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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Mar 01. 2023

4시의 태양빛이 아버지를 닮았다.


지방 볼일을 끝내고 서울로 향한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태양이 자신을 태워 서쪽 하늘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서해안 고속도를 타고 올라오면 아름다운 빛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 차분해지는 나를 만난다. 멀리 바다가 보였다가 다시 산으로 바뀌고 숲으로 경치가 이어지지만 붉어진 하늘은 그대로 따라온다. 


떠오르는 태양과 사라지는 태양은 어찌 그리 색이 다를까? 사라지는 태양은 아쉬움 때문일까? 그래서 지는 태양이 더 아름답다. 헤어짐의 여운이 만남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를 여기에 가져다 붙여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 헤어짐은 모든 노랫말의 주된 가사가 된다. 헤어짐이 있어야 삶이 애틋하고 아름다워지지 않는가?


가장 운전하기 어려운 시간이 저녁 태양이 지기 바로 전이다. 태양빛을 밤을 향해 달려가며 마지막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때는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닌 오묘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낮은 태양 각도가 은근한 눈부심을 만들어 시야를 가린다. 살짝 어두워진 느낌과 붉은 하늘에 앞차를 시야에서 놓친다.


아침에 만나는 환하고 하얀 태양은 희망을 상징하는 듯,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정오의 내리쬐는 태양은 에너지가 최고에 이르러 힘을 준다. 밝은 만큼 그림자도 짧고 진하고 선명하다. 밝고 어두움이 명확한 것이 주장이 강했던 젊음 시절을 닮았다. 너무나 강렬해 얼굴에 그림자를 선명하게 만들어 부담스럽다. 주름을 명확하게 만드는 정오의 태양은 너무나 인정사정없다. 나이 먹는 우리를 그렇게까지 무섭게 보이도록 할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지만, 태양빛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며 겸손을 찾아갈 운명을 가진다. 젊은 시절이 지나고 빛이 약해지면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알아간다. 강렬함을 잃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조금씩 빛을 연하게 다듬어 색감을 풍부하게 만든다.


사진을 찍어보면 태양빛이 연해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사진작가들은 이때의 색온도를 가장 좋아한다. 태양빛이 사선에서 들어와 얼굴에 그림자도 지지 않는다. 빛은 약해지지만 오히려 더 선명하게 얼굴을 비추어주니 60대의 아버지같다. 누구나 사랑하고 포용하는 빛이 된다는 것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빛이 최고 정점을 잃고 난 후라 역광도 아름답다. 이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3시 언저리쯤으로 와 있지 않을까? 아직 누군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색감을 가지지 못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누군가를 따뜻하게 비춰줄 최고의 골든 타임을 맞으리라. 많은 사람을 빛나게 해줄 그 시간을 위해 나의 가팔랐던 삶을 충분히 정리해야겠다.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빛이 되고 싶다. 


산등성이 굴곡을 따라 붉은빛이 선을 그린다. 잠시 후 태양은 모습을 감추고 말 것이다. 차가 이동하며 각도가 바뀌면 산등성이 굴곡 따라 숨었다 드러났다를 반복한다. 마치 헤어지기 싫다는 아쉬움의 표현으로 보인다. 태양빛이 여러 갈래 갈라지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빛이 된다. 나무에 걸친 빛은 공기에 갈라져 날카롭게 불그스름한 광선을 안겨준다. 이제 곧 꺼져가는 생명처럼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순간이다. 아름다운 순간은 왜 이리도 짧은지 모르겠다. 이런 사진을 찍으러 서해 바다로 가고 싶지만 번번이 쉽지 않다. 그래도 달리며 이렇게라도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는 안도의 발걸음과 동행하는 석양, 그래서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불그스름한 태양빛의 안전하고 포근한 느낌처럼 내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간다. 


지금은 밤으로 사라진 아버지란 빛이 그립지만, 나는 아직 우리 아이들을 비춰줄 최고의 빛을 남겨두고 있으리라. 어제를 살다간 당신의 모습으로 나는 새로 떠오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어제를 살다가신 아버지를 통해 4시의 빛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운다. 6시의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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