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by 권병화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풍경이 있다. 길거리를 걸을 때, 지하철 안, 혹은 버스 안에서, 음식점 안에서. 사람들의 저마다의 손에 적당히 맞는 크기의 스마트폰들이 쥐어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조그만 기계를 바라보고 있는 풍경. 현대사회에서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가정에서 형성되어 바깥 세상과 유동성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가 그들이 걸어가고 서있는 순간 순간마다 유동성을 형성하는 현대사회가 되어버렸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겉으로 보기에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경중있게 보여준 영화다. 영화에서는 복지제도에 국한했지만, 이는 복지제도 뿐만이 아닌 우리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제도들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여 재사회화 되지 못한 특정 계층(노인 계층)에게 특히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쓰러져 직장을 한동안 나가지 못하게 되어 돈을 벌지 못하는 다니엘은 질병수당이 끊길 위기에 처하고 실업수당이라도 받기 위해 공공기관을 찾아갔지만 신청서를 살아온 평생동안 만져보지 못한 컴퓨터를 이용해야 신청이 가능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다니엘은 마우스를 움직이는 법 조차 모르고 겨우 다 작성했나 싶었더니 오류가 자꾸 떠서 다시 작성하라 한다. 컴퓨터가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신청서 작성 페이지들과 클릭 몇 번들이 다니엘에게는 책장을 하나 만드는 것보다도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40년간 목수로 성실하게 일해왔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더 도와주고 동료들에게 인정받으며,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옆에서 항상 보살펴주던 그가 세상과 소통하던 수단은 오직 라디오였다. 그의 집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런 그가 맞이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돌아가는 세상은 너무나도 낯설고 힘든 환경이었다. 그에게 미디어를 통한 외부세계와의 소통은 그다지 넓지 않은 그가 사는 지역 근처 정도의 범위밖에 되지 않았다. 영화는 이렇게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다니엘과 옆집 흑인 청년을 대조시켜 보여준다. 다니엘의 실업수당 신청서를 도와주며 인터넷을 통한 해외구입을 보여주면서 이를 보고 크게 놀라는 다니엘의 모습, 옆집 청년의 집에서 중국에 있는 사람과의 화상통화를 하면서 놀라는 모습을 함께 담아내는 장면들은 현대사회에서 노인 계층들이 디지털 미디어에, 기계들에 익숙하지 못하는 현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가지 더 흥미로웠던 장면은 나의 생각일 뿐인데, 다니엘에게 옆에서 신청서를 작성할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한명은 흑인 남성이고 한명은 여성이었다.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어쩌면 감독은 사회에서 차별받는 계층들이라고 볼 수 있는 흑인, 여성, 노인들 중에서도 노인들의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재사회화가 제일 떨어져있고 현대사회에서 이에 대한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계층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느꼈다.

다니엘은 끝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질병수당을 다시 받는 항고심까지 갈 수 있게 되었고 이길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지금까지의 그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려했다. 그럴 뻔 했다. 다니엘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는 손에 들어온 성취를 쟁취하지 못하고 그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다니엘은 내가 나임을,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것을 컴퓨터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증명할 수 없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고 유용하게 쓰이는 디지털 미디어들이 다니엘에게는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익숙치 않은 노인 계층들에게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불편하고 내가 나임을, 한 나라의 시민임을 나의 주권을 표현하지 못하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현대사회임을. 반성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들이 너무나도 익숙한 현대 세대들에게는 과거를 살았던 선대들을 위한 배려, 편의를 보장해주지 않고 절차와 제도에 얽메여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에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다니엘은 건물의 벽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면서 자신이 다니엘 블레이크임을, 내가 나임을 세상에 알렸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이 아닌, 그의 손길과 흔적이 남아있는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I Daniel B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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