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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영 Jan 14. 2023

한국은 끝없이 불행해지는 과부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니까

「밀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밀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 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제목을 나란히 둔 순간부터 '불쌍한 여자'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맞다. 이 영화는 불쌍하고 불쌍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주인공에게 부여되는 불행은 극의 마지막에는 극복되기 마련인데 이 두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극복은 커녕 충분히 불쌍한 상태였던 초반보다 더 악화된 상태로 끝맺으며 희망 또한 보여주지 않는다. 


  「밀양」의 신애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은  모두 영화가 시작되는 최초 상태에 결핍이 존재한다. 신애의 경우 남편이 바람을 피워 자신과 아이를 두고 떠난 데서 오는 정서적인 결핍, 수남의 경우 말그대로 '돈이 없는' 경제적인 결핍.  이 결핍은 두번째 수난이 초래할 '훼손'으로 이어진다. 만약 신애에게 남편이 있었다면, 밀양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아들을 홀로 두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남편의 부재에서 오는 마음 속의 공허를 채우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수남에게도 돈이 있었다면 정확히는 수남과 그 남편에게 돈이 있었다면 그가 수남을 홀로 두는 선택을 했을까? 이런 점에서 결핍은 훼손으로 이어진다. 


 신애의 '훼손'은 하나뿐인 자식을 잃는 것이고 수남의 '훼손'은 남편의 자살기도이다. 신애가 밀양에 온 것은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보란듯이 아이와 함께 새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필수 전제인 자식은 유괴 후 살해되어 강가에 유기된 채 발견된다. 결국 그녀가 밀양에 온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수남 역시도 그녀가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고 하루가 바쁘게 살아도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이유는 남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자신을 대신하여 스스로를 혹사하는 수남으로 인해 자살을 기도한다. 즉, 결핍을 메우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결핍이 초래하는 훼손으로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 신애와 수남은 거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야만 한다. 더이상 지키고자 하는 것,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 하나 남지 않았음에도. 


 그녀들은 홀로 세상에 남겨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 다른 수단을 택한다. 신애의 경우에는 '종교'이고 수남의 경우에는 '살인' 이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수단도 좌절된다. 신애는 종교를 통해서 그날 아이를 홀로 둔 죄책감의 해소, 영혼의 구원을 얻고자 하고 수남은 불가피한 살인을 통해 재개발이 진행되도록 만든다.


 여기서 재밌는 건 수남은 부녀회장을 복어독으로 살해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용서해주세요." 비슷한 결로 신애 역시 아들을 죽인 살인범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이미 용서해주셨습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제발 용서하라며 신을 협박하는 듯한 수남과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머리를 숙이며 웃음짓는 살인범의 모습은 도저히 속죄를 바라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남과 신애의 가장 큰 공통점은 현실 부정과 타자 배척이다. 

의사 : 이거요.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련증세에요. 자꾸 이런걸로 희망가지시면 보호자님만 더 힘들어집니다.
수남 : 저 좀 있으면 병원비 다 낼거에요. 진짜에요 조금만 있으면 다 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솔직히 이야기해주세요. 
의사 : 의사가요 환자한테 거짓말하잖아요? 병원에서 짤리거든요? 이거 진짜 경련이라니까요.
수남 : 좋아진 것 맞죠.
의사 :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경련 일으킨거라고.
수남 : 좋아진 것 맞죠.
의사 : 아닙니다.
수남 : 저렇게 발을 움직이는데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신애 : 나도 그 인간 보고싶다
신애의 동생 : 나 솔직히 누나 이해 못하겠어. 매형이 왜 그렇게 보고싶은데? 매형 고향이라고 밀양까지 내려와서 살건 또 뭐냐? 매형.. 누나 배신하고 딴 여자랑 바람났었잖아
신애 : 아냐 임마. 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거야. 준이 아빠는 준이랑 나만 사랑했어.
신애의 동생 :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인정할건 좀 인정해.
신애 : 됐어, 그런 이야기 할거면 서울로 가. 난 서울이 싫어. 여기가 좋아. 여기가 왜 좋은지 아니?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여기서 새로 시작할거야.

- 밀양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한다. 신애의 곁에는 그를 짝사랑하는 남자도 있고 수남에게는 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으니. 하지만 허락하지 않는다.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채 상황이 그저 지나가기를 바라는 게 유일한 해결방법이며 그것이 그들을 끝없는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경찰들을 '어쩌다가' 죽이는 장면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형사들의 피로 범벅이 된 좁디좁은 방 안에서 '또 저질러버렸어, 이제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울음을 애써 참고 어떻게 시체들을 처리할지 궁리하던 남수는 이내 칼을 던져버리곤 다시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는 장면. 과장 조금 더 보태서 내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한국 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달까.


그녀들에게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남의 남편은 아직 살아있고 신애는 밀양을 사랑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러니 언젠간 수남은 깨어난 남편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신애는 언젠가 그 증오스러운 마을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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