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에세이로 만남

by 행동하는독서

명절 연휴를 앞두고 있어 마음이 한결 들뜨고 있었다. 이런 날은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며 제격이다. 늦은 오후에는 떡 찾으러 멀리 다녀와야 해서 도착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내가 사는 곳은 안산, 산본은 전철역으로는 6정거장이다. 차로 가도 40분이면 도착하는 걸로 나왔다. 평소 활동하는 범위로 계산하면 옆 동네지만, 떡을 찾으러 다녀오기에는 누구라도 먼 거리라 할만하다.

가족들이 모이는 연휴에 간소하게나마 어머니 팔순잔치를 하기로 했다. 떡을 맞추는 것 때문에 가족회의를 하다가 블로그 이웃 생각이 났다. 떡은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명절이라 무척 바쁘실 것을 알고도 전화를 드렸다.

떡집이 있는 시장 근처에 내가 자주 애용하는 중고서점이 있다. 갈 때마다 연락해 봐야지 하면서도 차마 연락하지 못했는데, 떡이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해준 셈이다. 이분의 글과 이름을 접한 지 일 년 반 만에 처음 통화를 했다. 가까우니까 한번 보자는 댓글을 주고받을 때는 금방이라도 만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만남이든 결단이 필요하지 않던가? 그냥 만나지는 일은 없다. 어느 한쪽이 먼저 다가서야 한다. ​


꿈의 도서관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후 글쓰기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한여름 밤의 꿈>, 여름이 가기 전에 자신만의 글을 쓰고 나누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쉽게 심사하기 위해 엽편소설, 편지, 시, 짧은 에세이로 한정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웃들이 참여하여 나름 성황리에 잘 마무리되었다. 이벤트 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쓰기에 진심 어린 분들을 보았다. 몇 편의 글이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그중 한 분의 글이 대상을 받았다. 어머니께 쓰는 편지글이 가슴을 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분과 이웃이 되고 가까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

꿈의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많은 응원과 참여를 보여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가까운데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무턱대로 만나자고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듯싶었다. 가깝게 사니까 우리 만나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런 순간마다 가만이 정신과 예의 사이에서 갈등하곤 한다. 자칫 오해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라는 문턱은 별거 아니라 생각하면 신경 쓸 일 없지만, 크다면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꿈의 도서관>이라는 공적 힘이 명분을 주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먼저 다가설 때는 조심성이 따른다.

명절이라서 차들이 얼마나 막히는지, 평소에는 4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20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알려주신 대로 이중주차하려 해도, 그나마 공간이 없었다. 재래시장은 언제 코로나를 겪었나 싶을 정도로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했다. 네이버 지도에도 재래시장이라고 나올 정도로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었다. 바로 건너에 아는 분이 살고 계셔서 가끔 오가던 길이지만 시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좁은 시장 골목을 자전거 타고 들어온 아저씨들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카카오톡을 실행시켜 그려주신 약도를 다시 꺼내 보며 시장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떡집이 눈에 들어왔다. 고객을 상대하느라 바쁜 블로그 이웃을 발견했다. 처음 뵙는 얼굴이지만, 어떻게 금방 알아볼 수 있을까? 동행한 아내가 저분이 맞느냐고 물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금방 알아보느냐고 했다. 더구나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에는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며 마스크 없이 올려주신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눈만 보고도 상대를 알아볼 수 있다니.

얼마나 바쁜지 눈 마주칠 기회조차 없었다. 1분을 서 있어도 떡 달라고 손 내미는 분들 상대하느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목을 빼서 최대한 가까이 대고 인사를 했다. 얼굴을 기억하시는 건지, 약속 때문인지, 금방 알아보시고 환하게 웃어주셨다.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제대로 찾았고, 잘 마주했다. 동행한 아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만남은 아주 짧았다. 떡을 받아 설명 듣고, 결제하는 잠깐이지만, 명절 지나고 편하게 만나 뵈면 더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에 시작하는 에세이 글쓰기 반 선배님이라서 잘 부탁한다고 말씀드렸다. 멘토, 멘티를 이어준 에세이 선생님의 짐작 가지 않는 의도가 궁금했다. 아무튼 에세이반 선배는 선배이니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멘토, 멘티 관계가 맺어졌으니 앞으로 더 자주 소통할 예정이다.

떡 맞추려고 통화했을 때 아주 반가운 말씀을 해주셨다. 내 글이 너무 잘 읽힌다고 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떡이라는 정감이 사람의 관계를 그리 만들어주니 특별한 인연이 아닌가 싶다. 멘토와의 만남에 관한 글로 당사자에게 검사를 받는다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세이 선생님에게 왜 멘토 멘티 관계를 만들어 주었는지 다짜고짜 물었다. 서로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멘토의 글이 너무 신선하다며 서로가 격려해 주며 좋은 글을 쓰면 어떻겠냐는 말에 공감했다. ​


진작에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큰일을 하나 해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