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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Oct 06. 2021

Little, City, Rest

: 내가 이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는 법

Play list    

융진 - 걷는마음

고갱 - Too Good For Me    


이진아 - 색칠놀이


위 노래들을 들으며 읽어주신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어느덧 유월의 끝자락. 높은 습도로 인한 꿉꿉한 때문인지, 무더운 공기 때문인지 마음에 무게가 실린다. 마음이 꽤 무겁다. 그 때문인지 나는 자주 악몽을 꾸고, 불면에 시달려 3시를 훌쩍 넘기어 잠에 들고 있다. 아무리 늦게 자도 8시 이전에 일어나며 대게는 7시에 일어나서 많이 자야 3시간 정도를 자는 듯싶다.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또 다행이기도 하고.


 잠을 잘 잔다는 건 어쩌면 마음이 편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해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으며, 나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잠에 드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했던 홍진경의 말처럼. 진정 그것이 행복이겠구나.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그 잠에서 깨어나 들뜬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쓸 것이다. 그 안온했던 밤을 잊지 않기 위해. 잘 간직하기 위해.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깊은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이 내겐 그저 꿈과 같은 이야기라 여겼는데 내가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노라고, 그 기쁜 마음을 활자에 담아 하얀 백사장 같은 종이 위에서 춤을 출 것이다. 이후에 또다시 불면이 찾아온다면 그날의 일기를 곱씹으며 다시 찾아올 안온함을 떠올리며 기억할 것이다.


 후텁지근한 기온, 드문드문 내리는 비, 맑고 청량한 하늘과 무채색 도시에 분홍색 꽃잎이 지고 돋아나는 녹음 가득한 풍경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 이른 아침부터 이 영화를 꺼내 틀었다. 찾아오는 계절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있듯이 이 영화가 내겐 여름의 빙수 같은 존재다. 기분 좋은 달달함이 입안을 감싸오고 사르르 녹아버려서 한 입 한 입 아껴 먹고 싶은 빙수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아껴보고 싶은 그런 영화. 여름에 빙수를 먹으면 속이 시원해지고 이 영화를 보면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한껏 받는다. 잘 포개놓았던 여름 옷들을 꺼내오는 것처럼 마음 한편에 두었던 영화를 여러모로 지쳐가는 여름에 꺼내어 본다.


 혼자 타지에 살지 않았던 날에 영화 속 혜원의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혜원의 친구 은숙이 내려온 이유를 물었을 때 '나 정말 배고파서 내려왔어' 라 말하고 허탈하게 웃는듯한 그 장면이 조금은 의아했다. 이후에 몇 해를 보내고 서울 어딘가에 홀로 살고 있는 지금, 그 말이 많이 와닿아서 '그래 그렇지'라고 담담히 공감을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대사가 이젠 조금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다는 것, 마냥 배를 곯아 본 적은 없지만 자주 배가 고팠다는 것. 이런 것들을 느끼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의아했던 장면을 공감하게 되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이전 보다 더 큰 위로를 받고 더 큰 따스함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내게 이런 따스함과 위안 주며 삶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영화를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의 골이 깊어졌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하여. 나는 휴식이란 것을 취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서울에 홀로 올라와 살게 된 시점부터 나는 휴식이란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나는 철저히 편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 고군분투했음을.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무작정 한강에 갔던 날들, 그럴 날들. 나는 열심히, 아주 열심히 편한 마음을 위해 노력했음을. 나름대로 나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작정이었다지만, 나는 어떤 것보다 열심히 나의 안온함을 위해 집을 나섰고, 아무 생각 없이 한강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했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북적이는 머릿속 엉켜버린 생각의 실 뭉텅이들을 연신 풀어대며 버거운 것들은 일렁이는 물 위로 던졌다는 것을. 제법 요란스럽게 많은 것들이 산산조각 나고 부서지는 날에는 쏟아지는 햇빛에 조각조각이 난 채로 물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윤슬을 보며 산산조각 난 나도 저리 빛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위안을 삼았다는 것을. 내가 듣고 싶어서 그날의 감정들이 스민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그 노래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어쩌면 나는 이 도시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휴식을 취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걷고, 보고, 들으며 어지러운 마음들을 흘려보냈던 나날들은 바삐 돌아가는 서울이란 이 도시에서 세상을 똑바로 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처럼 맛있는 밥을 차리고, 밭을 일구고, 오랜 친구들과 회포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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