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시작하라는 MIT, 큰 시장만 본다는 VC... 누가 맞을까?
"시장 크기가 너무 작네요." 투자 미팅에서 멘털이 나가는 말 1순위입니다.
그런데 MIT 같은 유명 창업 강좌에서는 이렇게 말하죠. "시장을 가능한 한 잘게 쪼개세요." 피터 틸도 『제로 투 원』에서 "큰 시장에서 경쟁하지 말고 작은 시장을 독점하라"라고 했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한쪽에서는 작게 시작하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큰 시장 아니면 관심 없다고 하고...
창업교육에서 말하는 '작은 시장'은 영원히 거기 머물라는 뜻이 아니에요. "당장 이길 수 있는 시장에서 시작해"라는 의미죠. 고객이 명확하고, 그들의 문제를 빠르게 파악해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곳 말이에요. 왜냐면 작은 시장일수록 고객이 누군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예를 들면 "20대 여성 전체"가 아니라 "서울 강남에서 일하는 25-29세 여성 중에 점심시간에 혼밥 하는 사람들"과 같이 구체적으로 좁히는 거예요.
많은 창업자들이 VC 말을 듣고 처음부터 큰 시장을 겨냥해요.
'체중감량을 위한 다이어트 앱'을 만든다고 해봅시다. 그럼 이런 일이 벌어져요:
- 20대 여성: "탄수화물 빼고 싶어요"
- 40대 남성: "근육은 키우고 뱃살은 빼고 싶어요"
- 50대 여성: "갱년기 이후 체중관리가..."
- 30대 직장인: "바쁜데 간단한 거 없어요?"
- 10대 학생: "부모님이 허락해 줄까요?"
보세요. 각자 원하는 게 완전히 달라요. 하나의 제품으로 모두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럼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앱이 돼요. 그리고 그런 앱은... 아무도 쓰지 않죠.
"강남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여성 중 점심시간 혼밥 다이어터"로 좁혀봅시다. 그럼 이런 기능들을 만들 수 있어요:
회사 근처 식당 칼로리 낮은 메뉴 추천
점심시간 10분 운동 영상
오후 간식 가이드
강남 샐러드 맛집 지도
완전 그들만을 위한 서비스가 되는 거죠. 적은 돈으로 "어? 이거 완전 내가 원하던 거잖아"라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어요.
그리고 작은 시장에서 1등 하면 엄청난 레퍼런스가 생겨요. 예를 들어 "강남 직장인 여성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다이어트 앱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면 강북 20대 여성, 30대 여성으로 확장할 때 정말 다르게 받아들여지죠.
그럼 VC들이 말하는 큰 시장은 뭔데요? VC가 말하는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은 현재시장의 규모만이 아니라 앞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전체시장의 크기를 뜻해요. VC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 시장이 10조짜리네. 1%만 먹어도... 오! 투자금 회수 되겠는데”
그럼 스타트업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은 강남 혼밥 여성만 하지만, 내년 말에는 전국으로, 3년 후엔 해외로 나갈 계획이에요."
VC는 작은 시장에서 시작하는 걸 싫어하지 않아요. 정말 싫어하는 건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서 작은 시장에서 끝나는 팀"이에요. MIT가 작은 시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거기서 고객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고 트랙션이라 불리는 초기 성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VC는 그 성과를 보고 물어봐요.
"좋아요, 이제 이걸 어떻게 100배로 키울 건가요?"
- 당근마켓: 판교 중고거래 → 전국 동네 커뮤니티
- 배달의 민족: 강남일대 전단지 수집 → 전국 모든 음식배달
- 직방: 서울 원룸 정보 → 전국 모든 부동산
심지어 네이버도 처음엔 검색만 하던 사이 트였잖아요. 지금은 쇼핑, 웹툰, 클라우드까지 없는 게 없지만요. 이렇게 다들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워온 거예요.
- 스타트업: 일단 작게 시작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곳에서)
- VC: 그래서 나중에 얼마나 크게 만들 건데?
작게 시작하는 건 크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에요.
작게 시작하되, 크게 생각하자.
투자는 꿈 얘기가 아니라 작게라도 증명된 현실에 베팅하는 게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