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BTS
나는 BTS의 공연을 최근에야 처음 봤다.
넷플릭스 생중계. 전 세계가 들썩이는 귀환의 현장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열광하지 않았다. 안쓰러움과 측은함이 교차했다. 팬이었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이 오히려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말 많은 장소 선택, 퍼포먼스의 단조로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소 선택이야 말로 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단순한 쇼케이스라면 단조로움은 오히려 전략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삶이 보이지 않았다. 30대 초반의 남자들이 10년 전 감수성을 재현하고 있었다. "여러분 즐기고 있나요?" "make some noise" 그 말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온도를 높이려는 시도였겠지만, 내 귀에는 매뉴얼처럼 들렸다. 파이어!를 남겨둔 회사원처럼 보였다.
피땀눈물로 정상에 오른 BTS에게, 서른이 넘어가기까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더 큰 무대? 토크쇼? 팬미팅?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경험과 서사. 사랑하고 실패하고 방황하고 돌아오는, 인간으로서의 굴곡. 그러나 음악산업은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년의 취약함이 상품이었으니, 어른이 되어도 소년이어야 한다. 성장은 브랜드를 훼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귀환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몸만 왔다.
그들은 시대의 아이콘이 되거나,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거나, 아니면 해체였어야 그들의 멋짐은 계속됐을 것이다.
완결된 서사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세 가지 모두 선택하지 못한 지금, 남은 것은 계속되는 브랜드다. 신화도 아니고, 새로운 무언가도 아니고, 그냥 운영되는 IP.
그런데 BTS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졸업이 목표다. 졸업 이후의 삶은 구체적이지 않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이유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서사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상장과 엑시트 때문인 것처럼.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성장과 기여 때문이 아니라 돈이 모이면 탈출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을 기다리는 것이다. 고통의 완성, 또는 종료. 버티다가 빠져나가는 것이 이 시대 가장 현실적인 인생 서사가 됐다.
이것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해한다. 구조가 그것을 강요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람들의 내면은 궁핍한 모습일 것이라 추측한다.
K-무엇이라 불리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세계가 열광하고, 지표는 오르고, 국가 브랜드는 상승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 앞에서 자꾸 공산품의 냄새를 맡는다. 정밀하게 설계되고 관리된 이용 편의적 서비스. 그러나 꿈이 없는 상태.
감동은 내부에서 터져나온다. 계획할 수 없고, 최적화할 수 없고, 복제할 수 없다. 그것은 누군가의 진짜 삶이 예술의 형식을 만날 때 발생하는 사고 같은 것이다. 그런데 K-무엇의 공산품화는 바로 그 우연과 날것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더 안전하게, 더 예측 가능하게, 더 팔리게.
그리고 여기서 하나의 불편한 예감이 찾아온다. 이 패턴을 가장 잘 수행하는 것은 결국 AI가 될 것이다. 공산품은 공산품답게,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정밀하게. 감동의 형식만 남은 자리에 인간이 피땀눈물을 쏟을 이유는 없어진다. 아이돌도, 드라마 작가도, 웹툰 작가도. 형식의 최적화라면 기계가 인간을 이긴다. 항상.
나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한국 문화를 특별히 응원해야 할 감정적 유대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냉소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오히려 문화를 더 공정하게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응원하지 않기 때문에 보인다. 열기에 편승하지 않기 때문에 느껴진다. 광화문에서 내가 측은함을 느낀 것은 내가 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K를 응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K이기 때문에 응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K-무엇의 공산품화는 결국 이 사회가 선택한 삶의 방식의 반영이다. 졸업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졸업만을 기다리는 문화를 만든다. 발전하고, 성장하고, 세계 무대에 서지만 아무도 설레며 과정을 즐기지 않는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러니다. 국가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라, 감동을 잃어버린 사회의 문제다. 화려한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 뒤, 엑시트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