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를 시작하고 어언 8개월이 되었다. 4월 중순부터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쿠팡에서 주문한 낱장 짜리 드로잉북을 활용했다. 낱장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 A5 크리어 파일에 정리했다. 용지가 나름 많았는데 두 권의 클리어 파일에 정리하고 보니 뿌듯한 마음이 남았다.
낱장에 그리면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 그리고 채색하기 편했지만, 가지고 다니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으로 된 드로잉북을 찾았고, 두 권을 구입했다. 한 권은 가로형으로 되어 ㅏ있어 펼치면 가로로 길어지는 형태였고, 다른 한 권은 보통 책 모양의 세로 형태라 펼치면 적당한 크기가 되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았다. 인스타그램은 아무래도 정사각형 사진이 기본이라 세로 형태가 적당해 보인다.
가로형 드로잉북은 20매 정도 되는 300g이라 금방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세로형은 80장짜리 200g이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방에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풍경, 건물, 나무, 골목, 사람, 음식, 카페, 자동차 닥치는 대로 그렸다.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좋았다. 그림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타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즐거운 모양이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손으로 직접 탄생시킨 것들이라 정겨운 점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프로의 작품은 아니더라도, 부족하고 어설픈 부분이 친숙했을지도 모른다.
책으로 된 드로잉북은 나름 부담되는 결과물이다. 낱장은 틀리면 틀리는 대로 버릴 수 있지만, 드로잉북은 버릴 수도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도 그대로 받아들여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넘길 때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봐야 하지만, 이 또한 내 손에서 탄생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서 낱장으로 그릴 때보다 더 신중하게 선을 긋는다.
말이 80장이자 매일 그려도 두 달이 넘도록 그려 넣어야 하는 분량이다. 가지고 다니는 만큼 컨 표지는 닳아지는데, 그 모습에 더 애정이 가는 걸 우리는 손때라고 한다. 남들은 이 작은 노트의 가치가 그저 한번 펼쳐보는 것일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서는 아들, 손자에게도 남겨주고 싶은 그림으로 다가온다.
인스타그램을 눈여겨보던 이가 말했다.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보인다고... 정말이냐고 되물었더니, 눈에 띄는 성장은 아닌데, 처음에 비하면 정말 좋아졌다고 한다.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모양이다. 시작하고 연습하면 금방 좋아지다가 어느새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성장한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이는데, 주변 사람들은 응원인지? 정말 그렇게 느끼는지 좋다고 해준다.
그림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몰랐던 사실을 배우고 함께 그린다. 비슷한 취미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던 것처럼 함께, 서로에게 보이고, 격려하는 일은 그만큼 가치 있는 행위이다.
어찌 되었든 8개월 동안 그럭저럭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4권의 재산이 쌓였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이란 도구 때문에 세상에 내볼 일 수 있어 좋다. 블로그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인스타그램 덕분에 그림을 내보일 수 있어 좋다. 내보일 수 있을 때 발전하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용기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의 비평과 비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발전을 위해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