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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에그 Feb 22. 2024

이십년만에 다시 찾아 온 우울증



4개월의 제주살이를 마치고 그해 마지막 날 집으로 돌와왔다. 오랫만에 오니 집이 낯설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다음날은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란 생각에 사로 잡혔다. 답도 없는 문제를 푸는 사람처럼... 이런 나를 남편도 지인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나조차도 이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제주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자 독립을 선언했다. 혼자서 사무실을 차려서 운영해보겠단다. 어차피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남편을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다. 

수년간 책을 읽으며 내가 얻은 지혜는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게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다만 하고 싶은게 많은 남편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게 없어 이렇게 정신적 방황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래전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양귀자의 '모순'. 2013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도 베스트셀러다. 스물다섯 살 미혼여성 안진진이 주인공이다. 쌍둥이 자매인 엄마와 이모의 삶을 통해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결혼과 동시에 두 사람은 완전 다른 삶을 살아간다. 가난한 엄마는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부유한 이모는 귀부인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이모가 자살을 한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간다. 남들이 행복해 보이는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은 아니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제주에서의 4개월이었다. 그러나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다.

제주에서는 맛집투어와 책방투어로 블로그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집에 오니 블로그 쓰는 것도 시들해졌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후기를 쓰면 된다. 하지만 책 읽는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혼자 있다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20대후반 IMF로 인해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퇴사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20년 넘게 독서를 하며 나의 내면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번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보다 더 공포에 시달려야했다. 하지만 경험자이기에 극복할 방법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다.

약물치료와 함께 매일 1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상념에 사로 잡히려는 나를 일으켜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수목원이 있다. 왕복으로 걸어 갔다오면 1만보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매일매일 걷다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무와 꽃들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나무이름도 꽃이름도 아는게 몇개 없다. 하지만 그해 봄, 그들의 변화를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나의 생활에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제주에서 내가 가장 간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운전이다. 

30살 장사를 하다 빛을 지고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시댁에 들어갔다. 돈을 벌기 위해 운전이 필요했다. 10년만에 장농면허를 꺼내 들었다. 겁이 많은 나에게 그건 대단한 용기였다. 역시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한다. 

아니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김포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준비하며 연속으로 2번의 차사고가 났다. 결과적으로 나의 운전미숙이 원인이었다. 다행이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나로 인해 사람 목숨이 오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운전을 이어갈 수 없었다. 제주에 가기전 운전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의 차사고이후 15년동안 운전을 안 하던 내가 운전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친정엄마다. 엄마는 4년전 우리집 근처로 이사를 하셨다. 혼자 사시는 엄마는 무릎이 안 좋아서 오래 걷지를 못하신다. 그런 엄마를 어디라도 모시고 가려면 운전이 꼭 필요했다. 결국 막내딸은 엄마를 위해 다시 용기를 낸다. 못할거 같던 운전도 누군가를 생각하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다.

지금은 한달에 한 두번 엄마와 맛집투어를 다니고 있다. 엄마는 코앞에 있는 재래시장을 두고 한참을 걸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싸게 판다는 그 곳에서 물건을 사온다. 욕심에 이거 저거 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부른다. 나는 궁시렁거리면서 달려간다. 가서도 한소리 하지만 또 가실거란 걸 나는 안다.

엄마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셨다. 그런 엄마 덕분에 지금의 우리 4남매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운전은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나를 세상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게 해 주었다. 그해 가을 30년 넘은 아파트에 살다 3년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부동산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한 덕분에 수익이 많이 나는 집을 일시적 1가구 2주택으로 세팅해서 2021년 최고가에 비과세로 팔았다. 꼭 이사를 해야 하는건 아니었지만 돈이 생기니 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은 새로운 환경에 가면 내가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했다. 그러나 주차때문에 이사를 하자는 건지도 모른다. 살던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다. 이중주차는 기본이라 새벽에 일어나기 귀찮아서였던건 아닐까. 운전을 다시 시작하니 주차난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사를 알아보던 2021년은 부동산이 꼭지였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렇다. 매매도 전세도 집이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 다년간 부동산 공부와 투자를 하며 나름의 투자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시장에 있다보면 분위기에 휩쓸릴 수 밖에 없다. 순간 의지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전세를 알아보려고 갔다가 집을 사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원칙을 지킨 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그때 무리해서 집을 매수했다면 나는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집값이 30프로이상 빠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함께 공부를 했던 지인이 부동산법인을 만들어서 지방아파트투자를 하란다. 그 큰돈을 전세로 묶어두기엔 너무 아깝지 않냐는거다. 돈을 벌 수 있다해도 리스크 관리가 안되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투자 원칙이다. 

늘 투자는 고민의 연속이다. 그럴수록 투자 원칙을 세우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늘 나에게 있다.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고 잔금일까지 전세를 못 맞춘적이 있었다. 적은 돈으로 투자가 가능하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대출을 일으켜 진금을 치뤘다. 부족한 돈은 친정식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생각지 않은 비용들이 추가 되었다. 몇달간 공실로 비워두고 마음을 졸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나만의 투자 원칙을 세웠다. 나의 원칙이 결국 옳았다. 무리해서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면 지금 한강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임대인이자 임차인이다. 남들이 움직이지 않던 시기에 집을 매수했다. 늘 돈을 더 주고 사던 내가 투자 원칙을 지켜서 실행한 경우였다. 싸게 샀고 전세금에 욕심을 부리지 않은 덕분에 최근의 역전세난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꼭지에 계약한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은 역전세가 났다. 재계약 시점에 일부 돈을 돌려봤고 계약갱신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지금도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투자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투자는 하루이틀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고 실행을 하고 실패를 줄여 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행복한 부자로 살고 싶다.

우울증이 나아졌다. 내가 하고 싶은게 뭐였는지 생각하다 답을 찾았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쓸때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아직이다. 때마침 이사를 하며 동네정보를 얻기 위해 맘카페에 가입했다. 

역시 맘카페에는 궁금한 게 다 있다. 맛있다는 반찬가게도 가보고 추천해주는 식당도 가본다. 그러다 나도 다녀온 카페나 식당에 대한 글을 올렸다. 댓글이 달린다. 기분이 좋다. 이젠 책을 읽고 괜찮은 책을 소개도 해본다. 카페나 식당을 다녀온 글보다는 반응이 그닥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나름 소통을 하게 되었다.

이제 더 늦기전에 일할 곳을 찾아봐야되나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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