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이라 면회가 안된다고 했다. 그저 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아들에게서 면회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명절 연휴 딱 3일만 허락된다며 하루를 미리 알려줘야 면회가 된다고 했다. 당일은 어려울 거 같고 마지막 날은 귀경 차량으로 쉽지 않을 듯해 명절 전날 가겠다고 했다.
막상 날짜를 정해두고 보니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면회 날은 물론 전날부터 눈발이 날리고 자그마치 30cm 눈 예보가 들렸다. 기온마저 급강하한다고 하는데 만약 눈이 얼어버리면 꼼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서 면회 취소는 물론이고 낯선 지역에서 갇혀버릴지도 몰랐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쌓여갔다. 자대 배치받고 처음 보는 아들인데 날씨 핑계를 대는 것도 우습고, 그렇다고 나오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알면서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약속을 지키는 것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안 된다기에 눈이 펑펑 쏟아지는 새벽에 길을 나섰다. 평소에는 두 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눈 때문에 거북이걸음을 해야 한다면 3시간은 넘게 잡아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눈이었지만, 한강을 넘어가면서 잦아들더니 의정부를 넘어가자 더이상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삼할 수는 없었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속도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3개월 만에 만난 아들은 살짝 살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나름 건강하고 늠름해 보였다. 130일 만에 처음 만난 동생들은 형아가 그저 신기한지 쑥스러워하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아침 일찍 갈만한 식당도 없어 겨우 샐러드 전문점을 찾아 브런치를 먹이고 동생들과 피시방으로 보냈다.
명절 전이라 영화관도 식당들도 영업을 하지 않았으니, 처음 나온 아들을 그저 밥만 먹일 수 없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동생들과 게임이라도 마음껏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아내와 나는 쇼핑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며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
30년 전 부모님이 내게 면회 온 날이 문득 떠오른다. 시내에 여관방을 잡긴 했지만, 부모님과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혼자 목욕탕 갔다가 여관방에서 한숨 자고 식사한 것이 전부였다.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그래도 부대를 벗어났다는 자유가 좋았다. 아련하게 잊힌 기억이 아들 덕분에 새록새록 다시 솟아난다.
돌아가는 시간은 언제나 힘들다. 돌아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도 힘들었고, 떠나는 부모님도 힘드셨으리라. 30년이 지나고 내게도 부모 입장이란 것이 찾아왔다.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떠는 아들을 보니 착잡한 마음이 헤아려졌다.
아직 420일 정도가 남았다는 아들은 얼마나 시간이 가지 않을까? 사회와는 다르게 느린 시계가 걸려 있는 곳이 군대이다. 바쁘지 않으면 좀처럼 시간이 가지 않는다. 모든 걸 잊고 그저 열심히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책을 10권 정도 읽었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허송세월로 보내는 군 생활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거짓말처럼 말끔히 마른 도로를 따라 집으로 가는 중이다. 아들과 찍은 사진을 가족방에 올리고 내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