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절친에서 오래 가는 절친으로 1

강요 않기

by 크느네
지수와 은우는 점심을 먹으러 근처 중국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잡고 메뉴 토론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 오랜만에 중국집 가니까 심장 뛴다. 난 짜장면에 탕수육은 무조건 시킬 거야. 근데 은우, 너 탕수육 소스 찍어 먹어? 부어 먹어?

난 찍어 먹는 거. 바삭한 게 좋거든.

내 그럴 줄 알았다. 예전에 우리 동생이 초밥 먹을 때마다 밥 쪽에 간장을 듬뿍 찍어서 엄청 짜게 먹더라. 그래서 내가 생선 쪽에 찍어 보라고 알려 줬더니, 그때부터 초밥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지. 이제는 은우 너 차례구나. 탕수육은 소스가 튀김에 촉촉하게 스며들어서 부드러워져야 진짜 맛있는 거야. 남은 인생 계속 손해 보기 싫으면 오늘 소스 붓자. 안 그러면 나 진짜 실망할지도 몰라.

실망할 일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초밥이랑 탕수육은 다르거든? 그냥 취향 차이로 두자. 응? 나 솔직히 지금 네 눈빛 좀 무서워.

난 네가 잘못된 길을 가는 걸 두고만 볼 수 없거든? 오늘만큼은 억지로라도 너를 부먹으로 바꾸고야 말겠어. 이 집 소스가 예술이란 말이야!

한마디만 할게. 난 네 아바타가 아니야.

아… 갑자기 슬슬 화가 나려고 하네. 내 진심을 몰라 주고.

난 네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취향이 서로 다른 게 이렇게 열 받을 일인가.

남이면 부먹이든 찍먹이든 상관없어. 근데 넌 나랑 가까운 사람이고, 지금 이건 우리 밥이 걸린 문제야. 특히 탕수육은 같이 먹는 음식이라서 그냥 취향 차이로 넘기기가 잘 안 돼. 가뜩이나 나는 중국 음식에 진심인 거 알잖아.

하긴, 내가 엄청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있는데 친구나 가족이 그 사람을 엄청 싫어하거나 막 비난하면, 그냥 취향 차이라고만 생각하긴 어렵지.

그치? 내 말이 그 말이야. 이제 우리 부먹으로 같은 편 되는 거야?

근데 난 싱겁게 먹는 편이라, 다른 음식도 소스를 거의 안 찍어. 당연히 들이붓는 건 안 좋아하고. 너 혹시 만두 먹을 때도 간장에 푹 담가 먹어?

으음… 생각해 보니 돈까스 먹을 때도 소스 범벅해서 먹긴 해. 아, 갑자기 좀 슬퍼지네. 내 입맛이 짠 거였나?

화 냈다가 슬펐다가, 나도 좀 혼란스럽다.

나 아무한테나 이런 모습 보이지 않아. 너니까 이러는 거야. 난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상대를 좀 막 대하게 되더라. 서로 생각 다르면 잘 안 받아들이고, 말도 감정 섞어서 툭툭 나오고… 나 밉지?

응.

???

아니, 그런데! 엄청 많이는 아니야. 사람은 서로 익숙해지면 어쩔 수 없이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나?

다행이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그럼 앞으로 계속 이래도 되지?

하아, 절친한 친구 사이가 단단하긴 해도 천하무적은 아니지. 자주 다투거나 한 번 크게 부딪히면 와장창 깨질 수도 있어.

그런 말을 내 앞에서 대놓고 하다니, 너무해.

밥 먹으러 가면서 엄청 진지한 이야기 하려는 건 아니야. 근데 친구 사이 다툼은 꽤 중요한 문제야. 특히 싸우고 난 뒤에 ‘기분’이 어떤지가 제일 중요해. 크게 싸워도 기분만 안 상하면 별일 아닌데, 작게 부딪혀도 기분이 많이 망가지면 오래 가거든. 뭐, 기분이 나빠져도 금방 잘 풀리면 또 모르겠지만.

너, 슬퍼서 눈물 날 때 ‘슬픔 그만!’ 한다고 바로 눈물이 멈춰?

아니지.

내 감정이나 기분은 내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특히 기분 나쁜 걸 금방 푸는 사람은 정말 거의 못 봤어.

휴대폰 음량 버튼처럼 사람 기분도 버튼을 눌러서 바로바로 바꿀 수 있으면 편할 텐데. 그러면 서로 싸울 일이 전혀 없을걸? 하지만 현실은 내 기분이든 상대 기분이든 조절하기가 진짜 어려우니까, 애초에 서로 기분을 망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해 보여.

그럼 상대 기분을 가장 나쁘게 하는 일이 뭔지 알고, 그걸 조심해야 하겠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심각한 건 아무래도 ‘강요’라고 생각해. 친구 사이에는 가끔 서로 이런저런 개인적인 부탁을 할 때가 있어.

친하면 그럴 수 있지.

처음에는 부탁하는 쪽이 ‘친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이 정도도 안 해 주면 친구 아니지’라는 당연한 권리로 착각할 때가 있어. 그때 부탁이 강요가 되는 거야.

음, 그러면 상대는 친구 부탁이라 거절하기는 어렵고, 강요처럼 느껴져서 기분은 상하고. 이래저래 괴롭겠네.

강요하는 쪽은 친구가 자기 말을 당연히 들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거절당하면 상대를 오히려 나쁜 친구로 몰 수도 있어.

가뜩이나 상대도 괴로운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나오면 더 열 받겠다. 그러면 아무리 절친이어도 사이가 깨질 수 있겠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적당히 친하면 그런 무리한 부탁을 안 해. 하지만 매우 가까운 친구라면 상대를 많이 의지하면서 무리한 요구도 하게 되겠지. 가족도 마찬가지잖아? 친구든 가족이든 많이 기댈수록 무심코 함부로 대하기 쉬워.

예전에 부모님께 연습장 노트를 하나 사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해서 꽤 실망한 적이 있어. 그 정도는 당연하게 들어 주실 줄 알았거든. 근데 생각해 보니까, 부모님이 나한테 이미 용돈을 충분히 주셔서 그냥 내가 사면 되는 거였어. 내가 많이 의지했더니 괜히 아무 잘못 없는 부모님한테 화를 내고 있더라고.

뭐, 나도 방금 그랬지. 네가 찍먹이어도 내가 부먹이면 당연히 나한테 맞춰 줄 거라 생각했어.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상대가 내 부탁 들어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내 생각도 그래. 그러려면 서로 의견이 같거나 상대가 내 부탁 들어주는 걸 ‘그럴 줄 알았어’가 아니라 ‘우리 의외로 서로 잘 맞네’, ‘내 부탁을 들어주니 신기하네’라고 생각해야 좋을 거 같아.

그거 좋네. 만약 은우 네가 나랑 같은 부먹이라고 대답했으면, 나는 ‘역시 예상대로야’가 아니라 ‘나랑 취향이 같다고? 희한하네’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서로 생각이 같은 게 흔한 일이 아닌, 기쁜 일이 되는 거지.

그러면 반대로 내가 찍먹이라고 했으면?

그럼 기쁜 일이 아닌, 흔한 일이 될 뿐이겠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 화낼 필요도 없을 거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먹겠다는 흔한 일을 난 왜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봐 봐, 내가 찍먹이라고 같은 대답을 해도 아까랑 지금 네 반응이 아예 다르잖아.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불필요한 다툼이 확 줄어들잖아.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좋은 점도 많아지지만, 굳이 안 싸워도 되는 일로 다투는 때도 훨씬 늘어나는 거 같아. 남자든 여자든, 상대에게 많이 기대는 사람일수록 이런 점은 특히 더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근데 절친 사이에 항상 ‘이건 당연한 거 아니야’ 생각하면서 계속 조심하고 지내는 건,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너무 피곤할 거 같아.

당연히 그러면서 사는 건 불가능하지. 그나마 절친끼리 서로 의견이 같을 때는 “좋아”, 내 부탁을 들어줄 때만큼은 “고마워” 같은 표현을 최대한 자주 자주 쓰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야.

친구끼리는 고맙다는 말 안 해도 된다던데?

서로 멋쩍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는 있지. 근데 그 말은 부탁을 들어준 쪽만 할 수 있는 거야. 부탁했던 쪽이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오히려 말로만 고맙다고 하기보다 작은 선물이나 밥 한 번 사는 식으로 성의를 보여 주는 게 더 상식이지.

맞아. 그건 직장이든 집이든 어디서나 똑같아.

탕수육 시켜서 음식 나오면 각자 앞접시에 덜어서 자기 스타일대로 먹자. 난 소스 조금만 가져갈 테니까, 넌 마음껏 부어 먹어.

뭐야, 처음부터 그랬으면 됐잖아.

네가 아까 내 말 들을 틈을 안 줬잖아. 얼른 들어가자, 배고파.



아는 친구 사이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적어서 생각이 달라도 내 부탁을 들어 주지 않아도 그냥 넘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절친 사이는 기대가 커서, 작은 생각의 차이나 사소한 부탁을 거절당해도 큰 서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친구일 때는 기분 나쁘지 않을 일들이 절친일 때는 기분 상하는 일이 되면서 괜한 다툼이 자꾸 늘어납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훨씬 좋듯이, 친구와 다투고 나서 화해하기보다 애초에 다툼을 피하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매사에 ‘당연하다’는 생각을 자꾸 버리고, ‘고맙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를 꾸준히 채워야 합니다.

절친한 친구 사이는 서로 더 잘해 주려고 애쓰기보다, 다투는 일을 줄이기만 해도 좋은 관계를 충분히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강요가 아닌 고마움을 주고받는 일은 오래 가는 절친 사이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일도 필요합니다. 또 무엇을 주고받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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