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 1부 - 나심 탈레브
나심 탈레브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만, 책을 읽은건 처음이다.
어떤 창업자는 나심 탈레브의 광팬이어서, 트윗까지 챙겨본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부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재밌게 읽었던 책이 '사피엔스'였는데,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논지를 적절한 비유와 한권의 책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며 이런게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리처드 도킨스도 마찬가지다.
철학이라는건 결국 세상을 보는 방식일텐데, 자신의 방식을 일관되게 한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다는건 그만큼 생각의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상한 사례만 엮은 별로인 책들 역시 많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건 좋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기저에 갖고 책을 읽었을 때, 저자가 제시한 Antifragile에 대한 정의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Antifragile이란 회복 탄력성과는 다른 것으로, 불확실성과 충격을 통해 오히려 성장으로 이끄는 힘이다.
그러니까, 최근 meme이었던 "오히려 좋아"가 Antifragile에 대한 적절한 번역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매우 불안정하다.
변수가 없는 삶은 큰 변수 앞에서 무너진다. 저자는 대기업 사원과 택시기사의 비유를 통해 이를 표현한다.
미시적 불안정성이 가득한 택시기사와 미시적 안정성이 큰 대기업 사원이 블랙 스완을 경험했을 때, 택시기사는 살아남지만 대기업 사원은 일어서지 못한다. (블랙스완이란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거시적 변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예측할 수 없으니 보통 리스크로 정의된다.)
Antifragile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꽤 복합적이지만 이 때는 '위기대처능력'이라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Fragile하게 만드는 모든 노력은 블랙 스완에서의 실패 가능성을 극도로 높힌다.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정의했던 것처럼 블랙스완이 발생하면 아주 열심히 해왔던,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던 혁신기업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여러가지를 읽다보면 비슷한 이야기들이 겹쳐보일 때 비로소 아주 아주 조금 깨닫는 면들이 있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데이터를 무시하라고 한다. Fragile을 위해 노력하는 데이터 분석이 사실은 블랙스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질테니까. 그렇다면, 블랙스완 전까지는 데이터 분석을 통한 미시적 최적화를 해나가야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미시적 최적화를 하다보면 거시적 관점의 변화인 블랙스완을 캐치하지 못하는 리스크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이언 체스키의 Founder Mode가 회사의 맥락을 파악하라고 했던 것은 미시적인 노력을 하라는 뜻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곱씹어 생각해보면 다른 의미 같다. 스티브 잡스는 거시적 흐름은 읽은 동시에 제품에 집중했다. 대표의 역할은 거시적 변화를 캐치하면서, 한번 결정된 거시적 변화에서는 최선을 다해 미시적 해결책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대표니까 거시적인 것만 봐야지도 의미없고(애초에 거시적인 이벤트는 잘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니까, 잘 판단하는게 훨씬 중요하다), 미시적인 것만 봐서도 안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미시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우리의 삶이 현재 관점에서는 결국 미시적인 사건들이니,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는 미시적 최적화일 수 밖에 없음) 거시적 관점을 견지해야한다는 의미로 정의하면 되겠다. Antifragile하게 행동하자.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주 좋아하는 책인 레이달리오의 원칙은 어떻게 보면 삶을 fragile하게 만드는 툴일텐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아직 9장까지 밖에 읽지 않아서 답을 못얻은 걸수도 있지만, 나름의 결론을 내 머리로 한번 생각해보자. 결국 원칙이라는 정의 안에 Antifragile을 포함해야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같은 것들 말이다.
어떤 것이 Fragile하다고 보인다면, 그것이 무너질 것에 배팅하는게 적절한 예측이라고 나심은 정의한다.
그게 블랙스완이니까.
항상 리스크가 온다면 견뎌낸다는 생각으로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왔는데, 사실 리스크는 견디는게 아니라 즐겨야한다는 사실이 Antifragile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어서 나심에게 감사하다. 그의 생각에 빚을 졌다.
멋진 사회적인 생각 역시 배울 수 있었는데, 사회에는 도전을 통해 실패한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 전체가 최적의 성공을 마주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 때 우리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존경'이라는 사실이다. 사회 역시 미시적 관점에서 안티프래질해야 거시적으로 프래질하게 나아가는데, 미시적 관점의 안티프래질은 도전, 실패, 그리고 배움이기 때문이다.
존경이 많은 사회가 되어야, 도전이 장려된다. 존경은 유일하게 도전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더 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안티프래질에 배팅하면서 사회를 프래질하게 만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