 나름의 노력과 고충을 거친 뮤지션이다. 그러나 결코 하루아침에 전설이 될 순 없다. 그가 에드 시런을 살리에르로 만들어버리고 온 세상을 놀라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역사적인 네 명의 업적과 경험을 단기간에 추적하기란 불가능하다. ‘보지 못한 것을 노래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잭 말릭은 곧 아무도 듣지 않았을지언정 자작곡 ‘여름 노래’를 불렀던 순간이 월드 스타인 현재보다 훨씬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면허도 없는 자신을 차에 태워 투어를 진행하고, 절대로 음악을 포기하지 말라던 엘리를 놓쳤던 과거의 자신이 바보 같았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엘리노어 릭비’ 속 쓸쓸히 쌀알을 줍던 엘리에게 잭은 드디어 ‘데스몬드와 다정한 가정을 꾸민 몰리’를 제안하게 된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은 계속된다네.
- Ob-la-di Ob-la-da -


위대한 예술은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옳은 결정과 행복한 방향을 인도한다. <예스터데이>가 소개하는 비틀즈의 음악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일깨우고,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만원 관중에게 하여금 한 목소리로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랑’을 노래하게 만든다.

길고 험난한 길, 피하고 싶은 길에서 음악은 언제나 답을 준다. 어머니 메리의 말씀처럼 많은 고민을 ‘내버려 두도록’, 매 순간 느끼는 것을 진실하게 표현하도록 도움을 건넨다. 비틀즈의 음악이 사라진 시대에서 누군가는 그들의 음악을 전해야 하는 이유이자,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 모두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헤이 쥬드’를 부르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은 계속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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