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파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피부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려고 들른 몰타 공항에서부터,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카페도 아니고, 온갖 사람들이 이렇게 붐비는 공항에서까지 이토록 자유로운 건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한국인만 가지는 걱정이었다. 비행기 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온통 자율이었다. 파리에 머무는 내내, 마스크는 얼굴이나 손목 대신, 백팩 안에만 있었다. 얼굴에 닿는 실내 공기가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오버스럽게 보일 테지만, 오히려 귀국해서 적응이 힘들었다. 호흡의 자유를 내려놓으며 시스템에 적응했던 기나긴 2년 반의 인내가 고작 10일의 자유로 무너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최장기간 내려놓았던 호흡의 자유를 다시금 100% 누려본 경험은 금세 익숙해질 만큼 인간 아니 동물로서 느낄 수 있는 너무 달콤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코로나19 사망률은 0.5%로 0.1%인 한국보다 5배가 높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호흡의 자유를 빠르게 되찾았다. 이들에게 팬데믹의 공포는 개인의 자유보다 한참 후순위인 것 같다. 반면, 우리나라는 실외 마스크 허용 후 2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더 많다.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로 이뤄낸 낮은 사망률.
내가 속한 동북아시아에서의 자유와 유럽에서의 자유, 같은 '자유'라는 단어로 묶기에는 꽤나 편차가 큰 것 같다.
방종의 공포
'호스텔' 등의 공포영화로 다져진 치안 공포와 같이 간 친구가 파리는 몽마르트르 언덕(북쪽)을 조심해야 한다고 겁을 준 것을 되새겼어야 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카피라이트에 매료된 여행자는 두려움을 망각한 채 그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여행지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려 했다.
인적이 많더라도 파리의 밤거리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면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사람을 쉽게 믿고, 머리가 꽃밭인 어떤 철없는 여행자(나)가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경계 없이 대했지만, 거짓말을 계속 늘어놓는 낯선 무슬림을 더 따라갔다면 영 좋지 않은 상황을 겪을 뻔했다고 한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여행이지만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파리 북역 인근에 짐을 맡기기 위해 친구가 경고했던 북쪽을 갔다. 친구가 경고했던 몽마르트르 언덕보다는 남쪽이고 세계 20위권에 드는 규모의 역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다. 북역 입구를 나가는 순간 화장실에서조차 경험하지 못했던 초월적인 지린내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출입문마다 무리 지어 서있는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트립어드바이저의 후기에 의하면, 그들은 여행객의 비싼 소지품을 훔쳐가려고 역 입구에서 상시 대기 중이라고 한다.
무섭다. 비싼 물건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똘레랑스의 나라'라는 고전적인 이미지에 어울리게, 난민 수용에도 인도주의적으로 관대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썩 좋지 못하다. 서울역과 비교해보면 파리 북역의 치안은 자유를 넘어선 방종의 영역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 되었고, 지난 10년간 26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무차별 테러는 마치 프랑스인들의 똘레랑스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테러 당시에도 인종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출처: 오마이뉴스
똘레랑스의 내구성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이민자에 의한 몇 차례의 사고가 이민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전개되지 않았던 프랑스 사회의 단단한 똘레랑스에서 자유에 대한 오랜 고찰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지 않는 것은 대단히 성숙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나를 포함하여 이처럼 관대할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혀 다른 '자유'를 경험해 온 우리들은 아마도 이와 같기는 힘들 것 같다.
안전함이 주는 행복을 원하는 프랑스인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도 자유를 넘어선 방종으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사회는 언제까지 다름을 존중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말해주듯이, 똘레랑스의 정신은 한계를 느끼고 점점 색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