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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는 왜 100배를 원할까

10배 성장으론 부족하다는 투자자의 속사정

by 불편함사냥꾼

"저희 기술로 10배 성장은 문제없을 것 같아요." 자신 있게 말하는 창업자. 하지만 투자자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젓는다. "10배 가지고는 안 돼요. 우린 100배가 필요합니다." 글로벌 VC 프라이머 사제의 권오상대표가 한 말이다*


허세일까? 탐욕일까? 처음 들으면 '이 사람들 완전 미쳤나?' 싶다. 구글도 10배 성장하면 감사한데, 이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지? 그 말 뒤엔 벤처캐피털(VC)의 냉정한 수학이 숨어 있다.


스타트업의 잔혹한 현실

일단 팩트부터 깔고 가자. 스타트업 10개 중 9개는 망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렇다.

3년 안에 70% 사망

5년 안에 90% 증발

10년 안에 95% 흔적도 없이 사라짐

뉴스에서 보이는 "성공한 스타트업들"? 그들은 극소수의 생존자일 뿐이다. 나머지 99%는 조용히 사라져서 우리가 모를 뿐. 그럼 VC는 어떻게 수익을 낼까?


VC의 잔혹한 수학 게임

VC가 부자인 줄 안다면 그건 완전 착각이다. 이들은 ‘남의 돈’을 운용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부자들, 다른 말로 쩐주(영어로 LP)한테 돈 받아서 불려주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실제 계산해 보자. 한 VC가 20억 펀드를 만들었다고 치자. 펀드는 돈 묶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20개 스타트업에 1억씩 투자했다.


그런데 그중 딱 1개만 성공해서 10배 수익을 냈다면?

회수금: 1억 × 10배 = 10억

전체 투자금 20억에서 10억만 회수해서 50% 손실

반대로, 성공한 1개 기업이 100배 성장했다면?

회수금: 1억 × 100배 = 100억

전체 투자금 20억에서 100억을 회수해서 5배 수익

보이지? 10배로는 망하는 거고, 100배가 되어야 살아남는 것을. VC가 바라는 건 "많이"가 아니라 "매우 많이"다. 이건 탐욕이 아니라 생존 본능인 거다.


시간도 적이다 - 7년의 저주

"그럼 천천히 기다리면 되잖아?" 안 된다. 시간이 없다. VC 펀드는 보통 7-10년 만에 무조건 청산해야 한다. 그 안에 성과 못 내면?

(1) 돈을 댄 쩐주(LP)들이 "이 무능한 놈들" 하면서 돈 안 맡김

(2) 그럼 VC 회사 망하고

(3) 다른 직장 찾아봐야 함...


그래서 이들은 J커브를 찾아 헤맨다. 처음엔 마이너스여도 어느 순간 쭉~ 치솟는 그런 스타트업 말이야. 소상공인처럼 "매장 하나 내고 차근차근 늘려가요~"식의 창업은 절대 투자대상이 되지 못한다. 속도가 생명이거든.


구글, 모두가 외면했던 이름

공룡 기업 구글도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 두 박사과정생은 자기들이 만든 검색엔진을 팔려고 했다. 그냥 팔고 박사나 계속할 생각이었다. 근데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 헐!

야후: "검색? 그거 돈 안 돼"

라이코스: "우리도 검색 있는데?"

다른 회사들: "ㄴㄴ"

결국 직접 하기로 창업했는데, 이번엔 투자자가 없었다. "검색으로 돈 벌기? 말이 안 돼!"


그때 천사가 나타났다. 앤디 백톨샤임이라는 엔젤투자자. 그가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딱 10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얘기 말고, 그냥 수표 써줄게." 10만 달러(1억 2천만 원) 수표 한 장으로 구글이 시작됐다. 그 결과? 수천 배 수익.


이게 바로 VC들이 꿈꾸는 그 '딱 한 번의 홈런'이다. 하나의 대성공이 나머지 아홉 개 실패를 덮는 구조. 그것이 VC의 투자 현실이다.


당신의 아이템, 진짜 100배 될까?

자, 이제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당신의 창업 아이템:

정말 100배 성장 가능해?

10년 안에 엑싯(매각/상장) 할 수 있어?

VC가 원하는 속도로 성장할 수 있어?

만약 답이 "글쎄..." 라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신호다.


VC가 말하는 ‘100배’는 사실 탐욕이 아니라, 모든 실패를 감안한 단 한 번의 홈런이 필요한 구조적 생존 전략일 뿐이다. 구글, 에어비앤비, 배달의 민족 같은 스타트업이 그 홈런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홈런타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홈런이 아닌 방식으로, 꾸준히 안타를 쌓는 것도 방법이다. 부트스트래핑(매출로 자체 성장), 노코드 실험, 정부 지원사업 활용, 작은 매출로 살아남기도 충분히 의미 있는 방식이다.


꿈을 키우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다만, 그 꿈이 어떤 돈으로, 어떤 속도로 자라야 하는지는 처음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간 낭비 안 하고 진짜 맞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VC는 왜 100배를 원하느냐고?

그들에게 10배는 실패일 수 있으니까.



P.S. VC 만나러 가기 전에 이 글 한 번 더 읽어보길. 그들이 왜 그렇게 까칠한지 이해하게 될 거임.

*참고: 권오상저, 『혁신의 후원자 벤처캐피털』, 클라우드나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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