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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Feb 14. 2021

'어려운' 자세에 대한 생각

거꾸로 서서 하는 생각들

물구나무서기에 대한 생각들을 끄적이면서 "물구나무서기가 어렵다", "힘든 자세다"와 같은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해왔지만, 사실 어떤 동작이나 자세가 '어렵다'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인 기준에 따른 이야기이다. 우리 각각의 몸은 얼굴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훨씬 다양하고 개별적이기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어려운 운동도, 모두에게 쉽기만 한 운동도 없다. 가령 A에게는 죽을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두 다리 벌려 찢기가, 넓은 골반을 타고난 데다 내전근(허벅지를 안으로 모으는 근육)을 발달시킬 필요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아온 B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수 있다. 또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서 순발력과 균형 감각이 발달한 C에게는 상대적으로 간단했던 머리서기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기만 하면 어지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D에게는 몇 년을 연습해도 도달할 수 없는 고지의 목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요가 자세들을 설명하며 '기본' 자세니, '중급' 혹은 '고급' 자세이니 구분을 해놓은 것도 그다지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런 구분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요가'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요가 자세에 그런 '급'은 도대체 누가 붙인 것이며, 그렇게 요가 자세들 사이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이유나 목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그런 구분이 그 자세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나누어 그 사람들 사이의 '급'을 결정하려는 것이라면, 더욱 반대이다. 과연 특정 자세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어떤 사람의 요가 수련자로서 가치나 수준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그러한가?


그렇지만 '어려운 자세'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어떤 때 우리가 '어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경우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려움'을 느꼈던 상황이나, 나와 운동하는 회원들이 어려움을 토로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세 가지 경우 정도를 떠올려보았다. 1. 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물리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어려움, 2. 익숙하지 않은 과제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 3. 과제를 하고는 있으나 그 수행이 매우 비효율적이어서 느끼는 어려움 혹은 애씀. 이렇게 종류를 나누고는 있지만, 아마도 이런 어려움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가장 주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물리적인 능력의 부족, 혹은 구조적인 어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입시 지옥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수학 문제를 푸는 상황을 빗대어 생각해보았다. 이제 막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사칙 연산을 배운 아이에게 미적분이나 통계 문제를 풀라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간혹 출몰하는 천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의 큰 틀이 되는 기본적 원리를 이해할만한 논리 및 사고 구조가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나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자세나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안정성과 가동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동작을 할 수 없거나, 무리하게 하다가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수학 문제야 문제가 안 풀리면 못 풀고 끝나지만, 몸은 안 되는 동작도 억지로 시도해볼 수는 있기에 약간 위험하다. 팔 굽혀 펴기 한 번도 제대로 하기 힘든 정도의 근력을 지닌 사람이 맨땅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려고 한다면, 다치지 않고 끝나는 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절대적인 능력치나 기본 구조가 미비한 문제라기보다는 기술적 숙련도가 부족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수학 문제를 푸는 상황을 빗대어 보자면, 문제의 기저에 깔린 핵심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거나 특정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발상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수학은 무조건 문제를 많이 풀어 보면 잘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 유효한 이야기일 것이다. 운동을 할 때도 요즘 내가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할 때 느끼는 어려움도 이런 경우에 가까운 것 같다. 올라가서 자세를 유지할 힘이나 유연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기보다는, 동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힘 조절이 잘 안되어 그대로 뒤로 넘어가거나, 혹은 뒤로 넘어가지 않게 조심스레 시도하다가 균형점에 이르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 마치 학창 시절 수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양의 수학 문제들을 풀었던 것처럼, (어마 무시한 개수의 문제를 자랑했던 '쎈'이라는 문제집을 아시나요?) 어느 정도는 반복하며 숙련도를 높이는 훈련이 유용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비효율적인 수행 때문에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물리적 능력이나 기술이 부족해서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고 어떻게든 과제를 하고는 있지만, 그 운동 시스템이 매우 비효율적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에서 경우의 수 문제를 풀면서, 모든 경우를 다 써서 그 개수를 세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껴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리라. 그 길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쉽게 푸는 방법을 모르거나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 운 좋게 시간이 남아서 하나씩 다 세어 보다가 간발의 실수로 틀리거나, 아예 못 풀어서 틀리거나, 아무튼 대부분 틀렸다. 물론 운동은, 약간 실수라도 틀리면 별 수 없이 빵점이 되는 수학 문제 같은 과제는 아니지만,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어쨌든 흔적을 남긴다. 같은 물구나무서기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사람과 온몸에 바짝 힘을 주어야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느끼는 운동 효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효율성의 문제를 조금 더 간단히 말하자면, 힘을 줄 데 잘 주고, 뺄 데 잘 뺄 줄 아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요가 아사나 중에 사바사나(savasana), 일명 송장 자세를 생각해보자. 이 자세는 그저 바닥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면' 되기에 많은 분들이 요가 자세 중에 가장 '쉬운/편한' 자세라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원들을 만나다 보면 바닥에 잘 눕지 못하거나 누워서도 잘 쉬지 못하는 분들을 본다. 내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배우는 김수연 선생님은(AT PnM 교육센터​​) 누운 자세를 너무 불편하게 느껴서 앉은 자세로만 수업을 하는 분과도 수업을 하신다고 한다. 이렇듯 가장 '쉬운' 눕는 자세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자세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이 자세가 많은 근력이나 유연성을 요구하기 때문도, 특정한 기술적 숙련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도 아니며, 그 자세나 동작을 하기 위한 필요한 시스템이 몸에서 가동되지 않기 때문에 겪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이 아주 신체, 정신적 긴장도가 높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겪는 특수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예 눕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의 회원을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레슨 회원들 역시 일상적으로 늘 교감 신경이 항진되어 있어서 긴장도는 높고, 그런 긴장을 놓는 법은 잘 모르기 때문에 수업을 시작하는 시점에는 바닥에 누워서도 충분히 이완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워서도 쉬지 못하고, 앉아서는 필요 이상의 긴장을 몸에 품고 있는 어려움 말이다. 눕기를 비롯하여 앉기, 서기, 걷기와 같은 '기본적인' 동작들은 대부분의 성인들이 '할 수 있고', '익숙한', 그야말로  너무나도 '쉽고 간단한' 동작들이지만 우리 각자가 일상의 이런 자세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혹은 얼마나 '어렵게'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 몸이 일상적인 동작들을 하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내 삶이 조금은 덜 피곤하고 덜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커버 이미지: Allan Mas 님의 사진,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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