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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Oct 23. 2023

그리운 시절의 떡볶이집

지방을 내려가려고 내비를 찍어보니 서해안 고속도로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언젠가부터 서평택 근처를 통과하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토요일에 한 시간가량 도로에 묶인 기억이 있는지라, 무료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39번 국도는 자주 애용하는 도로라서 대강 어디로 이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발안을 지나 청북을 지날 때쯤 문득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머릿속에 식당을 스캔해 본다. 가는 길에 먹을만한 곳이 있는가?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고속도로라면 어쩔 수 없이 휴게소겠지만, 국도를 타면 이런 고르는 맛이 있다. 그러다 문득 떡볶이집이 떠올랐다.


떡볶이를 생각하면 몇 개 이미지가 끌려온다. 집과 학교가 가까운 덕분에 근처 상가는 대강 알고 지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떡볶이집, 거기에는 짜장 즉석 떡볶이가 유명했다. 그때는 즉석 떡볶이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부르스타에 냄비를 올려 가져다주었다. 하교 시간에는 절대 먹기 어려운 곳이지만, 친구들과 자주 애용하던 곳이라 아주머니와도 무척 친했던 곳이다.


아주머니는 동네 유지 같던 아버지와도 잘 알고 지내셨다. 가끔은 아버지와도 마주쳤기에 조심스럽게 드나들던 곳, 아지트로 삼기에는 너무 드러나서 절대 다른 짓을 할 수 없던 장소이다. 그야말로 모범생처럼 드나들 곳이지만, 근처에서는 가장 유명했던 분식집이다.


오래된 집들이라 지금처럼 통구조가 아니다. 길가 가게에 주방을 차리면 안쪽 방을 터서 먹는 공간을 만들었다. 방을 몇 개 이어 붙이면 작은 문을 통과하며 몇 개의 공간이 나온다. 내부 인테리어라고 해봐야 종이 도배지와 싸구려 식탁, 의자가 전부였지만 학생들의 낙서가 채워지면 나름 괜찮은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나는 아버지 눈을 피해 되도록 안쪽에서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절대 보이지 않을 곳에서 말이다. 문이 없는 문틀을 두 개쯤 통과해야 하는 은밀한 곳. 선생님까지 마주치기 시작하자 우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공원을 넘어 멀리멀리 다른 떡볶이집을 다녀야 했다. 일명 백백집으로 유명해서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모여 기다리기 일쑤였지만, 선생님을 눈을 피하는 건 기본 아니겠는가?


떡볶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던 시절이라 신당동에는 디제이까지 있다고 했다. 떡볶이 하나 먹자고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분식집이 먹는 장소를 넘어 다양한 문화를 반영했던 시절이다. 물엿을 잔뜩 넣어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유명한 분식집, 아니 떡볶이집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브랜드화된 분식집들이 유행이라 깨끗하고, 잘 포장된 곳이 더 많아졌다. 이제는 분식도 몇 개 먹으면 1,2만 원이 훌쩍 넘어버린다.


친구가 떡볶이집을 차린다고 했을 때 은근 반가웠는데 한 끼 식사 제대로 하면 3,4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치즈와 스파게티 같은 것들이 곁들여진 퓨전이라고 하는데 아직 가보지는 않았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곳은 흔하지 않다. 옛날 짜장, 옛날 떡볶이집은 이제 눈을 크게 뜨고 검색해야 하는 시대이다.


안중에서 차를 몰아 삼거리로 들어간다. 은행 골목에서 우회전하면 왼쪽 골목에 백종원도 다녀갔다는 만드기 골목이 있다. 골목을 살짝 치고 나온 붉은 천막 아래에 떡볶이와 튀김이 보인다. 옆문으로 들어가면 아직은 옛날 정취를 가진 홀에서 분식을 시킬 수 있다. 그나마 옛날 맛을 느낄 수 있어 가끔 애용한다.


먼저 들어가는 일행을 따라 들어갔다.

"문 닫고 오세요."

자리에 앉았더니 먼저 들어간 손님이 벌떡 일어나서 문을 닫고 자리에 앉는다.

"죄송합니다. 저에게 하신 말씀이군요."

"네. 괜찮아요"

첨 보는 손님과 계획에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저들은 뭘 시키는지 궁금해한다. 그래봐야 별거 없다. 떡볶이, 어묵, 꼬마김밥, 튀김, 순대. 별거 없다. 그 별거 없는 거 먹으러 온 거니까.


백종원 대표와 찍은 사진도 보인다. 백종원 대표가 나오던 프로그램을 보고 여기를 알았다. 잘 메모해 두었다가 안중을 지나갈 때 일부러 찾았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호떡으로도 유명했는데 사장님이 지금은 다른 일을 하시는지 못 본 지 오래됐다. 추억의 먹거리를 먹고 서둘러 일어난다. 계획에 없던 음식을 먹느라 30분을 허비했다.


가게를 나와 계산서를 옆 포장대에 가져다주니 적어도 20년은 여기서 일했을 것만 같은 아주머니가 큼지막한 계산기를 두드린다. 암산으로 해도 13,000원인데 그걸 계산기까지 두드리는 건 틀리면 안 되는 종업원이라서일까? 카드가 안될 것처럼 보이지만 카드 안 받으면 법에 걸리니 당연히 카드로 결제한다.


시대가 변해도 그때 그 느낌을 가져가고 싶은 건 왜일까? 아무리 현대적 건물에서 보기 좋게 나오는 것이라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건 내가 부여하는 의미의 차이인가 보다. 떡볶이를 보면 아주머니가 떠오르고 아버지가 생각난다. 친구들과 어울려 먹던 빨간색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지금은 보기 힘든 검은색 떡볶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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