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와 Y의 교차함수

메타실험

by zeon

사랑은 ‘확률적 우연’이다. ‘확률적’은 가능성의 크기를 말한다. 단편 소설 ‘봄밤’의 친구 결혼식, 일본 영화 ‘아사코’의 사진 전시회. 두 남녀를 이어주는 공간이 사랑의 확률이다. 공간이 사라지면, 수환과 영경의 지독한 사랑도, 바쿠와 아사코의 집요한 사랑도 없다. 나 또한 한국 여자를 만날 확률이 압도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을 결정짓는 건 언제나 ‘우연’이다. 돌이킬 수 없는 소설적 사건, 나의 세계가 너의 세계에 충돌한 결과인 것이다. 영경은 수환을 만나려 결혼식에 간 것도, 마찬가지로 아사코 역시 바쿠를 만나려 전시회를 간 것도 아니다. 그저 두 삶이 스치듯 마주쳤을 뿐이다. 확률은 계산할 수 있지만, 우연은 계산할 수 없다. 이 모순적인 교차, 바로 사랑이다.


가을이 지고 겨울이 내리던 2019년, 서초대로에서 S를 처음 만났다. 그해 나는 광주에서, 그녀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던 우리는, 수십만 명의 인파 속에서 마주쳤다. 단지 사회를 밝히는 작은 촛불이 되려 나갔을 뿐인데, 우연히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계획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사건이었다.


그녀는 시신경을 통과해 뇌세포에 잠시 머물다 심장에 내려앉았다. 심장이 내달리자, 겨울바람도 봄바람처럼 따사로웠다. 그러나 우연은 거기까지였다. ‘확률적 우연’은 결국 내가 가진 의지로 완성된다. 그녀에게 건넬 말이 필요했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그런 말이.


“핫, 핫팩… 드릴까요?”


아니, 핫팩이라니. 기껏 꺼낸 첫마디치곤 어설펐다. 놀란 건지, 설렌 건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동그란 두 눈. 핫팩이 아닌 따뜻한 내 손을 살며시 건넸다. 그녀는 ‘풉’ 하고 웃어 버렸다. 그 뒤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오스카 와일드라면 이런 사랑을 예술이라고 해석했을까. 수전 손택이라면 사랑의 과정 자체를 느끼라고 했을까. 분석이든 해석이든, 혹은 순수한 감상이든, 우리는 확률과 우연이 교차한 그곳에 둘만의 좌표를 찍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사랑은 우리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만남은 가슴으로, 이별은 머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