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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록스가 3조원 기술을 공짜로 준 이유

잡스가 훔치고, 게이츠가 또 훔쳤다

by 불편함사냥꾼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이 이렇게 말했어요.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세상이 당신에게 올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복제품이 줄줄이 따라온다." 그리고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건 원조가 아닌 복제품인 경우가 많아요. 믿기지 않으신다고요? 실제 사례를 보여드릴게요.


세상에서 가장 앞선 컴퓨터의 실패

1973년, 제록스가 놀라운 걸 만들었어요. 세로형 화면에 마우스, 윈도우, 네트워크까지...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모든 게 들어있었죠. 이름은 '알토(Alto)'. 당시로는 완전히 미래에서 온 기술이었죠.


그런데 가격이 무려 3천만 원. 게다가 제록스는 이 제품을 누구에게 어떻게 팔아야 할지도 몰랐어요. 결과는?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 하지만 이 기술의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잡스는 보고, 가져갔다

알토 컴퓨터를 눈여겨본 한 청년이 있었어요. 스티브 잡스. 그는 직감했죠. “이건 미래다.” 알토를 개발한 제록스 연구소를 찾아갔어요. 당연히 문전박대죠. 그렇다고 포기할 잡스인가요? 우회로를 찾았어요. 본사 임원을 꼬드겨 개발자를 만나고는 제록스의 기술을 통째로 파악했어요.


1984년, 애플의 '매킨토시'가 세상에 나왔어요. 제록스 컴퓨터의 기능을 대부분 가져왔지만 가격은 15분의 1. 애플은 컴퓨터회사쟎아요.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어요. 결과는 당연히... 대박! 거장 리들리 스콧이 만든 전설적인 광고와 함께 매킨토시는 컴퓨터 역사의 아이콘이 되었죠. 그리고 잡스는 다음 문장으로 그 정당성을 말했어요.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그럼 잡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 걸까요? ㄴㄴ.


그럼 진짜 승자는?

매킨토시의 성공을 지켜본 또 다른 인물이 있었어요. 빌 게이츠. 가만히 있을 게이츠도 아니지요. 매킨토시의 UI를 베낀 '윈도우'를 만들어서 전 세계 모든 PC에 깔아버렸어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OS는 애플 빼고 거의 다 들어가 있었거든요. 이 독점력을 이용해서 윈도우를 확산시킨 거죠.


잡스는 분노했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 걸 훔쳤다!” 게이츠가 차분하게 되받아쳤죠. “애플도 제록스에서 가져온 겁니다.”


결국 가장 많은 돈을 번 건? 제록스도, 애플도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였습니다.


20년 소송, 그리고 무너진 인생

이건 기업들 이야기만이 아니에요. 모방의 피해는 개인 발명가에게 더 참혹해요. 간헐적 와이퍼 아시죠? 비 오는 날 와이퍼가 깜빡깜빡 움직이는 거. 이걸 발명한 로버트 컨즈라는 교수가 있었어요.


포드사에게 기술을 보여줬고, 계약될 줄 알았죠. 그런데 포드가 뭘 했는지 아세요? 계약할 것처럼 하더니 돌연 "관심 없어요" 하고는 몰래 자기들 차에 달아버렸어요.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금세 따라 했고 간헐적 와이퍼는 순식간에 업계 표준이 되었죠.


로버트는 20년간 소송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 커리어, 삶 모두 무너졌어요.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Flash of Genius>. 기술은 있었지만, 지킬 수는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2023년, 우리나라에서도...

"설마 요즘에도 이런 일이?" 2023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어났어요. 알고케어 vs 롯데헬스케어. 알고케어는 AI기반 영양제 디스펜서를 만든 스타트업이에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에서 3년 연속 혁신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제품이었죠.


롯데헬스케어와 투자 협력 논의를 진행했지만 최종적으로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 롯데헬스케어가 유사한 제품 '필키'를 CES 2023에서 발표했죠. 알고케어 측은 아이디어 도용 의혹을 제기했고 롯데 측은 이미 구상하고 있던 자체 사업이라고 반박했어요.


결국 정부 중재로 롯데가 사업에서 철수하였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확실한 건, 이런 애매한 상황 자체가 위험하다는 거예요.


왜 모방자가 더 유리할까?

이상하죠? 혁신한 사람보다 베낀 사람이 더 성공하는 게. 하지만 이유가 있어요.

1. 시행착오 비용 제로: 원조가 이미 실험해 줬으니까요.

2. 시장 검증 완료: 팔릴지 안 팔릴지 이미 확인됐죠.

3. 기존 인프라 활용: 유통망, 브랜드 파워 등을 그대로 써요.

4. 법적 사각지대: 완전히 똑같이 만들지만 않으면 OK.

그래서 역사상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혁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잔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모방으로부터 지키는 전략을 세워야 해요.


1. 법적 보호막 구축

특허: 핵심 기술은 반드시 특허 출원

영업비밀: 코카콜라처럼 130년간 레시피 보호

NDA: 기술 공개 전 철저한 비밀유지계약

2. 복잡성으로 진입장벽 만들기

엔비디아 CUDA처럼 따라 하기 어려운 생태계 구축

단순한 제품이 아닌 플랫폼으로 발전

3. 스피드로 따돌리기

인텔이 PC시장을 선도할 때처럼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

모방자가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혁신

4. 고객 락인(Lock-in) 전략

구독/멤버십 모델로 장기계약

데이터 축적으로 개인화 서비스

5. 전략적 정보 관리

핵심 기술은 절대 공개하지 않기

투자 미팅에서도 최소한의 정보만


혁신은 전쟁이다

혁신은 창조만이 아닙니다. 전쟁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끝이 아니에요. 그 순간부터 지키는 전쟁이 시작되는 거죠.


제록스는 혁신했지만 지키지 못했고, 애플은 발전시켰지만 독점하지 못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지키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승자는 가장 혁신적인 자가 아니라 가장 전략적인 자였습니다.


마지막 질문

혹시 지금, 당신도 멋진 아이디어나 기술을 만들고 있나요?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꼭 물어보세요. “이걸 누가 먼저 흉내 낸다면, 나는 그걸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에머슨의 말은 반쯤만 맞았습니다.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세상이 오는 게 아니라, 복제품이 먼저 옵니다. 하지만 이 현실을 알고 미리 준비한다면? 당신이 진짜 승자가 될 수 있어요. 혁신은 시작일 뿐, 진짜 승부는 그다음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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