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때 지난 아침을 먹을 것만 같아진다. 그래야 바쁘게 살았던 주일이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휴일은 평소와 다른 루틴이 필요해 보인다. 나야 매일 같은 루틴으로 살지는 않기에 주말이라고 딱히 그럴 이유는 없다.
10시에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 보험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였지만, 그것 아니어도 충분히 수다 떨 재료가 많은 사람이다. 중간 지점을 고민하다가 작년에 잠시 아지트처럼 이용했던 곳이 떠올랐다.
최근에는 잘 이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마감시간이 다소 이른 편이라, 이야기하다 쫓겨나듯 나온 경험이 있다. 다시 근처 카페로 이동하여 이야기를 마무리했는데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낮에만 이용하면 별문제 없겠지만, 비즈니스로 만날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드니 발걸음도 뜸해진 곳이다.
오픈 시간에서 불과 30분 지났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면, 다들 부지런 모양이다. 아침부터 카페에서 뭘 할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층은 그런대로 가족단위로 보이는 무리가 보였다. 2층에는 그런대로 한가한 모습이었다.
베이킹 카페는 빵과 커피가 정석 아닌가? 주변 사람들을 보며 여기에 요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가지고 올라오는 몇몇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복장으로 등산을 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넓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는 장면은 약간 생경했다. 이것도 장르파괴의 한 장면인가?
카페는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에서 어느덧 빵을 먹는 공간으로 변해갔고, 이제는 브런치를 넘어 식사까지 제공된다. 영업신고를 어떻게 해야 음식과 차가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지만, 카페에서 보지 못한 풍경이라 별생각이 다 든다.
지인이 주문해온 베이킹은 하필 파, 마늘? 오늘은 입 냄새 풍기며 다녀야 할까 보다며 함께 웃었다. 카페 이름에 베이킹이 들어갈 정도면 여기는 카페가 아니라 베이커리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숫자가 늘어간다. 예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구석진 테이블 공간은 옷과 액세서리 파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내는 작은 쇼핑하러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는다. 지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고, 작은 기쁨을 구매한 아내가 이야기를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때다 싶어 펜과 저널 북을 꺼내 들었다. 이제 그림 그릴 시간이다. 이제 내가 그림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은 별말이 없다. 그저 나의 일상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일주일 전 정기 모임에서 카페 풍경을 그리고 일주일 만에 그려보는 실내 풍경이다. 실내를 그리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의자, 테이블, 사람, 화분, 창문, 그 밖으로 보이는 희미한 풍경들. 다른 의자와 테이블은 다른 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름의 재미가 있다.
펜 드로잉을 끝냈는데도 대화는 여전히 진행 중. 붓 펜을 들어 명암을 넣었다. 나름 분위기가 입체적으로 변했는데,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 보였다. 풍경에서 가장 돋보이는 오렌지빛의 의자만 색을 칠해보기로 했다. 물감을 꺼내 붓을 들었더니 테이블이 풍성해진 것 같다.
이제는 제법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릴 수 있다. 실력이 너무 형편없지 않다는 나름의 자신감이랄까? 지나는 사람이 봐도 웃기지 않겠다는 미묘한 그런 느낌이 있다. 그래도 밑그림 없이 한 번에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대화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무리에서 바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그림의 매력이다.
함께 어반 스케치하는 분의 인스타 공지가 떴다. 혼자 그림 그리고 있다며 오는 분들에게는 커피를 쏜다는 번개. 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답을 보내고 잠시 다이렉트 메시지로 대화를 나눈다. 핸드폰 덕분에 어딜 가도 대화의 공간을 열 수 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편하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어반 스케치가 가진 장점 중에 최고이다.
오랜만에 주말 아침을 호사스럽게 보낸 듯하다. 역마살이 있는지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나와서 있는 시간이 좋아진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와서 뭐라도 일하는 편이 낫다. 5월까지 원고 작업도 끝내야 하는데 글은 쓰지 못하고 다른 일들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