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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차린 밥상 007

텃밭 강된장

by 반바

오 남매 육 남매도 흔했던 그 시절. 아들 하나 딸 하나 둔 외할머니는 동네에서도 '현대'로 통했다. 자식이 귀한 집이라 그랬을까. 가정방문이 있는 날이면 막걸리, 설탕물을 대접하는 동네 사람들과 달리 할머니는 옷을 곱게 차려입고 전날 읍에서 사 온 맥주를 꺼냈다. 환갑을 목전에 둔 엄마가 동창회에 가면 아직도 '미야 엄마'의 치맛바람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치맛바람으로 태풍을 일으키던 외할머니였기에 엄마가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째서 딸에게만은 '현대'가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엄마는 언제나 할머니에게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엄마의 인문계 진학을 막은 것도(이 일로 엄마는 삼일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다), 스무 살이 넘도록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던 엄마에게 외삼촌의 취업이 결정된 날 '네 오빠 밥해주러 가라' 며 처음으로 타지에 가는 걸 허락했던 것도, 백 포기가 넘는 김장을 나와 엄마가 다 해놓으면 당연한 듯 외삼촌에게 김치 가져가라 전화하던 것에도 불만이 없던 엄마가 처음으로 반기를 든 건 고작 쌀 때문이었다.


그날은 집에서 메주를 밟는 날이었다. 외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와 콩을 삶고 있으니 외삼촌 내외분과 친구들이 들어왔다. 기별도 없이 찾아온 아들의 방문에 할머니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엄격한 감독관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니 숨통이 트였다. 술도 한 잔 들어갔겠다 삼촌 친구들에게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 나이 먹도록 자식에게 양식을 대 주는 어미라, 늙었지만 여즉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이 쪼글쪼글한 입술 위로 넘쳐흘렀다.


"내가 이 나이 묵고, 꼬부랑 할마시지만 우리 아들 양식 대주제, 장가 간 큰 손자 식구 넷 양식 대주제, 이번에 자취하는 막내이 쌀 대주제. 내 짐 안 될라꼬 노력 많이 한데이. 절대로 자식들 의지 안 한다 아이요."


아이고 대단합니다 어르신 하고 감탄하는 어른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건 큰 손녀, 바로 나였다.


"할머니. 우리는? 우리는 마트에서 쌀 사 먹은 지 오래되었는데? 그리고 동생이랑 나는 타지에서 자취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왜 우리는 안 줘?"


할머니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소리쳤다.


"느그는 전부 출가외인아이가!"


소작 준다고 이제 쌀 사 먹는다고 하더니 능청스럽게도 거짓말을 했다. 병원에 모시고 가고, 간병을 하고, 퇴원 후 기력이 회복될 때까지 모신 건 누구였나? 게다가 정기검진까지 우리가 모시고 가는데! 치사하지만 할머니의 통신비까지 우리가 부담한다. 매주 일요일 저녁 전화해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나는 뭔가? 자식에게 의지 안 한다니. 우린 자식 아닌가? 순식간에 우리와 너희로 구분 지을 만큼 빈정이 팍 상해버렸다.


"아하 잘 알겠다. 할머니. 이때까지 그리 생각했다 이거제?"


모든 걸 잠자코 듣기만 하던 엄마는 이 날 이후 모든 것에서 완벽한 독립을 선언했다.


"이제 각자 하자."


백 포기 넘게 하던 김장을 절반으로 줄이니 이보다 수월할 수 없었다.(원래도 둘이서 하던 김장이었다.) 콩 한 말 삶아 밟고 치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발효의 미묘한 포인트를 잡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엄마와 나, 둘이서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콩을 쑤고 치대어 모양을 잡아 띄운 후 소금물을 붓고 장을 갈랐다. 첫 해는 된장에서 쓴 맛이 돌아 초조했고, 어떤 해는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띄우던 메주가 몽땅 상해버린 일도 있었다.


된장독립선언 5년 차. 드디어 맛있는 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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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를 살풋 두르고 된장 둘에 고추장 하나를 넣는다. 딸래미의 강된장은 텃밭에 무슨 재료가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금 이 시기는 마늘종이 흔해서 그것만 넣었다. 좌측 상단에는 감칠맛 재료다. 이 날은 새우가루를 넣었지만 어떤 날은 쇠고기를 넣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해물이 들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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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재료가 이렇게 풍성해진다. 모든 재료를 팬에 깔고 난 후 가스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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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정도 볶아준다. 채소에 된장 색이 입혀지면 이제 육수를 넣을 타이밍이다. 육수가 없으면 다시다나 혼다시를 넣는다. 깔끔한 맛이 당길 땐 액젓을 조금 넣거나 그 마저도 안 넣는다. 물로만 끓인 국물의 시원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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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이 먹고 싶으면 좀 많이 넣고, 빡빡하게 먹고 싶으면 좀 덜 넣는다. 몸은 뻣뻣하지만 요리할 땐 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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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두부와 고추를 넣는다. 집 된장이라 짜게 느껴지만 꿀을 한 찻숟가락정도 넣는다. 단맛은 안 느껴지는데 신기하게도 짠기는 사라지고 감칠맛이 올라간다.


외할머니로부터의 독립 이후, 우리는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다. 된장 간장은 말할 것도 없고 들깻가루, 고춧가루, 도토리묵, 청국장까지. 독립선언 전엔 모두 할머니를 통해 얻던 것이다. (우리가 농사를 지었어도 할머니에게 모두 드리고 배급을 받았다.) 손이 많이 가고 고되기도 하지만 자유로움이 훨씬 크다. 된장에 북어를 넣어보기도 하고, 김장김치 사이에 큼직하게 썬 무를 쿡쿡 박아두기도 한다. 그전까지는 할머니가 질색을 해서 못해보던 것들이다. 거기에 결과물까지 훌륭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밝은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된장만 독립한 게 아니라 엄마도 진짜 독립을 한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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