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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Feb 21. 2021

두 개의 몸

거꾸로 서서 하는 생각들


물구나무서기 연습은  몸의 좌우가 얼마나 다른지를 자주 발견하게 한다. 처음 손을 짚고 다리를 차올리는 연습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쪽 다리가 다른  다리에 비해서 훨씬 가볍고 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올라가서도 한쪽으로 기우뚱하는데 이때 어깨나 몸통이  약한 쪽으로 무너지기에 거의 항상 같은 쪽으로 무너지기 쉽다. 올라갔다가 무너지지 않고 다시 바닥으로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떨어지는 발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오른발잡이와 왼발잡이(혹은 양발잡이) 같은 우세한 다리와 발이 있는데, 우리는 특별히 의도하지 않는 이상  우세한 발을 무의식적으로 먼저 움직이기 때문에  쪽이 자동적으로 바닥을 먼저 짚는 발이 된다.


사실 손 발뿐만 아니라 눈도, 콧구멍도, 엉덩이나 골반도 모두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우세하게 발달한다. 이렇게 우세한 쪽은 감각이 더 예민하고, 운동의 측면에서도 더 정교하고 활발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가령, 눈과 같은 경우 양쪽 눈 중에 우세한 눈의 초점은 평소에 양쪽 눈을 모두 뜨고 있을 때의 초점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나의 우세 눈이 어느 쪽인지 알아볼 수도 있다. 두 눈을 뜨고 어떤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가 한쪽 눈을 가려보면, 내가 보고 있던 물체의 상이 맺히는 위치가 순간적으로 조금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계속 뜨고 있는 쪽이 우세 눈 쪽이면 이러한 초점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반면에, 우세 눈을 가려버리면 물체 상의 위치 이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물론 양쪽 차이가 크지 않아서 인지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 두 눈 사이의 편측의 정도가 크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 개의 ' 가지고 있다고   있다.* 오른쪽 몸과 왼쪽 . 근육과 골격, 장기  몸의 내부를 같이 생각하면 , . 장과 같은 장기를 제외하고는 양쪽 2개가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하물며 뇌도 좌뇌와 우뇌로 나뉘지 않던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리고 그저 ''로서 통합된 전체로서 감각했던 나의 몸인데,  몸을 오른쪽 몸과 왼쪽 몸으로 나누어 감각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오른 다리가 왼쪽보다 힘이 세다거나, 오른손이  정교한 움직임을   있다는  같이 명백한 차이들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차이들도 있다. 왼쪽 몸이 오른쪽보다  작게 쪼그라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왼쪽 다리가 오른 다리보다 길게 느껴진다거나, 머리가 왼쪽으로 살짝 돌아가 있다거나 하는 감각들은 내가 자주 감각하는 나의 양쪽 몸의 차이들이다.


제멋대로의 상상력이 발동되어 내 몸을 반으로 딱 나누어 오른쪽 몸은 오른손이, 왼쪽 몸은 왼손이 지지하며 각각 따로 물구나무를 서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하면 내 몸무게의 반절만 지탱하면 되니까, 두 손으로 몸 전체를 지지하는 것보다 더 수월할까? 아니면, 지지 기반이 오히려 더 줄어드는 데다, 대칭성이 사라지니까 오히려 균형 잡기에 더 어려울까? 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해 볼 수 없는 데다 과학적으로 힘의 역학을 계산해볼 능력도 안되는지라 답을 알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대단히 과학적인 추론을 하지 않더라도 균형의 측면에서만 보면, 대칭성이 높은 구조가 그렇지 않은 구조에 비해서 그리고 지지점이 많은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어쩌면 우리의 오른쪽 몸은 왼쪽 몸에 기대어, 왼쪽 몸은 오른쪽 몸에 기대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구나무서기처럼 지지 기반이 불안정한 균형 자세일수록 전신의 양쪽 균형을 조절하지 못하면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양쪽의 차이가 느껴지면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연습을 이어간다. 가령 오른쪽 다리보다 왼쪽 다리를 차올리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면 왼쪽 다리로 올라가는 연습의 비중을 늘려서 양쪽이 엇비슷하게 느껴지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양쪽을 맞추려는 시도 자체는 편측을 줄여주는 동시에 물구나무서기를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꼭 물구나무서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몸의 양쪽 사이 차이가 느껴지면 그 간극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양쪽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본능적인 욕구 같기도 하다. 대칭성은 중력장 안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몸의 좌우 균형을 맞추는 것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균형이 잘 맞는 몸이 나쁘다거나, 편측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그냥 무시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양쪽 몸이 차이가 있는 것을 크나큰 문제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어느 정도는 편측을 가지고 있고, 사실 편측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몸과 삶의 조건이다.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오른쪽 몸과 왼쪽 몸이 정확히 같지는 않았을 것이고, 누가 한쪽 손이나 발을 더 많이 쓰라고 훈련시키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우세한 쪽을 발달시킨다. 좌뇌와 우뇌 기능을 분화시키라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지만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이런 기능 분화 역시 스스로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쪽 몸 중에 한쪽이 더 우세하게 발달하는 현상은 몸의 부정렬과 그로 인한 통증 등의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자연적으로 몸의 한쪽을 더 많이 주도적으로 사용해 온 것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째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몸의 한쪽을 우세하게 사용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된 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손의 경우만 보아도, 어느 쪽이든 우세 손을 갖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것을 보면 좌우 대칭을 통한 균형이 무조건 더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조와 기능이 유사하지만, 그 와중에도 양쪽이 서로 다른 부분에서 특화되도록 발달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모든 면에서 '우세한' 쪽이 있나 싶기도 하다. 힘이나 정교함의 측면 모두에서 명백한 오른손잡이인 나도 왼손으로만 하는, 그래서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 정말 어색하게 느껴지는 동작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코를 후비는 동작 같은...(하하하하하... 쿨럭.)


이렇게 대칭적인 와중에도 서로 조금씩 다른 양쪽의 몸이 존재하는 것은 내가 주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다리가 , 골반도 , 콧구멍도 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의 몸의 양쪽이 다른 것은, 그로 인해 몸에 대한 감각이 더 다양하고 정교해지도록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대상을 감각하고 인지하고 나아가 이해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는 절대적인 정보가 필요하지만, 이런 이해를 더 정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대상과의 차이를 통한 상대적인 이해도 필요하다. 이처럼 나에게 있는 개의 몸은 차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준점이 되어주는 것 같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2개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균형의 측면에서도 유리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정보와 상대적인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축복은 아닐까.



*여기서 '개의 몸'은 얼마 전에 내가 교육을 받고 있는 알렉산더테크닉 학교를 한 달간 방문하신 로빈 시몬스(Robin Simmons) 알렉 마스터가 사용하신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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