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發 평등

한계비용이 0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by 이야기공간 낄낄

환호 속에 감춰진 진실

우리는 지금 LLM(거대언어모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명령어 몇 개면 글, 그림, 음악을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마법에 혼이 나갈 지경이다.

지금까지 새로운 문물들이 등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LLM이라는 마술상자는 그동안의 어떤 문물보다 획기적이며 일론머스크의 로켓보다도 매혹적이다.


신기한 요물 LLM. 하지만 향기에 취하기 전에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정확히 무엇에 환호하고 있는가?

급등하는 AI 관련 주식?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서비스? 아니면 단순히 신기함 그 자체?

젠슨 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이 소버린 AI를 강조했을 때, 깐부치킨이 동났을 때 최소한의 의심을 했어야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난리인지, 우리가 누구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는지 말이다.


AI 사업은 거대 비즈니스 차르들의 정교한 게임이다. 사람들을 현혹시킬 그럴듯한 시나리오, 투자를 정당화할 결과물, 끊임없이 유입되어야 하는 막대한 자본, 이 모든 것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역사를 보더라도 전기, 철도, 통신망이 등장했을 때 똑같은 열광과 투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다수의 몰락과 소수의 승리가 있었다. 거대 기업의 지배자들은 이 위험한 장단에 박자를 넣고 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박자에 춤추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지적 생산물의 종말

우리가 열광하는 AI 기술의 본질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한다. LLM의 등장은 ‘지적 생산물’의 제조 시간과 비용을 거의 0에 가깝게 만든다. AI로 인해 모든 생산에 한계비용이 낮아진다는 것이고,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이야기다.

효율성이 좋아졌다고 기뻐할 일인가? 효율성은 지적 생산물의 가격이 공산품 수준, 아니 그 이하로 추락시킨다. 비싼 노동력을 들여 공산품을 생산할 수 없듯 지적 생산물들, 이를테면 텍스트, 영상 콘텐츠, 광고… 등에 비싼 셈을 치를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지식 노동자라 불리던 우리 대부분은 사실 기계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루틴한 업무를 반복해 왔을 뿐이다. 세상에 진정한 창조력이 필요한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빚어내고, 죽은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독창적인 세계관을 창조하는 일은 극소수의 영역이다.


거품이 꺼지는 소리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지적 업무’는 어쩌면 거품이었다. 별다른 창조성 없이, 그저 기존의 텍스트와 코드를 조합하고 다듬는 일로 생산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아온 것은 사실 구조적으로 불공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LLM은 역설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기제다. 거품이 꺼지고, 모두가 공평하게 가치를 잃는 잔인한 평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평등은 달콤한 말이지만, 이 평등은 다르다. 모두가 바닥으로 수렴하는 평등 말이다. 올라갈 사다리가 이제 없다는 뜻이다. 지적 노동이 대우받지 못해서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설사 허위라고 해도 지적 노동이 함의하는 바는 올라갈 사다리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교수와 지식 노동자들이 모인 자리에 끼어서 저녁을 먹었다. 고급 인력이라 불리는 이들이었지만, ‘창조력’이라는 측면에서는 평범했다. 대화의 주제는 변변치 못했고, 재미조차 없었다. (물론 나 역시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인물이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점잖은 척, 있는 척, 가진 척. 모든 ‘척’의 척.

“시절 참 좋았습니다. 겨우 먹물 다루는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었으니.”


새로운 계급의 탄생

물론 의사, 변호사, 회계사처럼 ‘사(士)’ 자가 들어가는 자격증 소지자들은 잠시 숨을 돌릴지 모른다. 법적 권한은 여전히 희소하니까. 하지만 그조차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AI가 진단하고, 법률 검토를 하고, 세무 처리를 하는 시대에 필요한 전문가의 수는 극소수다. 희귀템은 더 희귀해지고, 나머지는 잉여가 된다.


이제 소수의 천재와 창조자들은 인간 노동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제품과 서비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것이다. 차별은 사라지겠지만, 그 자리에는 더 강력한 계급이 들어선다.


인간의 존엄은 어디로

우리가 오랜 투쟁 끝에 겨우 이뤄낸 ‘인권’이라는 가치는 경제적 가치의 몰락과 함께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인간이 기계보다 훨씬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높은 가치를 가진다’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과 ‘일’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 생산성과 무관하게,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남은 시간

과연 우리에게 AI에 열광할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아야 할 100가지 이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먼저다. 일상적인 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더라도 인간이 인간다워야 할 근거를 찾고,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적 노동을 과대 포장하여 계급을 나누고, 불평등을 미화했다. 이제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낙관적 환상 대신, 구체적인 답을 준비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사회 안전망은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생산성 외에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우리 이후의 시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환호하기 전에 깨어 있어야 한다. 파도에 휩쓸리기 전에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인간다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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